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음양 나무의 여신(女神)과 성의 조화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30

우리 나무숲의 산림은 음양의 조화처럼 여성 산신도 있고 남성 산신도 있지만 기원은 여성 산신이었다. 원주 신림의 성황림은 여성 신목과 남성 신목이 상대적 일체감을 보여주었고, 민속의 나무시집보내기는 음과 양을 결합시킨 유감주술이었다.

이야기 하나, 산신은 여신에서 시작돼


신(神)은 자연의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를 인정하는 우주관이 애니미즘(Animism)이다. 나무가 울창한 산림에도 신이 존재한다. 산신(山神)이 그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처럼 여산신(女山神)도 있고 남산신도 있단다. 산신은 산을 관장하는 정령이다. 애초의 산신은 생성과 풍요를 베푸는 신이었다. 즉 여신이었다. 일찍이 인류는 모계중심사회의 과정에서 산을 어머니처럼 여겼다. 산은 제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잉태하고 의지처가 됐기 때문인가보다. 그래서 여산신이 시작됐으며 한반도의 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가락국 김수로왕의 어머니인 정견모후(正見母后)는 가야산을 거주 공간으로 삼았던 여산신이었다. 선도성모(仙桃聖母)는 경주 선도산의 여산신이었고, 마야고는 지리산에서 자리를 잡은 여산신이었다. 신라 박제상의 부인은 세 딸과 더불어 남편을 기다리던 치술령에서 죽은 후 치술신모(述神母)의 산신이 됐다. 속리산 산신도 성모대자재신(聖母大自在神)으로 여산신이다. 이밖에도 성거산성모, 남해왕부인, 운계산성모, 지리산 위숙성모, 영취산 변재천녀, 운제산 운제성모, 김유신에게 나타난 골화, 나림, 혈례 등의 산신은 모두 여성이었다.

 

민간에서 일찍부터 신앙하던 산신을 여성으로 생각한 것은 여성의 회임과 출산에 따른 생산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여산신은 산각시, 성모, 산마누라, 산신할미, 산신할매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산신제를 주도하는 남성은 제를 지내기 전에 일정기간 부인과 잠자리를 하지 않으며 남자가 직접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이것은 산신이 여성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로부터 토지신이나 곡신을 여성으로 상상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사고였다. 혁거세의 모후를 선도성모로 상정하고 신라의 수호신으로 믿은 것이나 고구려 주몽의 모후인 유화를 수신(邃神)이라 하여 곡물신으로 숭배한 것은 같은 의미를 띤 신화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성모의 생산력을 상징하는 복사나무 열매는 그 형태와 빛깔이 여근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도색(桃色)이라는 말은 원래 복사꽃 빛깔의 연분홍색을 가리켰지만 이보다 남녀 사이의 색정(色情)적인 성행위를 의미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산신탱화에 나타난 산신도 중심인물이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 전통적으로 여자 산신이 관장하는 산은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 등이다. 속리산 천황사,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의 산신탱화와 계룡산 동학사의 산신상 등에 나타난 중심인물은 여산신이다. 대체로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으로 호랑이에 타거나 기대고 있으며 손에는 반드시 불로초를 들고 있다. 특히 계룡산 동학사의 산신상은 모습이 인자하고 곱상한 얼굴에다가 단정하며 트레머리에 댕기를 둘렀다.

 

러나 애초의 여산신은 점차 남성적 존재로 변하게 된다. 산신숭배도 왕조보존을 위한 호국사상의 형태로 바뀌었으며 산신각에 모시는 산신도 수염을 드리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때문에 오늘날 산신은 주로 남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산신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것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행하면서 점차 남자의 권위가 커진데다가 조선시대 남성중심의 유교사상과 그리고 신선의 삶을 그리는 도교의 영향으로 남성의 모습으로 변모해 간 탓이다.

 

