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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숲> 산에서 길을 찾은 청춘, 영화 우드잡

대한민국 산림청 2018. 7. 24. 11:00





글. 정수진(칼럼니스트)



 뜨거운 사랑 혹은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하지만 잔잔하고도 강한 울림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본격임업 권장 영화’로 불릴 만한 <우드잡>은 분명한 결과가 없으면 불안한 현대인,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힐링 영화다. 


어느 나라고 청춘은 푸르른 만큼 힘든 모양이다. 국내에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을 포기하는 ‘N포세대’가 있다면, 일본에는 높은 청년 실업률로 좌절하여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사토리 세대’, 유럽에서는 1,000유로로 한 달을 사는 ‘1,000유로 세대’나 불안정한 고용으로 이케아 제품처럼 단기간에 쓰고 버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케아 세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곳곳의 청춘들이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청춘은 어느 시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치열하고 고민하고 세파에 부딪쳐야 하는 존재이긴 하다. 특히 갓 사회에 나온 청춘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 마련. 일본영화 <우드잡>의 주인공 ‘히라노 유키’ 또한 그렇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설상가상 사귀던 여자친구에게도 이별 통보를 받은, 평범한 청년. 재수할 만큼 열의가 있지도 않던 그의 눈에 띈 것이 예쁜 홍보모델이 실린 산림관리 연수생 모집 전단지였다. 그렇게, 유키는 별 생각 없이 산림 연수생이 되기 위해 시골마을로 향한다.






예쁜 홍보모델에 반해 즉흥적으로 산림관리 연수생에 지원한 만큼, 유키에게 진지한 열의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도시청년에게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툭하면 살모사가 출몰하는 시골이 마음에 찰 리도 없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교육 1개월과 실습 11개월, 총 1년을 버텨야 한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가지치기와 전기톱으로 나무 자르는 법 등을 배우다 고작 며칠만에 야밤 탈출을 감행한다. 요행히 웬 헬멧 쓰고 오토바이 탄 젊은이가 기차역까지 그를 데려다 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젊은이가 유키가 반했던 산림관리 연수생 모집 전단지의 홍보모델! “너 같은 애들은 어차피 취직해봤자 일주일도 못 버티고 뛰쳐나올 걸.” 헬멧 벗은 그녀가 던진 야멸찬 한 마디에 유키는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가 제대로 교육을 마친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못 이루어낼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1개월의 교육은 말 그대로 교육. 유키는 첩첩산중의 가무사리 마을의 ‘나카무라 임업’에 배정되어 11개월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가무사리 마을에서 유키를 맞는 것은 산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지만 거칠기 짝이 없는 ‘요키’를 비롯해 대를 이어 임업에 종사 중인 조합원들, 그리고 전단지 홍보모델이었던 초등학교 선생님 ‘나오키’다. 시골마을엔 흔치 않은 젊은이가 왔으니 반가울 법도 한데, 분위기는 영 모호하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임업에 대한 자부심이 짱짱한 산사나이들은 어리바리한 유키가 못 미덥고, 이전에 있었던 산림관리 연수생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가 도시로 도로 가버리는 바람에 상처를 안고 있는 나오키에게 도시남자란 믿을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게다가 실전으로 대하는 대자연 또한 유키에게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마을에 도착하는 첫날부터 산길에 쓰러진 삼나무를 치우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빗길의 낭떠러지에서 구르는가 하면, 거머리떼에게 엉덩이를 공격당하며 조합원들에게 하반신을 공개하는 굴욕도 당한다. 처음에 유키에게 산은 그저 막연하게 낯설고 힘든 곳이었을 것이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수십만 그루의 묘목을 심어야 하고,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야 하는. 그러다 유키에게 산, 그리고 조합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생긴다. 무려 105년 전인 메이지 시대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 팔고 돌아오는 길, 나무 한 그루가 무려 80만엔(약 780만 원)에 판매된 사실을 놀라워하던 유키가 조합원들에게 말한다. “나무 한 그루에 80만엔이라니! 이 산의 나무를 다 베어내면 억만장자가 되잖아요!” 이때 유키에게 답하는 작업반장의 말은 멋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찡하다.





“그 나무를 다 베어 팔면 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는 어쩌라고? 100년도 못 가서 대가 끊겨. 그래서 묘목을 계속 심어야 해. 이상한 일 같겠지만, 농부는 자신이 심은 채소의 맛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임업은 아니야.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알

수 있어.”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말에 담긴 울림은 상당하다. 실제로 영화에서 105년 된 거대한 나무가 베어져 넘어가는 장면은 별다른 액션 신 혹은 감정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느 명배우가 열연하는 장면 못지않게 보는 이를 몰입하게 만든다. 아마 단지 나무가 아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산사나이들에 둘러싸여 나무를 심고, 나무를 자르고, 나무의 종자를 얻기 위해 수십 미터의 나무 위를 오르면서 유키는 하루하루 산을 사랑하는 산사나이로 거듭나게 된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슬로라이프 연구회’라는 회원들과 함께 찾아와 조합원들의 삶을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지켜보며 촬영할 때, 다혈질의 요키보다 먼저 화를 내며 그들을 쫓아내는 것도 유키다. 어느덧 그는 요키처럼 산을, 산을 사랑하는 마을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타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48년 만에 열리는 마을의 축제에 참여하게 될 정도로, 유키는 가무사리 마을에 완벽히 적응한다(훈도시 차림의 남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살짝 민망하지만 이 축제 장면은 상당히 유쾌하다).






<우드잡>은 미우라 시온의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원작으로, 실제 작가의 외조부가 미에 현에서 임업에 종사하여, 어릴 적부터 100년 후 팔릴 나무를 기르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거대하고도 푸르른 산과 숲, 자연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까,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일까, 영화 또한 큰 사건이 벌어지는 등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잔잔한 가운데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워터보이즈>, <스윙걸즈>, <해피 플라이트> 등의 전작에서 평범한 인물들의 유쾌한 웃음과 발랄한 성장담을 보여준 바 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유키는 1년의 실습을 무사히 마치고 어떻게 되었냐고? 묘한 감정을 주고받던 나오키와는 어떻게 되느냐고?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들이 그렇듯 보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없다. 그냥 직접 영화를 보자.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산과 숲이 담은 푸르고 편안한, 신비한 분위기가 화면 곳곳에서 장면과 소리로 전달되니까. 잠시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가까운 뒷산에라도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 <우드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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