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작지만 찬란한 존재…<4>고산식물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28. 13:10

[이유미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식물들] <4>눈을 덮고 바람을 이고 사는 고산식물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작지만 찬란한 존재

 

 

악조건 속에 피어난 꽃이기에 고산식물의 꽃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늘과 가까운 그곳의 꽃은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별들을 닮았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만난 케이모넨시스붓꽃.

 

 

앵초류.

고산성 용담류.

고산식물(alpine)은 가장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식물이다. 고산식물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군더더기란 없다.

 

불필요한 치장일랑 일찌감치 포기하고 생존을 위한 가장 절박한 모습으로, 세상의 어떤 식물도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모습과 황홀한 빛깔로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이 바로 고산식물이다. 그래서 난 언제나 저 높은 곳에 사는 그 식물들을 동경한다.

 

어쩌면 히말라야로의 첫 발길에서 언감생심 고산식물의 정수를 만나기를 기대했던 것은 과욕이며 무지함의 소치였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행을 중단해야 하는 여름 우기부터가 고산식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때이니 말이다.

 

그래도 고산식물대에 들어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 자체만으로 가슴은 크게 뛰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피어나는 몇 가지의 식물들, 그리고 지난 봄에 피었던 에델바이스의 마른 흔적을 보는 일 만으로도 흥분을 감춰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다시 찾아와 보고 싶은 더 많은 식물들이 여전히 그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 이 또한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 아닌가.

 

흔히 고산식물대는 북위 36도 부근의 해발고도 2,500m 이상 되는 높은 산의 키 큰 나무는 없고 오직 바닥에 납작 업드린 키 작은 관목과 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에서 이 고산식물대는 다른 산보다 훨씬 높다. 수목한계선(Timber line)과 설선(Snow line)이 만들어지는 대개 4,000m에서 5,500m 사이에 이루어진다.

 

몸을 낮추는 것은 차고 강한 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겨울이면 눈을 덮어 바람 끝에 실려 오는 진짜 매서운 추위를 피하고자 함이다. 일년의 반 이상이 생육 불가능한 추운 기간이고 여름이 되더라도 햇볕이 워낙 강해 수분 증발이 심하다. 그래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빨리 커서 꽃과 열매를 만들고 내년에 피어날 꽃눈의 분화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더러 방석처럼 둥글고 빽빽하게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역시 무리지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둥근 돔 같은 모습은 바람의 저항을 줄여주고 보온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생겨난 적응의 한 형태인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고산식물대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히말라야 눈향나무(Juniperus indicum etc)와 고산에 자라는 진달래과 식물들의 군락을 보고서다. 이 나무는 조금 낮은(그래도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산보다 훨씬 높다) 곳에선 서서 자라던 것이 둥근형으로 변하다가 더 높은 곳엘 가면 아예 누워버린다. 주변에는 아주 작아 손가락 한마디를 넘지 못하는 고산용담이 피기 시작했고 키가 훨씬 작은 종류의 앵초도 보였다. 케마오넨시스붓꽃도 꽃을 활짝 피웠다.

 

여름이 되면, 저 메마른 바위틈에선 푸른 꽃잎의 메코놉시스와 진정한 바람을 아는 갖가지 바람꽃류(아네모네)와 백두산의 금매화를 꼭 닮은 자매들, 그리고 국화과 식물이 왜 가장 진화한 족속인지를 절감케 해주는 개성 넘치는 분취종류들이 지천을 이룰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이 가슴 벅찬 식물들을 보노라면, 온실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우뚝 선 이들이 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지를 절로 알게 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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