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여인들은 꽃나무와 관련한 민요풍의 노래 부르기를 무척 좋아했다. 이를 통해 생활의 어려운 형편을 묘사했음은 물론 노동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잘알려진 '꽃타령'은 여인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다. 여러 꽃의 이름을 들며 그 꽃의 빛깔, 향기, 모양 등을 그리는 내용인데, 가사는 '꽃을 사시오,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로구나. 꽃바구니 둘러메고 꽃 팔러 나왔소. 붉은 꽃, 푸른 꽃, 노랗고도 하얀 꽃, 남색 자색의 연분홍 울긋불긋 빛난 꽃, 아롱다롱 고운 꽃…' 등이다. 장단이 빠르고 흥겨운 노래로서 아낙네들이 동산에 올라 봄놀이를 하며 즐겨 불렀다.
이렇듯 한민족의 여인들이 즐겨 불렀던 민요풍의 노래가 더러 있는데, 그 중에는 풀과 꽃, 나무를 소재로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인의 생활을 묘사한 노래도 있다.
꽃노래의 화초타령 많이 불러
강릉의 꽃굿과 영덕의 오구굿에서는 굿의 후반부에 무녀들이 춤을 추면서 꽃노래를 부른다. 꽃굿노래는 불교적 향기를 풍기는 노래이며, 대관령의 신(神)을 보낼 때에 마지막으로 신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구굿노래는 제상에 진열된 종이로 만든 꽃가지를 들고 둥근 모양을 그리며 춤을 추면서 부른다. 이 노래는 극락세계로 가는 망자의 넋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부르면서 춤을 추지만 점차 노래가락과 춤이 빨라진다. 마지막에는 무녀 둘이 마주서서 뛰면서 춤을 추고 나머지 무녀들은 노래만 부른다.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화초타령'은 온갖 꽃이 있는 궁중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으며, 연꽃, 매화, 벚꽃, 국화, 진달래 등 여러 꽃나무가 나타난다. 심청가에 등장하는 왕은 왕비가 없이 꽃을 즐기는 성격의 인물로 설정돼 있고, 선인들이 심청이 들어 있는 연꽃을 헌상하자 굉장히 기뻐하는 극적 구성으로 돼 있다. '화초도 많고 많다'로 가사가 시작돼 맨 처음 연꽃이 등장하고 각종 꽃에 얽힌 한시가 나열된 다음 맨 나중에 벌과 나비 등이 모여드는 광경으로 끝난다.
여인들이 즐겨 불렀던 꽃나무 소재의 노래는 이외에도 도화타령, 매화타령, 배꽃타령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도화타령은 복사꽃을 노래한 것으로 기생인 도화가 고종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으므로 이를 시기한 비(妃)가 도화의 얼굴에 상처를 내어 쫓아낸 일을 노래했다. 그 가사는 '요지상 반도심어 / 그 반도 동편가지 / 금계성 들인 곳에 / 새벽꿈 훌쳐깨니 / 동방이 밝아온다/ 아침날빛 시로와라 / 좋구나 도화로다. (후렴)에야 에야 에헤야 / 에헤 야라지라 / 좋구나 도화로다.'이다.
'매화타령'은 매화꽃과 함께 봄날의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그물을 맺고 푸는 것에 사랑이 맺고 풀리는 이치를 빗대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불렀다. 경기도 민요의 매화타령은 다른 긴 잡가의 형식과는 달리 '인간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더욱 설타' 등의 사설에 후렴으로 ‘좋구나 매화로다 에야 디야 에헤 이에야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구나’가 붙는다. 또한 배꽃타령은 첫 가사에서 배꽃을 큰 아기 얼굴에 견주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으며, 둘째마루 이하에서는 도화, 행화, 국화, 모란, 난초, 석류, 매화, 장미, 연화 등을 큰 아기 얼굴에 비유하고 있다.