이야기 둘, 성황림은 음목과 양목 모두 숭배


산림에 신이 있다면 그곳의 나무는 물론 숲도 신성할 것이다.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에는 ‘성황림(城隍林)’이라 부르는 숲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는 ‘조선보물고적명승 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고 1962년에는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된 숲이다. 이 일대는 신림(神林)이라는 이름처럼 신성한 숲이 많아 오래 전부터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왔다. 성황림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숲으로 숭상했다. 때문에 이곳의 주민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 자정에 이 숲의 성황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빈다. 이 숲에는 치악산 성황신이 타고 내려온다는 큰 나무들이 많다. 200여 년을 살고 있는 나무들이 자라는 만큼 성황림의 역사도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황림의 당집은 커다란 나무가 주위를 둘러싼 중심에 있고, 신목은 당집의 오른편에 우뚝 솟은 전나무 등 여러 나무가 있다. 특히 전나무는 높이 29m, 가슴높이 지름 130cm에 이르는 고목이다. 당집 왼쪽에는 가슴높이 지름 93cm인 음나무가 서 있다. 나무에도 음과 양이 있다. 양목은 큰 나무를 말하고, 음목은 작은 나무나 덩굴처럼 의지해 살아가는 나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음나무와 전나무를 음과 양의 신목으로 여겼다. 즉 전나무는 남성 신목이고 음나무는 여성 신목으로 숭배하고 있다. 전나무를 남성 신목으로 여긴 까닭은 아마도 웅장하게 자라는 기상을 남성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음나무를 여성 신목으로 여긴 이유는 전나무보다 낮게 자라는 것과 음나무 이름의 ‘음’자를 차음해 여성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와 반대로 음나무가 남성 신목이고 전나무가 여성 신목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왜냐하면 전나무는 열매에서 흘러내리는 흰빛의 즙액을 ‘젖즙’에 비유해 젖나무→젓나무→전나무로 이름이 변한 나무이므로 여성 신목으로 좋고, 음나무는 줄기의 날카로운 가시를 남근에 비유할 수 있어 남성 신목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음나무는 가시가 무서워 엄나무→음나무로 이름이 변한 것이다. 어쨌든 그건 그렇다치고 마을 사람들은 성황림을 윗당숲이라 하고, 그곳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성남교 부근의 숲을 아랫당숲이라 부른다. 그리고 위아래의 숲에 음양의 이치를 결합시켰는데, 윗당숲을 남편숲이라 부르고 아랫당숲을 아내숲이라 부른다. 1972년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됐던 아랫당숲은 1978년 수해로 대부분의 나무가 유실돼 현재 보호가 해제된 상태지만 성황림의 신성한 아내숲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으리라 본다. 현재 성황림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이야기 셋, 나무도 남녀로 혼인시켜


음과 양의 조화는 우리의 나무민속에서도 나타난다. 나무시집보내기는 주로 설날이나 정월대보름날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것을 말하는데, 정월 초사흗날에도 많이 실시했다. 나무시집보내기는 가수(嫁樹)라고도 하는데, 서광계의 『농정전서(農政全書)』에는 정초 오시(午時)에 가수를 한다고 기록돼 있다. 나무시집보내기는 벌어진 과일나무의 가지를 여성으로 보고 가지와 가지 사이에 남성의 돌을 끼워 넣는 것으로, 성행위를 상징시켜 많은 수확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하나이다. 마치 자손의 번창이 남녀의 혼인에서 비롯되듯이 과일나무에도 이 같은 수단을 쓰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에서 유래한다. 물론 나무의 가지에 돌을 끼워 넣으면 가지가 낮게 양쪽으로 갈라져 햇빛을 많이 받게 되고 그러면 광합성도 활발하게 이뤄져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인하는 선인들의 지혜다. 이를 음양의 이치에 결합해 성풍속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인 것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영동지방은 대보름에 감나무를 시집보내고, 영서지방은 대추나무, 경기지방은 배나무나 호두나무에 ‘나무를 접붙인다’며 돌을 끼운다. 전남지방에서는 나뭇가지에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시집보낸다’고 하는데 나무에 있는 목신이 그 집에 들어 있으므로 다른 집으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란다. 이것은 남녀의 성행위와 결혼풍습의 모방을 통해 풍작을 유도하는 연상법이다. 유독 대추나무는 5월 5일 단옷날에만 시집을 보내 많은 번식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단옷날의 나무시집보내기는 별도로 대추나무시집보내기라고도 한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단오 때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낸다고 했다. 나무시집보내기와 같은 인간적 배려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멀리 따로 있어 애만 태우는 은행나무도 등한시 하지 않았다. 암나무의 은행나무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꼭 맞는 수나무 토막을 끼워주는 유감주술은 대보름에 이르는 홀숫날에 베풀었다.

 

『산림경제』에서는 ‘은행나무는 연못가에 심는 것이 좋다. 그것은 은행나무가 물속에 비치는 자신의 그늘과 혼인을 하여 종자를 가지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수나무도 그 속에 암나무의 가지를 넣어 주면 수나무일지라도 열매를 맺는다’라고 했다. 음과 양은 쌍이다. 그 속에 하나가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둘이 아니고 하나다. 하나에서 둘이 나타날 뿐이다. 또한 그것은 상대적인 의미일 뿐이다. 상대가 있다는 것은 조화를 함축한다. 조화의 관념으로 보면 음과 양의 상대는 존재를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 나무의 신(神)과 성(性)을 음과 양의 조화로 살펴봤다. 그랬더니 숲속에서 나무를 볼 수 있었고 나무 속에서 숲을 볼 수 있었다. 숲과 나무도 하나였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유사한 실체가 나무숲에도 있었다. 애니미즘의 관념체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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