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꽃나무 설화에 나타난 여인의 삶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21

나무전설 속의 여인은 풀꽃전설의 여인과는 약간 달리 일편단심의 사랑을 위해 죽어 나무로 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또한 그리움의 감정을 극단적인 삶으로 승화시킨 경우도 더러 있다. 즉 나무전설 속의 여인은 삶과 사랑과 자연과의 관련성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설화 중에는 식물 유래를 짐작케 하는 얘기가 더러 있다. 이 전설은 대부분 변신담(變身談)에 속하며 문헌보다는 구전으로 널리 전해진다. 구성방식은 식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단순한 사건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본격 설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주로 어떤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병이 들거나 죽어 풀꽃나무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일은 대개가 일상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난한 삶이 조건으로 설정되고 있다. 거기에 꽃며느리밥풀과 할미꽃 등 풀꽃의 전설과 같이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빚어진 문제를 비롯해 고부간의 갈등이나 어머니나 할머니를 모실 수 없는 딸들의 열악한 삶의 조건도 이유 중 하나를 차지한다.

 

 때로는 사랑이나 그리움의 감정을 투사해 원인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랑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만큼이나 인간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풀꽃보다는 나무 유래담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에 관한 여인들의 삶과 사랑을 엿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쳐


배롱나무(또는 목백일홍)에 대한 설화는 2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인신공희(人身供犧)와 영웅의 괴물퇴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벼랑으로 떨어져 죽은 처녀에 관한 것이다.
이중 널리 알려진 줄거리를 보자.

 

어촌에서는 매년 이무기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습속이 있었다. 어느 해에 김첨지 딸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을 때였다. 젊은 청년이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했다. 김첨지의 딸이 혼인을 약속하자 용감한 청년은 100일만 기다리면 이무기를 죽인 후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용사는 그녀에게 "흰 깃발의 배로 돌아오면 승리해 생환하는 것이요, 붉은 깃발의 배로 돌아오면 패배해 주검으로 돌아오는 줄 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윽고 100일째 되는 날에 청년을 태운 배가 붉은 기를 달고 나타났으므로 그녀는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붉은 깃발은 사실 청년이 이무기와 싸울 때 붉은 피가 흰 깃발을 물들인 것이다. 그 뒤 그녀의 무덤에서는 이름 모를 꽃나무가 자라났으니, 사람들은 백일기도를 하던 처녀의 넋이 꽃나무로 환생했다고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단다. 소녀가 사랑하는 청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슬픈 설화이다.

 

이와 비슷한 소녀의 이야기는 경북 월성군 현곡면의 등나무(1962년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 전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신라 때에 19살과 17살의 예쁜 자매는 옆집의 씩씩한 청년을 짝사랑했다. 이 비밀은 어느 누구도 몰랐다. 어느 날 옆집 청년이 싸움터로 떠난 후에야 자매는 비로소 한 남자를 같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자매는 서로 양보하기로 결심하려는 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자매가 사랑하던 청년이 싸움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자매는 연못가로 달려가 얼싸안고 울다가 물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연못가에서 2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옆집의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와서 세상을 등진 자매의 애달픈 소식을 듣고 자신도 연못에 몸을 던지니 팽나무가 됐다. 이 등나무와 팽나무는 죽은 자매와 청년의 넋이 변한 것이라고 하며 죽어서도 애절한 사랑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등나무의 꽃을 말려 신혼부부의 이불 속에 넣어 두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는 것으로 믿고 있단다.

 

기다림과 그리움도 죽음으로 승화해


제주도 한경면의 바닷가 절부암(節婦岩)에는 늘푸른나무의 커다란 박달목서가 자란다. 이 나무는 높이가 8m 정도이고 밑동둘레는 3m를 넘는다. 바닷가에서 이처럼 큰 나무가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절부암에 얽힌 전설로 인해서 이 나무가 극진히 보호돼 왔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강씨 성을 가진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심한 풍랑을 만나 죽고 말았다. 이제나저제나 남편을 기다리던 고씨 부인은 여러 날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시체만이라도 건지기 위해 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서 남편의 시신이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부인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끝내 벼랑에서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다음날 남편의 시체가 그 바위 앞에 나타났지만 부인은 이미 죽은 후였다.

