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얼이 깃든 담양 금성산성'
천년 세월 모진 풍파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있는 산성의 기세와 선조의 기개를 느껴봅니다.
대륙을 휘감고 돌아간 만리장성과 당에서 고구려를 지켜낸 천리장성에는 못 미치지만, 천인단애 산성산 암벽 위에 지은 천혜의 요새 금성산성은 십 오리 길로도 충분했습니다.
왜구로부터 전라도 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산성을 따라 수없이 뛰었을 의병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취를 찾아보고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녹두장군의 피를 토한 격문을 들어보고 한국전쟁 순창 회문산과 담양 가마골 빨치산의 주요거점이었던 금성산성. 그 천년 아픔을 보듬고 천년의 함성을 듣기 위해 담양 산성산에 올랐습니다.
담양 산성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합니다.
전북 순창에서는 강천산 군립 공원에서 좌측 금강계곡을 따라 376봉과 광덕산, 시루봉을 거쳐 동문으로 올라도 되고, 우측 병풍바위에서 깃대봉으로 올라 왕자봉과 1,2형제봉을 지나는 호남정맥 길을 따라 북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산길이 여의치 않다면 현수교를 지나 구장군 폭포에서 동문이나 북문 옆 승낙 바위 쪽으로 해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전남 담양에서는 금성산성 주차장이나 담양온천을 거쳐 보국문으로, 또는 담양 오방 길을 따라 서문으로 올라도 되는데요, 오늘은 담양온천을 거쳐 보국문에 올라 산성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담양온천에는 약 7만 2600평방미터 가량 되는 넓은 수목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산성까지는 약 2km 정도로 걸어서 1시간이면 오를 수 있기에 광주뿐만 아니라 멀리 수도권에서도 대나무와 가사의 고장 담양을 찾을 때 으레 찾아 숙박을 겸한 휴양을 하는 곳입니다.
담양온천 쪽 숲길은 한여름에 오면 좌우로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와 활엽수로 인해 햇볕 한 조각 새어 들어오지 않는데요, 옷을 모두 벗어던진 겨울이라 그런지 황량하기만 합니다.
담양온천 출발 50분 만에 2km를 걸어 보국문(외남문)까지 왔는데요, 금성산성의 축조 시기는 삼한이나 삼국시대로 알려졌습니다. 무주의 적상산성,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불리는데요, 1991년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금성산성은 연대봉과 시루봉, 철마봉 등 산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따라 6,486m의 외성과 859m의 내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이 있고 군량미 창고,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시설이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동학혁명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버리고 90년대 복원된 보국문과 충용문을 제외하고 터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1906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전투지로 알려졌는데요, 이곳에서 관군과 맞서 20여 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떨어진 식량 조달을 위해 전북 순창 쌍치에 사는 동지 김경천의 집을 찾았다가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금성산성의 동학농민혁명군은 마지막까지 왜군과 관군에 저항했는데요, 치열한 전투로 인해 성내 모든 시설물이 파괴되었고 불길이 백일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보국문을 지나 충용문(내남문)까지도 성벽으로 연결되었는데요, 보국문이 있는 곳은 1차 저시선이고 충용문이 있는 곳부터 본격적인 산성이 시작됩니다.
금성산성은 주변에 널려있는 수성암인 점판암(구들장으로 많이 이용되는 돌)을 잘라 축성한 산성입니다. 이 정도 길이의 산성을 지으려면 아마 성안에 있는 암벽 하나는 통째로 없어졌을 듯한데요, 성을 하나 쌓기 위해 배고파 죽고, 병들어 죽고, 돌에 깔려 죽고, 더위에 지쳐 죽고, 겨울에 추워 죽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 어린 현장을 직접 보니 감탄스러운 풍광보다 가련한 삶에 눈물이 앞섭니다.
전라도 지방의 욕 중 ‘오사랄 놈(五殺 할 놈)이란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혹시 산성에 오르더라도 주변 풍광만 보지 말고 성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백성의 넋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충용문에서 바라본 '보국문'입니다.
적의 공격을 충용문과 좌우에서 효과적으로 물리치기 위해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금성산성 전투가 끝나고 왜병이 물러간 뒤 의병과 농민, 왜병의 시신을 계곡에 모았는데 무려
2,000구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계곡을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르고 영혼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절을 찾아 향을 피웠는데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아 절 이름을 연동사(煙洞寺)라 불렀습니다.
산성을 둘러보는 코스는 충용문에서 동문 - 북문 - 서문 - 충용문으로 이어지는 일주 코스가 주 코스로 약 6.4km에 4시간 정도 걸립니다.
가운데 숲길을 따라 서문까지는 약 1.8km, 북문까지 이어진 숲길은 약 2.0km, 동문까지는 약 1.5km로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니 굳이 성곽 길을 걷지 않아도 충분한 산림욕이 될 것입니다.
오늘 산행 코스
담양온천 → 보국문 → 충용문 → 보국사터 → 서문 → 철마봉 →노적봉 → 충용문 → 보국문 → 담양온천으로 5.8km에 3시간 13분 소요
충용문에서 바라본 드넓은 담양 평야와 무등산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립니다.
