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모진 한파 딛고 봄을 부른다 '한계령풀'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22. 16:29

모진 한파 딛고 봄을 부른다 '한계령풀'

 

 

 

 

겨울은 절정을 지나 내리막이다.

우리 땅이 결코 좁지 않은 듯 한 쪽에선 눈이 너무 내려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너무 건조하여 산불걱정에 속타기도 하더니만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어 어느덧 봄을 기다리는 겨울 끝자락에 와 있다.

강원도의 깊은 골짜기마다 쌓인 눈은 봄이 올 때까지는 그대로 하얗게 머물 터이다.

그러나 얼마 후면 부드러운 봄 햇살이 눈이불을 치우고 언 대지를 녹일 것이며 세상은 새 생명의 기운으로 넘실거릴 것이다.

하얀 눈이 채 다 녹기를 기다리기도 전에 이미 땅속 깊은 곳에선 움을 틔우고 생명의 온기로 땅을 따뜻하게 데우며 꽃피우기를 준비하는 성질 급한 식물들이 있다.

얼레지, 복수초, 앉은부채…. 눈 속에서 피는 꽃들은 다른 생명체들이 잠자고 있는 추운 겨울동안 부지런히 준비하여 첫 봄을 화려하게 맞이한다. 한계령풀도 그런 식물 중의 하나이다.

바람만 모질게 불어도 날아갈 듯 줄기도 꽃도 잎도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한계령풀. 하지만 끊어질 듯 가는 줄기와 뿌리가 땅밑으로 깊이 깊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양분을 축적하여 모아 놓은 큼직한 덩이뿌리가 있다.

땅위보다는 땅속에서 훨씬 깊고 견고한 생명력을 지닌다. 외유내강이다.

 

한계령풀은 매자나무과 식물이다. 문헌마다 달라 어떤 데는 한해살이풀이라고도 하고, 어떤 데는 두해살이풀이라고 하며 최근에는 땅속 덩이줄기의 발달로 미루어 여러해살이풀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풀 하나 정확히 생육 특성을 모른다는 게 부끄럽기만 하다.

워낙 찾기가 귀한데다 땅속을 조금만 엿볼라치면 이내 뚝 끊어지는 여린 뿌리 탓에 본래 모습 그대로의 뿌리 발달을 확인하기 어려워 생긴 혼선이라고 짐작된다.

 

독자도 한 번 상상해보라. 땅 위로 한 뼘쯤 올라와 자라는 뿌리를 제대로 보려면 녹지도 않은 땅을 30~50cm까지 깊이 파야 하니 인내심을 갖고 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게다가 환경부가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법으로 보호할 정도로 흔치 않은 식물이니 함부로 대하기도 어려워 더 그렇다.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봄 산에서 한계령풀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더군다나 이 풀이 한창 장관을 이룰 만한 시기는 대부분의 명산들이 입산을 금지하는 기간이어서 더욱 보기가 힘들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분포지역이 절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설악산 한계령에서 처음 발견돼 한계령풀이라 불렸으며 점봉산, 가리왕산, 태백산 등 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에 산다.

적절히 그늘져 봄볕이 더욱 부드럽게 스미는 숲에서 샛노랗게 핀 한계령풀 군락과의 만남은 봄 산행이 주는 최고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봄이 되면 꽃과 잎을 볼 수 있다. 미처 봄볕을 충분히 받기도 전에 잎이 나온 터라 그 잎은 연녹색이고 야들야들 부드럽다.

원래는 잎이 한 장이며 짧은 자루 끝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고 또 한 번 더 갈라져 마치 여러 장인 듯 보인다.

꽃은 보통4월말에서 5월에 핀다. 샛노란 꽃들은 하나 하나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여러 개씩 모여 꽃차례를 이룬다.

연약한 줄기에 비해 꽃들이 무거운 듯 휘어져 달리고 다시 이런 포기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군락을 이루니 이보다 더 황홀한 봄 풍경은 없을 것 같다.

 

더러 일부에서 한계령풀을 키우기도 하지만, 뿌리가 길고 연약하니 증식하려면 씨앗을 심는 수밖에 없으며 그나마 옮겨심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풀 정도는 아무도 손대지 말고 가장 맑은 자연 속에서 가장 깨끗한 모습으로 그저 피고 지며 살아가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굳이 아쉽다면 마음속에 고이 담아 올 일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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