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 곁에서 함초롬… 봄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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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식물 중의 하나이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 과에 속한 식물이 그러하듯 많은 사람들이 꽃을 꽃잎으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특별하게 생겼으며 꽃을 감싸고 있는 포(苞)도 발달해 있다.
꽃 빛깔은 연한 갈색 바탕에 자주색무늬가 불규칙하게 있어 앉은부채를 처음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독특한 모습에 감탄한다. ‘아! 세상에 이러한 꽃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주먹만한 포의 안쪽을 들여다 보면 수술과 암술이 있는 진짜 꽃이 특별하게 감추어져 있다. 물론 꽃잎은 없다.
꽃이 지기 시작하면 잎은 돌돌돌 말려 삐죽하게 올라와서는 넓직하게 퍼져 싱그럽다. 전체적으로 심장형인데 잎자루까지 다 자라면 길이가 50~60cm 정도 될 만큼 크니 흡사 커다란 부채를 연상시킨다.
열매는 여름에 익는다. 잎이 워낙 넓어 잘 보이지 않지만, 들추어 꽃이 피었던 자리를 자세히 보면 둥근 열매를 볼 수 있다.
겨울 끝자락, 아직도 수북이 쌓여 있는 마른 낙엽을 뚫거나 하얀 잔설 틈새에서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매력적인 앉은부채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냄새가 좋지 않고, 둘째는 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생김새는 먹기 좋은 양배추처럼 생겼으나 냄새가 나고 독도 있는 이 식물을 ‘스컹크 캐비지(Shunk Cabbage)’라고 부른다. 폴레캣 위드(Polecat Weed)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뿌리에 비해 독성이 다소 적은 아주 어린 잎을 따서 데친 후 묵나물로 무쳐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 독을 빼기 위해서는 흐르는 물에 며칠을 담궈 두었다가 오랫동안 말려야 한다.
‘같은 식물도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말은 앉은부채에 딱 들어 맞는다.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데 주로 뿌리를 쓴다. 진정, 진통, 가래제거, 신경통 계통, 해열 등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 아직은 임상실험 단계이지만 혈압강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정원에서는 약용식물원의 한 구성원으로 심으면 좋다. 혹은 자연성이 높아 상층 수관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지피식물로 심으면 아주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봄은 꽃으로 이후는 무성한 잎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나라 초본식물 가운데 이만큼 큰 잎을 무성하게 가지면서도 키를 낮추어 자라는 것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산을 오르다가 앉은부채의 꽃송이를 보았다면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달 이내에 수많은 꽃송이들이 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눈 대신 비가 촉촉히 내리는 요즘. 산마다 골짜기마다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복수초, 갯버들, 노루귀, 제비꽃…. 이미 가슴속에는 봄꽃 향기가 가득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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