운무가 끼어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능선들을 보니 마치 선계를 보는 듯합니다.
금성산성은 담양, 순창 등지에서 거둬들인 약 2만여 석에 달한 군량미를 보관하기도 했죠. 사방으로 평야지대를 바라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 산성으로는 최고의 입지조건입니다.
좌측은 서문과 북문, 보국사 터 방향이고 우측은 동문을 거쳐 일주하는 코스입니다.
20분 걸쳐 1.2km를 걸어 보국사 터까지 왔습니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후기인 1758년에 편찬된 담양읍지인 추성지에는 금성사로 기록되었고 1895년에 편찬된 군사 관련 금성진 지도에는 보국사로 각각 달리 기록되었다는데요, 당간지주, 석축, 계단, 우물터 등이 있어 이곳이 보국사나 금성사 터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휴당산방(休堂山房)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집이 한 채 있는데요, 퇴직 공무원 출신 시인이 홀로 살며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자신의 시집과 시구가 적혀 있는 책받침을 판매하여 얻은 작은 수입으로 청빈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돌담과 돌절구도 있고 바로 옆 계곡에는 갈수기임에도 물이 풍부해 민가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금성 산성에는 조선 말기엔 약 130여 호의 민가가 있었으며 관군만 약 2천여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문 터'입니다. 그 옛날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추운 몸을 잠시 쉬었을지도 모를 천연동굴도 있는데요, 밥을 지어먹었을 계곡물은 천년세월 쉬지 않고 담양호로 흘러듭니다.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입니다. 경사가 가팔라 내려오기 힘든 곳인데요, 충용문에서 서문으로 와 북문과 동문을 거쳐 원점회귀하거나 순창 강천산으로 하산하는 주요 등산로이기도 합니다.
이제 성곽을 따라 철마봉으로 오릅니다.
서문 근처의 망루 역할을 하는 곳에서 성벽을 봅니다.
금성산성은 험준한 지형에 축조한 요새로 조선시대 이항복은 “산성이 크고도 더욱 웅장해 평양성보다 더 우수하고,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도 지킬 수 있는 곳이 절반에 이른다”라고 평했는데요, 경사도 가파르고 성벽도 높아 공격이 무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마봉에서 담양을 파노라마로 봅니다.
이곳에서는 담양호가 시원스럽게 보이는데요, 담양호 건너 추월산과 보리암이 손에 닿을 듯 가깝습니다.
철마봉에서 바라본 조망은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좌로는 노적봉과 금성면의 비닐하우스 단지 그리고 무등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되며 멀리 영암 월출산은 산 너울 위로 우뚝 솟았습니다.
이제 노적봉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성내에 보이는 건물은 우리가 거쳐 온 보국사 터와 휴당산방입니다.
노적봉에서 바라본 철마봉입니다.
군마를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요, 노적봉 아래 낭떠러지 위에 3미터 가깝게 돌을 쌓아올려 산성을 만들고 수백 년 흘러도 끄덕없게 만든 선조들의 건축기술에 놀라고, 노적봉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수많은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목격한 심지 곧은 소나무의 멋진 모습에 또 한번 놀랍니다.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노적봉을 지나면 보국문을 보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가 나옵니다.
보국문에서는 2009년 5월 MBC 특별기획 역사드라마 선덕여왕 오프닝을 포함한 1,2회의 주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당시 주인공 미실이 고현정과 선덕여왕에 오른 이요원, 신구 등 유명 출연진과 스텝 등 200여 명이 촬영 장비와 세트 등을 이고지고 날라서 촬영했다 하니 그 수고와 노력에 그 시대 최고의 드라마가 나왔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왜구에 맞선 전라도 의병들의 본거지로, 갑오년 동학농민 혁명 때는 전봉준 녹두장군을 위시로 농민혁명군의 처절한 전투의 현장으로, 한국전쟁 때는 회문산과 가마골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의 주된 활동 무대였던 강천산과 금성산성으로의 3시간에 걸친 짧은 역사 나들이는 유익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와 아픔을 보듬은 유구한 역사의 현장이 오래되어 빛바랜 필름처럼 압축되어 눈앞에 찰나의 순간처럼 빠르게도 지나갔습니다.
과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넋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민중들의 넋. 그리고 좌우로 편을 갈라 서로 간에 죽이고자 시퍼렇게 눈을 치켜떴던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위로해야 할까요?
오늘 그 역사의 현장을 잠시나마 걸으면서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되새겨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애써 찾아 걸어 보았습니다.
사계절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담양 금성산성은 남녀노소 큰 부담 없이 운동화에 일상복으로 충용문까지 오를 수 있으며 숲길을 거닐어 동자암과 보국사 터까지만 다녀와도 훌륭한 산림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마음이 동하여 등산화와 등산복을 갖춘다면 물 넉넉히 준비하고 간식 준비하여 5시간이면 원점회귀 할 수 있으니 선조들의 기개를 느끼고 담양호를 바라보는 멋진 조망과 함께 역사공부도 할 겸 가족들 손잡고 금성산성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