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온몸에 바늘 꼽고 매운 추위 이기는 형극의 겨울나무…노간주나무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29. 11:26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노간주나무'
온몸에 바늘 꼽고 매운 추위 이기는 형극의 겨울나무

숲의 색이 이렇게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일까. 며칠 만에 출근하는 길에서 만난 숲의 풍광은 붉은 기운은 흔적도 없어지고 갈색과 회색 그리고 검붉은 초록으로 딴 세상이 되었다.
 

출장으로 비워둔 단지 며칠만의 변화가 이토록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몰랐다. 자연이란 서서히 한결같은 것이 아니라 가장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구나 새삼 절감했다.

 

이 즈음이면 숲은 완전하게 겨울로 들어선 것이다. 새 봄이 다시 찾아들기 전까지 우리는 반짝이며 윤기나는 생명을 만나기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나마 침엽수들이 푸르름을 줄 것이고, 노간주나무도 그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노간주나무를 처음 보고, 혹은 산에서 만나서 한번에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는 이는 많지 않을 듯 하다. 바른 빗자루를 세워놓은 듯 그냥 삐죽하게 자라 올라온 모습을 보고 말이다. 하지만 개성 있고 특별하다는 생각은 분명 할 수 있다. 어떤 나무도 이와 비슷하기 어렵고, 더불어 어울려지지도 않으며, 척박하고 삭박하기조차 한 산자락에서도 그저 벌떡 서서 자라기 때문이다.

 

노간주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이다. 교목으로 크게 자라지는 않지만 5-6m 높이까지는 큰다. 잎은 2cm정도되는 바늘잎 3장씩 직각으로 돌려난다.

 

향나무와 같은 식구이지만 향나무가 바늘처럼 뾰족한 잎과 비늘조각처럼 납작한 잎이 함께 있는 것과 달리 노간주나무는 나무전체가 온통 뾰족뾰족 바늘잎으로 가득하다. 다른 나무처럼 점차 굵고 가는 줄기들을 펼쳐내며 발달하지 않아 그냥 겉으로 보기엔 바늘잎만 가득 달린 듯 보인다.

 

암,수 두 종류의 꽃이 피지만 화려하게 두드러지지 않아 잘 보게 되지 않고 가을엔 구슬같은 열매가 검붉게 익는다. 바늘같은 잎은 광합성 잎을 뜯어 먹는 작은 동물들이 피해 갈듯 하고 반대로 이 열매는 새들이 즐겨 찾아 후손을 퍼트리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일부 분재하는 분들은 노송(老松), 두송(杜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가자목(老柯子木)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작 유명한 것은 이 나무의 집안 이름 주니퍼(Juniper)이다.

 

이미 짐작하시는 분들이 있겠으나 열매가 많이 애용되는 술 주니퍼 진(Jin)의 향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서양노간주나무로 만들겠으나 이 진의 향기는 이미 희랍시대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우리나라의 노간주나무로도 진을 만들 수 있다.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한 두 달 소주에 담그어 두었다가 걸러내면 훌륭한 토종 진이 된다.

 

옛 분들은 술보다는 열매로 기름을 짜서 이를 두송유(杜松油)라고 하며 여러 통증을 줄이고 관절염이나 신경통과 같은 약으로 사용했다 한다.

 

굵진 않지만 목재로도 쓰임새가 요긴하였는데 불에 약간 구우면 잘 구부러지면서도 질겨서 특히 송아지가 다 자라기 전에 코뚜레에 최고였단다.

 

보편적인 정원수로 하기엔 좀 그렇지만 잎이 뾰족하고 수형이 직선이어서 줄지어 심으면 생울타리로 적합하고 독특한 포인트를 주는 정원용 조경수로 쓸 수 있다. 다만 향나무와 마찬가지로 배나무에 생기는 병을 옮기는 중간숙주여서 배나무밭에서만은 피해 심어야 한다.

 

꽃도 잎도 다 져버린 계절이지만 진짜 산에 올라 나무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멋이 지금부터라지 않는가. 멋쩍은 듯 삐죽이 서있는 노간주나무 만나거든 열매 몇 알 주워 술에 담궈 두었다가 그 향기로 다시 한번 즐거울 수 있는 것도 재미중의 하나일듯 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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