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만나는 선녀가 이 모습일까 '터리풀'
여름 산에 올라 흐드러지듯 피어나는 소담스런 터리풀의 무리를 만나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터리풀 꽃송이들이 하늘을 이고 앉아, 혹은 깊은 숲가로 흘러나와 한 무더기 뭉텅 피어나면 맑은 계곡에서 선녀를 만난 듯, 한여름의 무더위는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까지 밝고 정결해진다.
터리풀은 장미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의 산자락에 혹은 숲가에 혹은 산꼭대기 초원지대에 자라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은 아니다.
터리풀 꽃은 자라는 장소와 높이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이르면 6월부터 피기 시작해 8월까지 볼 수 있다. 터리풀이 어떠한 곳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이유는 키가 큰 때문일 것이다. 꽃이 피고 다 자라면 키가 1m쯤까지 올라간다.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풀들 사이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햇볕을 차지하려는 당연한 노력의 결과이다.
손바닥처럼 갈라진 커다란 잎이 달리고 그 옆에는 아주 작거나 퇴화해 흔적만 남은 소엽이 6쌍에서 9쌍까지 마주 달리는데, 작은 잎과 그보다 조금 큰 잎이 번갈아 달려 아주 재미있다. 제일 위에 있는 큰 잎의 길이가 15cm되니 아주 큼직한 잎이라고 할 수 있다.
줄기 끝에 달리는 꽃은 아주 작지만 수없이 많은 꽃들이 산방상으로 다시 취산상으로 모여 달려 풍성하다. 한 여름에 피는 꽃은 백색이지만 연한 분홍빛이 돌기도 한다.
왜 그 이름이 터리풀이 되었을까? 예전에는 털이풀 혹은 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꽃차례의 모양이 털이개의 모양을 닮아 그렇게 불렀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한자로는 광합엽자(光合葉子)라고 하고 영어이름은 메도우스위트(meadowsweet)이다. 학명 가운데 속명 필리펜듀라(Filipendula)는 라틴어로 실이라는 뜻의 필럼(filum)과 밑으로 처진다는 뜻을 가진 펜듀로스(pendulus)의 합성어이며 기본종의 뿌리가 마치 작은 공 같은 것들이 실에 매달린 것처럼 보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터리풀의 종소명 글라베리무스(glaberrimus)는 털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유사종보다 털이 없는 것이 큰 특징이다.
어린 순을 먹기도 하고, 밀원식물로도 가능하며, 터리풀류의 전초나 뿌리를 약초로도 쓴다. 특히 화상이나 동상에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그리 특별하게 이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꽃이 많지 않은 한여름의 화단에 좋은 관상재료가 될 수도 있다. 관상용으로 식재할 때에는 식물체가 커서 마치 관목으로 보일 정도로 풍성하므로 화단에 여러 포기를 모아 심어 놓으면 아주 특별한 모습의 정원을 꾸밀 수 있다. 꽃꽂이용 절화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이 꽃을 처음 만난 곳은 아주 오래 전 식물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건봉산 자락에서였다. 금강산으로 찾아가는 길목이라는 건봉산 계곡은 민통선 지역이었고, 낯설고 새로운 땅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식물을 찾아 다니다가 만난 게 바로 터리풀이다.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그리움으로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을 때 높다란 산정에서 만난,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그 모습은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고 계곡에 물이 불어난 이즈음이면 어김없이 터리풀이 떠오르곤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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