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계모설화에 등장하는 꽃나무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7:16

우리의 계모설화에서 버드나무 또는 대나무는 전처자식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계모에겐 나쁜 마음씨를 들통나게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또한 악한 계모에게 구박받아 죽은 자매는 장미와 연꽃으로 다시 태어나 계모에게 복수를 한다.

 

설화 속의 여성상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우리 계모설화 속의 여성상은 문제의식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여성상에 대해 유교적 이념으로 극단적인 여성상을 설정하여 놓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계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계모는 의붓어머니이다. 아버지의 후처라 하는 편이 낫겠다. 설화 속의 계모는 전처자식과의 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많은 문제를 포함한다. 그 문제는 갈등을 주제로 한다. 그런 계모설화나 그 설화를 작품화한 고대소설에서는 대부분의 계모가 악하게 그려지고 전처자식은 착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전처자식은 어떤 것의 도움을 받거나 변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꽃나무의 도움을 받거나 그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대나무나 버들피리로 계모 악행 알려


먼저 나쁜 계모와 눈동자를 모티브로 하는 설화를 간추린다. 어느 정승이 아내를 잃고 한 아이를 키우다가 둘째 부인을 얻는다. 정승이 귀양을 가게 되자 아이는 계모 밑에서 자란다. 계모는 전처자식을 미워해서 계략을 꾸민다. 귀양 간 아버지가 실명을 했기에 그 눈을 고치려면 산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거짓 편지를 아버지가 보낸 것처럼 꾸민 것이다.

 

효성이 지극한 아이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두 눈을 빼낸다. 계모는 전처자식의 눈을 헝겊에 싸서 바느질 상자 속에 담아 둔다. 계모는 그것도 모자라 실명한 전처자식을 죽이려고 강물에 밀어 넣는다. 그러나 강물에 휩쓸려가다가 버드나무 강가에 이른 아이는 버드나무를 직접 베어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분다. 전승하는 이야기에 따라서는 대나무밭에 이르러 그곳의 대나무로 직접 퉁소를 만들어 불고 다닌 것으로 나온다. 버들피리 또는 퉁소를 불면서 동냥질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가던 아이는 귀양살이를 끝마치고 돌아오던 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난다. 아이의 실명 사연을 들은 아버지는 후처를 추궁해서 바느질 상자 속에 넣어둔 아이의 눈알을 도로 찾아낸다. 실명한 아이의 슬픈 사연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주룩주룩 흘린 눈물에 아이의 눈알을 담갔다가 다시 눈에 넣자 아이는 곧바로 시력을 되찾는다. 아버지는 계모의 죄를 벌한다.

 

이 이야기에서 버드나무 또는 대나무는 전처자식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계모에겐 나쁜 마음씨를 천하에 알리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아이는 버들피리나 퉁소를 불면서 동정을 구해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음은 물론 그 소리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버들피리나 퉁소 소리는 또한 계모의 악한 마음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버들피리를 만든 버드나무는 부드러운 어머니를 상징하고, 퉁소를 만든 대나무는 군자 또는 충절을 표상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연꽃으로 환생해 악한 계모 복수해


후처의 나쁜 계략 때문에 죽은 아이가 꽃으로 환생하는 계모설화도 있다. 이 설화를 소설화한 것 중 잘 알려진 것이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이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로서 계모의 흉계에 의한 원한 맺힌 죽음을 다뤘다. 즉 계모에 의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원통한 죽음을 당한 장화와 홍련 자매가 원혼이 되어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평안도 철산지방의 좌수 배무룡에게는 장화와 홍련이라는 딸이 있었다. 부인 장씨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자 후처로 허씨를 맞는다. 허씨는 3형제를 낳은 뒤부터 전처 소생의 장화와 홍련 자매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장화의 혼인날이 다가오자 허씨는 혼수가 아까워 흉계를 꾸민다. 허씨는 커다란 쥐의 껍질을 벗겨 장화의 이불 속에 넣고 낙태한 것처럼 꾸민 후 장화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알린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후처의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후처 아들에게 장화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도록 한다. 장화 언니가 죽자 홍련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연못에 빠져 자살한다. 그 후 고을에 부임한 정동우라는 부사가 계모 허씨를 문초해 모든 것을 밝혀내고 능지처참한다. 아버지 배무룡은 그 후 둘째 부인보다 착한 윤씨를 셋째 부인으로 맞는데, 윤씨 부인은 꿈에 옥황상제로부터 2송이의 꽃을 받는 태몽을 꾼다. 그 꽃은 빨간 장미와 연꽃이었다. 윤씨 부인은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달이 차자 쌍둥이 딸을 낳는다. 그래서 ‘여아가 꽃으로 변해 태어났다’고 생각해 이름을 장화와 홍련이라 짓는다. 쌍둥이 자매는 성장해 평양의 부자 이연호의 쌍둥이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

