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식물일까 너무 궁금하여 모든 일을 제쳐두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신안군의 외딴 섬을 다녀온 것이다.
사실 남녘의 섬들에는 생각보다 숲이 잘 보전되어 있지 않아 멀리 고생해서 간 만큼 흡족하게 다양한 식물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엔 연구실을 벗어나 일을 훌훌 털고 바닷내음을 맡으며 떠나는 데다가 특별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 먼 길 내내 흥분한 마음이었다.
앙파와 마늘밭이 가득한 다소 삭막하기조차 한 섬에서 마음을 열어 반갑게 기다리는 듯한 식물을 만났으니 다름 아닌 실거리나무 무리였다.
숲 가장자리에 이리저리 얽히기도 하고, 때론 기댈 곳이 없어 바닥에 누워 펼쳐지는 그 노란 꽃무리의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그 어떤 식물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실거리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덩굴이 지는 낙엽 식물이다. 주로 남쪽에 분포하고 있으니 이 나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중부지방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더 반갑고 귀히 여겨지나 보다.
더욱이 활짝 핀 꽃들을 제대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더욱 그러하다.
잎은 아까시나무 잎을 닮았으나 한 번 더 갈라져 조금 작은 소엽들이 달리며 꽃은 봄과 여름이 만나는 즈음 가지 끝에 꽃차례가 크게 올라와 여러 송이가 달린다.
전체를 모아도 멋지지만 좌우 대칭의 노란 꽃잎에 붉은 줄이 매력점처럼 보이고 길게 뻗어나온 수술은 개성이 넘친다. 열매는 콩과이니 당연 콩꼬투리처럼 생겼으며 보다 넓고 크다. 가을이면 갈빛으로 익고 그 속엔 까만 구슬 같은 씨앗들이 알알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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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리나무란 이름은 가시에서 유래되었다. 줄기에 가시가 있는데, 그것도 낚시바늘처럼 아래로 굽어 오가다 만나 옷의 실에 달라붙으면 떼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아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질긴 인연(因緣)’을 실거리나무의 가시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 띠거리나무, 살거리나무라고도 한다는데 실거리가 살거리가 되었는지, 가시가 살을 찌를 것 같아 그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보길도에서는 총각이 이 나무 사이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올 수 없다 하여 총각귀신나무, 흑산도에서는 단추걸이 나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는 제주도에서는 말이나 소의 출입을 막아야 하는 곳의 돌담에 심었다고 한다. 덩굴로 자라는 특성과 어울릴 뿐 아니라 꽃이 피면 장관이었을 터이니 일거양득의 아주 좋은 시도인 듯하다. 그 외에 열을 내리거나 설사를 멎게 하는데 열매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남쪽 섬에는 더러 오래오래 살아온 큰 나무들이 10m나 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하늘 가득 샛노랑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꽃등불 밝힐 장관을 기대하며 내년 이맘 때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