여인의 형편과 생활 묘사
여인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중에는 여인들의 형편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의 것도 전하고 있다. '동백타령'은 전라도의 신민요로서 경쾌한 선율을 가지고 있으며 바닷가 처녀들의 형편을 그렸다. 가사는 '물새울고 파도치는데 섬새악씨 노랫소리. (후렴)가세 가세 동백따러 가세' 등과 같다. 또한 대구지방에서 채록된 '동백 따는 처녀 노래'는 동백꽃을 따는 처자(處子)를 노래한 것으로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절)저 멀리 바다에는 아낙네들이 조개를 줍고 우리 고장 뭍에서는 큰 애기들이 동백을 따네. (제2절)노란 노란 동백따다 기름짜서 호롱등에 불을 밝혀 놓고 큰애기 시집갈 혼수만드네 살기좋은 내고장일세. (제3절)빨간 동백 따다가는 임 계신 방 꽂아주고 하얀 동백따다가는 부모님 방에 꽂아 놓세. (제4절)십오야 둥근달이 온 천하 비쳤을 때 우리 꽃잎은 수줍다고 얼굴을 돌리네 고개를 숙이네.
그리고 처녀나 출가한 딸이 친정 부모의 생일날에 여러 가지 꽃의 이름을 들어 그 특징을 인간사에 비유해 경축의 뜻으로 부른 꽃노래가 있다. 그 첫머리를 들면 '청노지상 살구꽃은 술잔 찾는 지성이요 / 해듯해듯 박꽃은 지붕위로 취돌으네 / 검고 붉은 목단꽃은 사랑 앞에 휘돌으네'이다.
또한 조선시대 규방가사인 '화조가'는 경북 안동지방에 구전돼 오던 것으로서, 첫 대목을 보면 ‘어화 가소롭다 남아평생 가소롭다 / 청춘사업 바랬더니 백두옹이 되단 말가 / 요순성대 다시 만나 태평화조 잔치하니 / 강구연월 노인들은 격앙가로 화답하고’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즉 꿈 많던 젊은 시절도 가고 백발이 된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여생을 꽃과 새와 더불어 태평성대를 기리며 살아가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이밖에도 아름다운 해당화는 때가 되면 시들지만 춘삼월이 되면 다시 피니 실망하지 말라는 꽃노래도 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 꽃을 보고 지나가나 / 꽃아 꽃아 슬어마라 / 명년 삼월 닥쳐온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경기도 광주지방에서 전하는 질경이노래는 불행했던 과거에 한 여성이 출생부터 죽는 날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끈질기게 살던 일대기를 엮은 전기적인 설화요(雪話謠)로서 가락이 애처롭다.
노동의 어려움과 극복 나타내기도
여인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중에는 농촌의 어려운 생활을 표현한 것도 있고 노동의 힘겨움을 달래는 내용의 것도 있다. 고사리를 꺾으면서 부르는 노래로서 고사리타령은 황해도 및 경북의 영덕, 충남의 대천과 청양, 전북의 장수, 제주지방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부인이 남편에 대한 불만, 가난의 한스러움, 인생살이나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애꿎은 고사리만 비틀어 꺾는다는 내용이 많으며 노동요 또는 부요(婦謠)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경북 영덕지방의 고사리타령은 다음과 같다.
올라가면 올고사리/ 내려오면 낼고사리/ 요모조모 꺾어요로/ 시폭푸에 구룩채와/ 세빌같은 동서태세….
