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꽃 터트릴 그날 위해, 忍苦를 휘감고...타래난초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27. 17:00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타래난초
꽃 터트릴 그날 위해, 忍苦를 휘감고

 

 

계절의 순환처럼 어김없이 새해가 또 찾아왔다. 나이테가 하나씩 많아질수록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은 왜 자꾸 적어지는 것인지. 아직 지난해에 엉켜버린 삶의 실타래를 미처 다 풀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기 때문인 듯하다.
 

혹 새해 벽두부터, 술술 잘 풀리는 휴지처럼 그런 쉬운 꽃을 골라 소개하는 것이 좋지 복잡한 세상 더 엉키면 어쩌라고 타래난초 얘기를 들고 나오냐고 나무라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이 꽃에 대한 오해이다. 새해에 타래난초가 생각난 것은 모든 분들이 하나하나 엮어 만들어 가는 인생의 마디마디를 헝클거나 지레 포기하지 말고 잘 매듭지어 타래난초처럼 더할 수 없이 곱고 정교한 꽃을 피웠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더욱이 타래난초는 평범한 풀밭에서 지혜롭게 곤충을 부르며 얼마나 정교하고 질서있게 고운 꽃들을 피워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삶의 좋은 귀감이 되는 식물이다.

 

타래난초는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다른 난초와 달리 길가 풀숲에 자란다. 아주 흔한 풀은 아니지만 자라는 곳은 그냥 우리가 사는 시골 마을 어귀 양지바른 풀밭 어딘가이므로 이 고운 꽃을 처음 맞닥뜨리면 적지않게 당황한다.

 

잔디 같은 풀 사이에서 함께 자랄 때에는 여간해선 구별해내기 어렵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쑥하니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워낸다. 나사모양으로 꽃대를 감고 올라가 흰색과 분홍빛이 적절히 어우러진 꽃송이들이 차례로 달린다. 한쪽에서는 꽃이 계속 피어 올라가지만 먼저 핀 꽃이 지면 이내 열매가 딜린다. 익으면 절로 벌어지는 삭과로 타원형이다. 더러 분홍빛 없이 흰색뿐인 꽃이 피기도 하는데 이를 흰타래난초라고 한다. 이밖에도 개체마다 조금씩 꽃 색깔이 다른 변이 품종들이 많이 나타나서 특별히 이들을 골라 키우는 이도 있다.

 

이름은 말 그대로 줄대가 꼬여서 올라가 붙은 이름이다. 이 식물의 학명은 스피란테스(Spiranthes)인데 희랍어의 `speira(나선상으로 꼬인)`와 `anthos(꽃)`의 합성어라고 한다.

 

타래난초는 키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작은 회분이나 화단에 기르면 특별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씨앗을 따서 늘려나가기보다는 포기를 나누어 심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병을 앓고 난 후 허약할 때, 여러 원인에 의해 피가 나올 때 등에 처방한다.

타래난초는 보통 꽃이 독특하게 아름다워 사진으로 많이 찍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꽃을 꼭 한번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욕심을 내 심산을 헤매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티없이 뛰노는 시골 길이나 먼 길 걷다가 땀을 식히기 위해 앉는 풀숲에서 자라니 말이다. 우리도 주변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두고 멀리 높이 있는 저 먼 산 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는 곳 주위에서 타래난초와 같은 존재를 찾아내는 것을 새해의 목표로 삼아보아야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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