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4년(5기)

경주의 월성과 계림

대한민국 산림청 2014. 9. 25. 09:00

경주의 월성계림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변영숙

 

 

이상하게 나에게 경주는 늘 저 먼 곳에 있는 도시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 물리적인 거리감보다는 경주에 켜켜이 쌓여있는 천 오백년의 역사때문일 것이다. 한 민족의 역사의 어느 한 시점의 흔적이 이토록 통째로 각인되어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신라가 아주 친근한 우리의 역사로 걸어 들어온 것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본 이후라 한다면 내가 너무 얄팍한 대중문화에 경도되어 있는 것일까.

경주여행은 참으로 느긋하고 신비하고 아득하다. ‘시간으로의 여행’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커다란 봉분이 솟아있는 고분군을 보면, 고분 사이 어디 틈에 누워 깜깜한 경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상상을 해본다.

 

 

월성의 궁궐터를 거닐다보면 어린 미실의 밀회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토록 여행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가 또 있을까,,, 하여간 난 경주라는 도시에 푹 빠져있음에 분명하다. 천 오백년간의 역사와 수많은 매력적인 설화들, 정겨운 자연,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불교유적지들,,,

작가 강석경은 경주의 ‘민족의 고향’이라고 표현했으며 삶의 원형이 녹아 있는 곳이라고 경주 예찬을 하였다.

길을 걷다,,또 문득 문득 그곳의 밤하늘과 달과 별을 상상해 보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경주다.


월성,,,, 땅 모양이 까만 하늘에 뜬 초승달 모양을 닮아서 월성이다. 그 이름조차도 너무 그윽하고 시적이다.

 

 

 

신라의 궁궐터이다.
잠시 지나는 나같은 여행자에게 땅의 초승달 모양이 보일리 없고, 신라의 위대함이 담박에 느껴지지는 않으나, 박물관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보면 당시 고대국가 신라의 찬란함과 번성함에 몸에 소름이 돋는다. 궁궐은 월성을 중심으로 점점 그 주변 지역으로 확대되어 지금의 첨성대자리까지 점점 넓혀진다. 완만한 구릉지대에 세워진 월성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월성을 이루었던 돌과 흙무더기들이 지금이라도 원래 있던 자리로 날아갈 듯이 돌들에 긴장감이 흐른다.

 

 

 

돌무더기 안쪽으로는 궁궐터가 네 활개를 편 듯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 대신 오래된 나무들과 풀들이 빈 궁궐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준다. 천오백년의 역사를 거슬려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는 역시 빈터가 제격이다.

 

 

‘경주는 채우는 것보다 비울수록 아름답다’고 했던 강석경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어렴풋이 궁궐 복원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대로 있을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누리게 해 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지’ 월성터에는 석빙고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때 만든 석빙고이다. 서쪽으로 100미터 지점이 원래 석빙고자리이다. 봉분 모양의 석빙고에 3개의 통풍구가 있다.

 

 

이곳이 화랑의 나라 신라의 궁궐이었던가...잠시 과거 한 때를 부유하다 계림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텅빈 들판 너머로 첨성대가 눈에 들어온다. 신라시대의 천문대이다. 제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 계림


첨성대와 월성터 중간쯤에 신라 왕조의 하나인 경주 김씨 시조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숲이 있다.

 

 

닭이 한 왕조의 탄생을 알린 숲이다.

『탈해왕 4년, 호공이 시림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큰 나뭇가지에 황금궤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닭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공이 왕에게 아뢰어, 왕(탈해왕 4년)이 친히 달려와 금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을 김알지라고 지었다. 훗날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이며,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다. 그의 7대손 미추가 신라 16대 미추왕이 된다.』

 

 

왕의 시조가 태어난 숲이다. 그래서 더 귀하고 깊고 신묘스럽게 느껴졌다.
장정의 두 팔로 감싸도 모자랄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하다. 숲 안으로 들어서면,,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차단된 듯,,,숲 안에 감싸인 느낌이다.

 

 

 숲에는 느티나무,홰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가득하다. 황금궤가 걸려 있었을 법한 나무를 찾아본다.

 

 

향가노래비와 1803년에 세워진 계림 비각이 있다.

 

 

여름 끝자락 햇살에 오래된 나무의 그림자들이 숲 안에서 너울거린다.

 

 

숲 안은 어둡고 조용하다. 외부세계의 모든 소리를 나무들이 흡수라도 하듯이 고요하고 공기는 폭신하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숲이다.

 

 

가을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숲이다. 또 새벽의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 숲이다.

 

 

계림에서 나와 고분군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훨씬 짧아진 늦여름 해가 신라 왕족들의 고분을 넘어 선도산 뒤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문득 우리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가 좋을까,, 하는 쌩뚱맞은 생각이 스쳤다.

 

 

 

산림청의 소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감이 되셨다면 VIEW를! 가져가고 싶은 정보라면 스크랩을! 나도 한 마디를 원하시면 댓글을!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서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Follow me 친해지면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