 

이 설화에서는 악한 계모는 죄를 받아 죽지만 계모에게 구박받아 죽은 자매는 장미와 연꽃으로 환생한다. 장미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표상하므로 누구의 자식이라도 사랑으로 보살펴 줘야 한다는 상징성을 띠며 연꽃으로 환생한 것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관련지을 수 있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서는 나쁜 둘째 계모와 착한 셋째 계모의 대조적 모성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잘 알려진 계모설화를 소설화한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콩쥐팥쥐전』이 있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신데렐라(cinderella)형 설화를 소재로 했다. 계모 밑에서 갖은 학대를 받던 콩쥐가 고귀한 인물과 혼인하게 되고, 콩쥐를 괴롭히던 팥쥐와 계모는 처벌받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죽은 콩쥐가 연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장화홍련전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줄거리를 보자.

 

조선 중엽에 최만춘은 아내 조씨와 혼인한 지 10년 만에 콩쥐라는 딸을 둔다. 그러나 콩쥐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조씨가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최만춘은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는다. 계모 배씨는 자기의 소생인 팥쥐만을 감싸고 전처 소생인 콩쥐를 몹시 학대한다. 계모는 밭을 맬 때에 팥쥐에게 쇠호미를 주고 콩쥐에게 나무호미를 주어 골탕을 먹이려 한다. 그렇지만 콩쥐는 그때마다 하늘에서 어머니의 넋인 소가 내려와 도와주고 과일도 준다. 외가의 잔칫날이 되자 계모는 팥쥐만 데리고 가면서 콩쥐에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곡식 찧고 베 짜는 과중한 일을 시킨다. 그러나 두꺼비가 나타나 독의 구멍을 막아 주고, 새떼가 몰려와 곡식을 까 주고,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짜 준다.

 

뿐만 아니라 콩쥐는 선녀가 주고 간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잔치에 가다가 냇가에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이 신발이 감사(혹은 원님)의 눈에 띄게 되고, 수소문 끝에 콩쥐의 것임이 판명된다. 감사는 콩쥐와 혼인한다. 그러나 콩쥐는 팥쥐의 흉계에 넘어가 연못에 빠져 죽고, 팥쥐가 감사 부인으로 콩쥐 행세를 한다. 그 뒤 연꽃으로 피어난 콩쥐가 계속 팥쥐를 괴롭히다가 마침내 감사 앞에 나타나 자초지종을 고한다. 감사가 연못의 물을 퍼내 콩쥐의 시신을 건져내니 콩쥐는 도로 살아난다. 감사는 팥쥐를 처단해 그녀의 어머니 배씨에게 보내고, 이를 받아본 계모 배씨는 선물이 온 줄 알고 기뻐하다가 딸의 시신인 줄 알자 기절해 죽는다. 여기에서도 콩쥐가 연꽃으로 환생한 것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관련지을 수 있다.

 

산나물과 독나물도 계모설화에 등장해


이와 비슷한 계모설화는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채록되고 있다. 예컨대 전북민담에서는 계모가 전처 딸을 학대해 겨울철인데도 산에서 나물을 뜯어와야만 밥을 주겠다고 한다. 전처 딸은 산에서 만난 청년의 도움으로 매번 산나물을 캘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안 계모는 전처 딸 모르게 청년을 죽인다. 전처 딸은 나물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다. 쫓겨난 딸은 고생 끝에 죽은 사람 살리는 꽃을 구해 죽은 청년을 살리고 결혼해 잘 살지만 계모는 천벌을 받아 죽는다.

 

경남 거창군에서 전하는 계모설화는 장화홍련전의 원형적 내용이다. 계모가 전처의 딸에게 독나물을 먹여 아프게 한 뒤에 자리에 눕게 한다. 그리고 껍질 벗긴 쥐를 속옷에 넣어 낙태했다고 모함을 한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쫓아낸다. 딸은 이곳저곳을 헤매던 중에 멋진 청년을 만난다. 그와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아무튼 계모설화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전처 아이들이 모두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지만 전처 자식들을 학대하고 모함한 계모들은 모두 벌을 받는다. 따라서 계모설화는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징계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도덕적 관념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계모의 학대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는 재생은 동양의 윤회사상을 형상화한 관념이다. 『장화홍련전』과 『콩쥐팥쥐전』에서 전처 딸이 연꽃으로 다시 환생해 자신을 학대한 계모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좋은 예다. 게다가 민담에서 산나물과 독나물의 등장은 옛날의 어려운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계모설화에서 주인공이 당한 고난은 행운으로 극복하지만 고난을 극복하는 행운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만 얻어진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악행을 저지른 계모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교훈도 있다. 재혼이 빈번한 요즘 세태에서 볼 때에 악행을 일삼는 계모는 더욱 지탄받겠지만 사실 그런 계모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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