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꽃나무 소재의 북한영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삶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27

꽃나무를 소재로 한 북한영화에서는 항일투쟁의 사상성 고취와 농촌사랑 및 산림녹화를 위해 여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되었다. 설움을 이겨내고 당당한 일꾼이 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을 꽃나무와 일체화시켰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의 여인과 꽃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영화 속에 그려진 여인의 삶이다. 꽃나무 소재의 북한영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삶이라 하는 편이 낫겠다. 북한의 영화 중에「숲은 설레인다」가 있다. 1982년 작품이다. 전쟁으로 헐벗은 산에 잣나무를 심고 가꾸는 고난의 역정을 묘사한 영화이다. 주인공은 친구의 조언에 따라 폐허가 된 산에 여러 차례 잣나무를 심지만 매번 실패한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잣나무를 심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한 끝에 결국 산새와 동물들이 찾아오는 산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잣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개인의 인생 역정을 자전적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는 친구의 딸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는 내용도 비중이 크다. 그 정신교육은 산골마을의 어린 소녀들도 잣나무를 심어 산림녹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헐벗고 불에 타버린 산은 미군의 폭격에 의한 것임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직설적으로는 '수령의 은덕'으로 극복해 가자는 선동적인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푸른 산을 가꾸기 위해 친구의 딸을 내세운 것은 어린 소녀에게도 사상성을 고취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항일혁명 고취 위해 꽃파는 효녀 내세워


북한의 사상성 고취는 어린 소녀에게만 국한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영화 중에는 꽃을 파는 숙녀를 내세운 작품이 있다. 북한의 집체창작 장편소설「꽃파는 처녀」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 영화의 소설이 대중 앞에 나온 시기는 1930년으로 항일투쟁이 전개되던 때였으며, 김일성의 문예 선전대에 의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그 후 1972년에는 영화와 혁명가극으로 각색돼 재창작됐다. 내용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를 배경으로 가난한 숙녀 꽃분이와 그 일가족이 지주계급의 횡포와 멸시의 온갖 압박을 떨치고 일어나 일제와 지주계급에 대항해 싸운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꽃분이가 어머니 병을 고쳐드리기 위해 꽃을 파는 갸륵하고 눈물겨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꽃분이의 아버지는 좁쌀 두 말 빚에 머슴을 살다가 고역에 못 이겨 세상을 떠났고, 어린 동생 순희는 지주계급 부인의 한약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약탕기에 얼굴을 데어 앞을 못 보게 된다. 게다가 오빠 철룡은 눈이 먼 여동생의 모습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주의 집에 불을 질러 항거하다가 잡혀간다. 설상가상으로 지주집에서 고역을 당하던 어머니마저 골병을 얻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꽃분이는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갸륵한 효심으로 배고픔과 어려움을 이겨가면서 매일 꽃을 팔러 다닌다. 그녀는 가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가슴 가득 설움을 안았으나 약값만 마련하면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릴 수 있고 그때면 오빠도 출소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으로 부지런히 꽃을 판다.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 동생 순희마저 어머니의 병을 빨리 낫게 하려고 꽃을 안고 거리에 나가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꽃을 팔려고 한다. 그러나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약을 지어 어머니를 찾아갔으나 이미 어머니는 정성으로 지어 온 약을 한 첩도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후였다.

 

어머니를 잃은 꽃분이는 나이 어린 동생을 고향에 남겨 두고 700리 먼 길을 걸어 오빠를 만나러 감옥으로 찾아갔으나 그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꽃분이는 이제 남은 동생을 돌보기 위해 발길을 돌려보지만 그녀의 앞을 눈보라가 가로막는다. 그리고 고향의 눈먼 동생은 행방불명이 됐다는 기막힌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죽었다던 오빠는 살아서 혁명 활동을 하고 있었고, 우연히 산 속에서 눈먼 동생 순희까지 만난다. 꽃분이는 오빠의 호소에 호응한 마을사람들과 함께 혁명의 길로 나선다. 꽃을 한 아름 안고 나선다. 꽃만 파는 것이 아니라 혁명 활동을 곳곳에 전하는 것이다. 꽃분이의 가슴에 꽃이 가득한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꽃파는 효녀의 설움을 노랫말로 나타내


