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숲 밝혀주는 보랏빛 꽃…진범

그늘진 숲 밝혀주는 보랏빛 꽃…진범      국립수목원 이유미 박사      식물중에는 만나기가 아주 어려운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잘 알아 보는 식물이 있습니다. 아마 강원도의 깊은 산 높은 곳에 가야 만나는 금강초롱이나 이른 봄 큰 산에 찾아 가야 만나지는 얼레지가 그러하겠지요. 반면에 어느 산에나 있지만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식물도 있습니다. 개별꽃이나 미나리냉이 같은 식물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범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식물입니다. 사실 웬만큼 큰 산이다 싶은 곳이면, 진범이 자라지 않는 곳이 없지요. 그래서 한 번 알고 나면 '아하! 산에 그늘지고 비옥한 숲이면 보이는 풀'이라고 금새 알아볼 만 한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진범의 꽃 색은 보라색이고 꽃 색이 아주 흰 빛인 흰진범이 따로 이름 붙여져 있는데, 우리가 산에서 자주 만나지는 진범의 꽃색은 흰 색에 보랏빛이 도는 것이 많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랍니다.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으시면,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의 변이는 연속적이어서, 새로운 종류로 구분해 따로 이름 붙여 줄 지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외형적인 색의 차이가 유전적으로도 서로 어떻게 다른지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한번 살펴봐야겠고, 일단은 전체가 진한 보라색이서 보랏빛이 도는 것까지 모두 그냥 진범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진범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키는 보통 무릎 높이 정도까지 자라는 듯 하지만, 바로 서서 자라기도 하고 비스듬히 누워 자라기도 하므로 줄기의 길이로 치면 훨씬 더 깁니다. 뿌리 근처에 달리는 잎은 잎자루가 길고 전체적으로는 둥글며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크게 자라기도 하는데, 전체적으로 크게 5~7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어릴 때, 이 모습만 보고는 이질풀 종류와 혼동하기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줄기로 올라가면서 잎도 작아지고 잎자루의 길이도 짧아집니다.   단연 돋보이는 모습은 꽃입니다. 투구꽃과 같은 속(Aconitum)이어서 꽃잎의 모양이 마치 투구를 얻은 것 같지만, 총총이 꽃들이 달리는 모습이나 꽃송이 하나 하나도 좀 더 길쭉하고 야무지게 달려 투구꽃과는 금새 구분이 됩니다. 여름에 피어 비교적 오래 볼 수 있습니다.   뿌리가 흑갈색으로 아주 깊이 들어 가는데, 약으로 쓰입니다. 한방에서는 흔히 '진교'라는 생약명을 달아 이용하기 때문에 진범보다는 진교라고 알고 계시는 이도 많습니다. 보통은 진범 이 외에 흰진범이나 줄바꽃같은 식물을 이 생약명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체내에 알카로이드 성분이 있어 중추 신경을 진정시키고 혈관을 넓혀 주므로 혈압을 강하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거나 통증을 없애 주고, 관절염이나 팔다리 마비 등 여러 증상에 두루 쓰입니다. 문제는 이 성분이 잘 쓰면 좋은 약이 되지만 독성이 있는 것이므로, 절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랍니다. 한방에서 이 식물을 사용할 때에도 주기를 주어 사용해야 하며, 숨찬 증세등의 부작용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일반인들은 약초라고 그냥 먹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진범의 그 독특한 자태가 눈길을 잡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땅 위의 풀들은 거의 사라져 갑니다.   마음에라도 꽃을 피워 충만하고 행복해지도록 노력해야 할 계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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