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이제 끝이 보이고, 가을의 문턱에 접어드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9월입니다. 보통 가을이 되면 걷기 좋은 길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책이라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요. 걷는다는 건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이 닮아있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런데 어디를 걸어보면 좋을까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만난 나무 한 그루,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만나는 그 자체로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집에서 가까운 공원이 좋지만, 금전적 혹은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어디 멀리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예전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한번 걸어본 적이 있는데, 당시 길을 걸으면서 내리쬐는 햇빛을 걷다 보니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 그늘 속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쉬어가는 것도 저에겐 행복한 여행의 추억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내소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전나무 숲길
숲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모습,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참 고마운 나무다.
전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내소사 천왕문을 만나게 된다.
이번에 부안을 한번 다녀올 기회가 있어, 내소사를 다녀왔는데요. 처음에는 별 기대를 안 하고 갔다가 내소사로 가는 전나무 숲길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창하게 뻗은 전나무의 가지들이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고, 그늘이 진 숲길을 걷다 보면, 걷는 그 자체가 참 행복 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숲길을 걷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볼 수가 있는데요. 가족 혹은 여러 사람들이 웃음 지으며 행복하게 걷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 좋았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모습, 내소사의 보물 중 하나다.
내소사 동종의 모습, 고려 때 제작된 종으로,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내소사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대웅보전의 모습
보통 내소사를 방문하면 사찰의 고즈넉함과 문화재를 많이 보게 되는데요. 부안의 명소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사찰의 고즈넉함과는 다소 멀고,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내소사 동종(보물 제277호), 내소사 삼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오래된 사찰의 역사와 문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지만, 내소사 경내에는 수령이 무려 천년이 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이 추상적인 것 같지만, 이제까지 돌아다니면서 천년이 된 나무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소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 수령이 무려 천년이다.
느티나무 아래,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눈에 뛴다. 이곳 사람들은 할머니 당산나무로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당산제가 열린다.
재미있는 건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할머니 당산나무 혹은 들당산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인데요. 당산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의 민속신앙의 하나로 알려져 있어, 불교 사찰에서 민속신앙의 흔적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은 사찰마다 ‘삼성각’이라고 해서 산신과 칠성, 독성 신을 모시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나무에 당산제를 지내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른바 불교와 민속신앙이 합쳐진 특이한 당산제를 만날 수 있는 내소사 할머니 당산을 한번 주목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소사 일주문과 매표소 쪽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나무,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불린다.
지금도 여전히 ‘석포리 당산제’가 열리고 있어, 내소사를 방문하실 때 전나무 숲길과 함께 주목해보길 권해드린다.
그런데 문득 할머니 당산이 있으면 할아버지 당산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찾아보니 내소사 일주문과 매표소 입구 쪽에 할아버지 당산이 있어, 지금도 매년 ‘석포리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에게 ‘신목’으로 인식되어 온 이러한 나무들, 내소사를 다녀가실 때 ▲ 내소사 전나무 숲길 ▲ 내소사 경내에 있는 할머니 당산 ▲ 내소사 일주문에 자리한 할아버지 당산 등을 함께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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