한편 북한에서는 1원짜리 지폐에도 '꽃파는 처녀'의 그림을 새길 정도로 이 영화는 지금도 명작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우리 대학가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상영 붐이 일어 북한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욱이 이 영화는 중국에서 인기가 대단했는데, 상영 당시 영화관마다 초만원을 이뤘으며 보는 이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단다.「꽃파는 처녀」는 영화 이전에 유명한 소설인 동시에 혁명가극으로도 유명했다. 주제가와 같은 노래도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제목도「꽃파는 처녀」이다. 중국에서는 이 노래를 자신들의 말로 옮겨 부르기도 했다.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깔 고운 아름다운 빨간 꽃/ 앓는 엄마 약 구하려 정성 담아 가꾼 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 꽃 이 꽃 빨간 꽃. 산기슭에 곱게 피는 아름다운 진달래/ 산기슭에 피어나는 연분홍 빛 살구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 꽃을 사시면/ 설움 많은 가슴에도 새 봄 빛이 안겨요. (북한의 꽃파는 처녀)

 

꽃 사시오 꽃 사시오/ 떨기떨기 빨간 꽃 눈부시고/ 향기롭고 신선해요/ 아름다운 꽃 빨갛고 싱싱해요. 꽃 사러 어서 와요/ 아픈 엄마 병 고치게요/ 꽃 사시오 꽃 사시오/ 떨기 생화 빨갛고 싱싱해요. 작은 냇가에서 따온 연분홍 꽃/ 산기슭에서 캐온 아름다운 진달래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서 와서 이 꽃을 사가세요/ 이 꽃과 봄빛으로 아픈 가슴 메우세요. 꽃 사시오 꽃 사시오/ 꽃이 좋아 빨갛고 향기로워요/ 떨기 빨간 꽃 다 팔지 못하면/ 방울방울 눈물 멈추지 않아요. 조국도 권세도 없으니/ 살아갈 길 막막하네요/ 이 꽃 피는 화사한 봄날에/ 하루 종일 꽃 파느라 눈물이 마르지 않네요. (중국의 꽃파는 처녀)

 

두 노랫말은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리기 위해 꽃을 팔아야만 하는 애절한 꽃분이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꽃을 파는 일이 고달프기도 하고, 꽃을 모두 팔지 못하면 설움이 많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나라도 없고 힘도 없는 처지가 한탄스럽지만 어머니를 위한 효심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당시의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효녀가 서럽게 파는 꽃을 투쟁과 혁명의 꽃으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도라지꽃 회상으로 농촌사랑 계몽해


그리고 아녀자를 내세워 고향을 지키자는 순박한 심정을 그린 1987년의 영화도 있다. 야산의 꽃을 제목으로 한 「도라지꽃」이 그것이다. 가난한 농민 박원봉과 시골 아녀자 진송림의 향토애적 사랑을 묘사하면서 농촌생활을 기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사상성과 계몽성을 고취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초입에서 주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 주는데, 박원봉은 그의 아들이 도라지꽃을 따오자 “도라지꽃은 뿌리를 위해서 빛나며, 꽃은 뿌리를 위해서 빛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연인이었던 진송림이 그에게 해준 말이었다. 뿌리는 고향을 의미한다. 도라지꽃이 산속에 숨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듯이 인민은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삶을 살다 죽은 진송림과 그런 삶을 저버리고 도시로 떠난 박원봉을 대조적인 인물로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27년 만에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라지꽃을 본 박원봉은 순간 청춘시절에 사랑했던 도라지꽃처럼 아름다운 진송림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박원봉은 도시를 찾아 떠나며 진송림과의 사랑마저 버린다. 마치 뻐꾸기가 제 둥지를 떠나 다른 새의 둥지로 날아가듯 그는 가버린다. 철새는 어느 곳에 가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속담을 통해 박원봉의 선택이 올바르지 못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진송림은 고향을 떠나면 후회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박원봉과 헤어진다. 또한 뻐꾸기(자신의 알을 산비둘기 둥지에 낳고 떠남)와 산비둘기(자신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름)의 비유를 통해 박원봉과 그 아들을 비유한 대목도 이채롭다.

 

진송림은 그 후 고향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나간다. 혁명일꾼의 마을 인민위원장으로 활약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진송림은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새끼를 밴 양을 구하려다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의 여동생이 언니의 유지를 이어간다. 도시를 동경해 고향을 떠났던 박원봉은 후회하며, 속죄하기 위해 도시사회로 진출하려는 아들과 함께 고향에서 살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꽃나무 소재의 북한영화는 인민의 사상성 고취를 위한 계몽 수단으로 여인을 내세웠다. 여인이 당당한 일꾼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있어서 꽃나무와 일체화시켰다. 특히 시대성과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 민중의 삶을 어린 소녀와 숙녀는 물론 아녀자의 여인과 그 주위 사람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암울했던 상황을 묘사함과 동시에 항일투쟁과 민족적 주체성을 찾아야 함을 주장했으며, 또한 그 의미를 민중들에게 전달해 행동하기를 유도했다고 할 수 있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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