 

1852년(고종 3) 이 지역에 부임한 판관은 남편만을 생각하며 절개를 지킨 부인의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면서 바위에 절부암이라는 글을 새겨 고씨 부인을 기렸다. 또한 부인을 위한 제전을 마련하고 매년 3월 15일에 제례를 지내도록 했단다. 이러한 의식 때문에 절부암 부근의 숲은 훼손되지 않았고 박달목서가 크게 자라났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 고려 때는 한민족이 북방 몽골족에게 매년 처녀를 바치는 관례가 있었다. 가엾은 소녀 찔레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골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됐다. 몽골 사람은 마음씨가 착한 찔레에게 고된 일을 시키지 않아 생활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소녀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난해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내 부모가 좋으며,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형제자매가 좋았다. 찔레의 향수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 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소녀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 고향의 가족을 찾아 나섰지만 그리운 동생은 찾지 못했다. 슬픔에 잠긴 소녀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조국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고향집 근처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골짜기, 개울가마다 그녀의 마음은 흰 꽃이 되고 소리는 향기가 되어 찔레나무의 꽃으로 피어났단다. 그리움의 한을 조국에서 승화시킨 찔레 소녀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미인이나 모성애 상징설화도 있어


신라 때의 설화 같은 '화왕계(花王戒)' 이야기에는 장미가 미인으로 등장한다. 화왕계는 왕이 원효의 아들로 알려진 설총(薛聰)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부탁했더니 설총이 전한 내용이다. 즉 모란은 현란하게 꽃이 피는 꽃 중의 왕, 곧 화왕(花王)으로 군림했다. 많은 꽃나무들이 화왕의 향궁(香宮)에 들어갔고 벼슬을 얻었다. 어느 날 절세미인 장미가 화왕인 모란에게 "첩이 일찍 왕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으니 행여 버리지 마옵시고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옵소서."하고 말했다.

 

이때 포의한사(布衣寒士)로 길거리에 있던 할미꽃이 허리를 구부리고 화왕 곁으로 와서 일하기를 원하며 "요염한 여인과 가까이함은 패망을 자초하는 길일 것입니다."라고 하여 미녀에게 현혹되지 말기를 간했다. 그러나 화왕은 이미 장미의 유혹에 빠져 있는 중이라서 할미꽃의 충언을 듣지 않았다. 후에 왕도 깨닫고 할미꽃에게 사과했단다. 이상의 우화적 단편산문인 화왕계는 당시 신문왕을 풍간(諷諫)했다는 설화로서『삼국사기』설총열전에 실려 있으며,『동문선(東文選)』에도 수록돼 있다.

 

게다가 잡귀를 몰아내는 나무로 잘 알려진 복사나무(복숭아나무)는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의 나무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돼 그 과일을 먹으면 얼굴이 예뻐지는 것으로 믿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桃花女)는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신라 진지왕이 반할 정도였다. 복숭아는 그 형태가 여근에 비유되기도 한다. 가락국기(駕洛國記)에도 복숭아가 나오는데, 인도의 공주였던 허황옥(許黃玉)은 천체가 계시한 부친의 꿈 이야기를 듣고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 가서 복숭아를 얻었다고 한다.

 

이밖에 너무도 잘 알려진 '나무꾼과 선녀' 설화는 한 나무꾼이 사슴의 보은으로 맺게 된 선녀와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다. 이 설화는 세계적으로 백조처녀(白鳥處女)설화라 하여 넓게 분포돼 있다. 원래 북방민족 사이에서 이루어져 중국으로 이행된 후 전세계로 전파됐다. 이 이야기는 신이담(神異談)에 속하는 것으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몰래 숨겨주자 사슴은 은혜의 보답으로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을 일러주며 선녀의 깃옷을 감추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절대로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슴이 일러준 대로 선녀의 옷을 감추었더니 깃옷을 잃은 한 선녀가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게 되어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무꾼이 깃옷을 보이자 선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사슴이 다시 나타나 두레박을 내릴 터이니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처자를 만날 수 있다고 일러줬다. 나무꾼은 사슴이 일러준 대로 하늘로 올라가 한동안 처자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지상의 어머니가 그리워져서 말을 타고 내려올 때였다. 지상의 어머니가 아들이 좋아하는 팥죽을 먹이다가 뜨거운 죽을 말의 등에 흘리는 바람에 말이 놀라 나무꾼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상에 떨어진 나무꾼은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며 슬퍼하다가 죽었단다.

 

이 설화는 효의식과 함께 그로 인한 인간적 갈등, 그리고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에 대응하는 강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처자와의 이별도 지상의 늙은 어머니가 오랜만에 나타난 아들에게 평소 즐기던 팥죽을 끓여 먹이는 모성애로 인한 금기의 파괴이다. 이러한 과정은 처자보다도 어머니를 섬겨야 한다는 효행적 관념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아울러 동백나무와 철쭉나무 등은 꽃의 모양이나 빛깔의 이미지에서부터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추상화한 사건을 제시하고 있다. 철쭉나무는 절개를 지키다 죽은 여인의 단심이 빨간빛의 꽃으로 피어난 나무이다. 아무튼 여인과 관계된 나무전설은 인간적인 삶과 사랑을 자연물의 형상과 일체화하려는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나무전설에 나타난 여인은 삶과 사랑과 자연과의 관련성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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