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블로그 주부 기자단 황원숙
청마처럼 열심히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삶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며 달려온 길의 끝자락에서
나의 길을 돌아봅니다. 날카로운 도시의 소음과 차가움에 상처받은 사람이 몸을 기대어 쉴 수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나를 내려놓고 자연이 주는 위로를 담아올 수 있는 곳.. 오대산 선재길을 걸었습니다.
신록으로 녹음으로 단풍으로 빛나던 나를 내려놓고 벗은 몸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길.. 그 길에 들어서니 긴 숨이 뱉어지네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상쾌해진 몸으로 첫 걸음을 내딛어 봅니다.
사계절 아름다운 오대산은 신라시대에 중국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율사에 의해 개창된 문수보살의 성지입니다. 이곳에 불교사찰 월정사와 상원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8.6km의 길을 선재길이라 합니다. 천년동안 수많은 불제자들이 마음의 화두를 들고 오가던 길입니다.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찾아 길을 가는 구도자입니다.
보타락사산에서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비로소 깨칠 수 있었다는 그 깨달음을 우리도 이 길을 걷고 나면 얻을 수 있을까요~ 세속에 물들어 두 손 가득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 조차도 내려놓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겠죠. 선재길을 걷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영화와 욕심도 모두 내려놓게 됩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푸른 하늘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우니 이 순간이 바로 깨달음이 아닐는지요..
마음을 유혹하는 신록도 감탄사 절로 나오는 단풍도 없는데 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도시의 칼바람 휘둘리고 수많은 눈총으로 구멍 난 마음을 이리도 따뜻하게 품어주니.. 깨달음을 얻은 듯..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품고 구도자의 깨달음을 품고 있는 오대산에는 귀한 나무들도 많습니다.
잎의 모양이 개구리의 손과 닮아서 개구리손나무라고 불리는 고로쇠나무,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하여 물푸레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재질이 질기고 탄력성이 좋아서 농기구로 많이 만들어졌다 하고요, 훈장님의 회초리나 곤장으로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나무껍질을 밧줄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피나무, 병마를 쫓는 수문장 이라 해서 대문 앞에 심었다는 다릅나무와 재앙을 없애주는 수액을 지닌 거재수나무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재수나무는 자작나무와 같이 수피를 벗겨 사랑의 편지를 썼다는 얘기도 전해지지요.
도심에서 쉽게 만나는 나무가 아닌 산자락으로 올라야만 만나는 정겨운 나무들을 가만히 쓸어보고 눈 맞추며 걸어갑니다.
가파르진 않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길은 우리네 인생길을 닮았습니다.
내내 오르막만 있다면 오르느라 힘들고.. 내리막만 계속 된다면 절망스럽겠지만,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걷는 발걸음에 흥을 실어줍니다. 걷는 길 내내 들려오는 시내의 물소리는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시내 건너 자동차가 다니는 길도 있습니다.
월정사 입구에서 상원사 주차장까지 띄엄띄엄..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그 길도 비포장도로입니다. 버스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며 가는 맛도 있지만, 천천히 자연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선재길이 더 좋습니다.
깨달음을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선재동자는 바다에 이르러 열두 해 동안 바다만을 바라보았다하는데.. 나무를 품고 하늘을 품고 있는 시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나무와 하늘 그 속에 내 마음도 있네요.이대로 졸졸졸.. 흘러가면 부처님의 세상 극락정토로 흘러들 것인가.,
높은 건물들 사이를 굉음을 내며 휘몰아 다니는 바람이 아닌.. 따뜻한 땅의 기운 나무의 기운을 쓸고 가는 바람을 맞으며 다다른 곳.. 조카를 내쫒고 왕이 된 태종이 피부병에 시달리다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상원사에 들어서니..가득한 연등이 오색으로 반갑게 맞이합니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세상사 모든 근심마저 버리고 만나는 여기가 부처님의 세계.. 극락정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