전국에 분포된 김매기소리는 논의 김(잡초)을 맬 때에 부르는 논매기소리와 밭의 김을 맬 때 부르는 밭매기소리가 있다. 김매는 일은 여럿이 함께 치르지만 동작의 통일은 필요하지 않으므로 노래는 일의 동작과 밀착되지 않는다. 그저 일의 흥취를 북돋우는 데에 목적이 있다. 김매기소리는 지방에 따라 명칭이 제각기 다르고 종류도 다양하다. 강원도 명주군 일대에서 불리는 논매기소리는 '오독떠기'라고 하며, 여주와 이천에서는 방아타령을 부르고, 충북에서는 아라성소리, 대허리소리를 부르며, 충남에서는 상사소리를 한다. 전라도에서의 논매기소리는 들노래라고 하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강원도와 경상도 산간에서는 아라리타령과 메나리를 부른다. 경남에서는 논에 들어갈 때에 들소리, 여럿이 논을 매고 손을 휘저으면서 부르는 두름노래, 논에서 나올 때에 부르는 날소리 등이 있다. 강화도에서는 김매기가 끝날 무렵에 흥에 겨워 부르는 '아용타령'이 있다. 밭매기소리는 강원도의 산간지방에서는 논김매기 때와 같이 '아라리타령'을 부른다. 제주도에서는 밭에서 김맬 때 부르는 소리를 검질매는 소리 혹은 사대소리라고 하는데, 이 소리는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면서 부르기도 하나 주로 여름철 조밭의 김을 매면서 부른다.
불길같이 더운날에 / 뫼같이 길은 밭에 / 이골저골 매어갈 때 / 심시타령 절로난다. <창원 민요>
요내밭골 어서매고 / 임오밭골 마즈매세 / 저건내가 황새봉에 / 청실홍실 군디봉에 / 임캉나캉 얼려띠어 / 떨어질까 염려로다. <함양 민요>
검질짖고 굴너른밭듸 / 소리로나 구경간다.
(후렴)어하 어하야 / 어허요리 사대로다.
뒷멍애랑 저건저건 / 앞멍애랑 소곡소곡.
(후렴)어하 어하야 / 어허요리 사대로고나.
실픈이랑 그른듯하면 / 성두언만 가실소냐.
(후렴)어-하 어하야 / 어허요리 사대로고나.
이런날 이런날하문/ 성두언만 가실소냐.
(후렴)어하 어하야/ 어허요리 사대로고나.
이연뱅이 붉은때지영/ 저녁이랑 밝은때먹자.
(후렴)어하 어하야/ 어허요리 사대로구나. <제주도 민요>
창원지방의 김매기소리는 노동에서 오는 피로감과 농부가 된 신세타령을 털어놓았다. 함양지방 민요는 작업 중에도 사랑을 잊지 않은 노래이다. 작업의 고통도 잊고 자기에게 맡겨진 분량을 빨리 매고 임의 분량도 매어주자는 것으로 노동의 괴로움보다 임의 밭을 매는 즐거움이 앞섰다. 제주도에서는 밭농사가 많아 검질매는 소리가 풍부하다.
나물 캐는 노래는 산골 처녀들이 나물을 캘 때 부르는 노동요다. 지치 캐는 노래가 호남지방에서 전하는데 나물 캐는 활동을 소재로 하여 남녀의 애정을 읊고 있다. 그러므로 노래의 가락은 대체로 애조를 띤다.
우리의 대표적인 나물 캐는 노래는 도라지타령으로서, 이 민요는 강원도 산골에서 처녀들이 도라지를 캐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 널리 퍼진 것 같다.
그리고 옛날의 부녀자들은 메밀을 재배하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메밀노래는 메밀을 심는 일로부터 시작해 거두어 들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읊은 민요이다. 내용은 메밀음식이 빛깔에 비해 맛이 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메밀노래의 예는 다음과 같다.
비탈밭에 메밀갈아/ 메밀간지 열흘만에/ 앞집뒷집 동무들아/ 메밀구경 하러가세/ 잎은동동 떡잎이요/ 열매동동 까만열매/ 꽃은동동 배꽃이요/ 대는동동 붉은대요/ 점머슴아 낫갈아라/ 큰머슴아 지게져.<의성 민요>
끝으로 위의 내용 중 동백타령의 제2절에 나오는 노란 동백은 생강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따라서 이 민요를 통해 우리 여인들은 붉은빛의 동백뿐만 아니라 생강나무도 좋아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노래를 통한 고단한 삶의 극복 방법도 함께.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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