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7:27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이 있는 '해어화'가 회자되고 있다. 꽃을 미인이나 기생에 비유한 말로서 중국에서 전해진 고사성어이다. 우리의 『삼국사기』에는 여인을 뜻하는 말로서 꽃을 비유한 '원화(源花)'의 기록이 있다. 우리의 옛말도 그럴 듯하다.

 

최근인가 아니면 현재인가. 우리의 대중문화 전반에 불고 있는 '기생열풍'이 뜨겁다. TV드라마와 영화를 넘어 뮤지컬과 연극 무대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드라마 '황진이'는 현재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년 초에는 영화로 만들어지고 뮤지컬로도 선보일 예정이란다. 최근의 이런 열풍은 '황진이'를 떠나 기생문화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조선시대에 최고의 기생으로 성장하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해어화(解語花)'가 내년 초와 가을에 드라마와 뮤지컬로 선보일 예정인 것만 봐도 그렇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문화의 열풍이 최고에 이른 ‘해어화’를 중심으로 우리의 통속관념으로 자리한 고사(故事)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꽃으로 비유한 아름다운 여인의 원화


먼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해어화의 설명에 앞서 우리의 전형적인 옛말을 살펴본다. 우리의 고전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여인을 뜻하는 말로서 꽃을 비유한 '원화(源花)'의 기록이 있다. '원화'는 본래 임금과 신하 등의 여러 무리가 놀 때(類聚群遊)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여자를 말한다. 이에 대한 이해는『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삼국사기』는 "신라 진흥왕 37년(576) 봄에 처음으로 원화를 뽑았다. 이보다 먼저 군신들이 인재를 알지 못해 근심한 끝에 많은 사람들을 무리지어 놀게 했고, 그들의 행실을 본 후 이를 증명하려고 했다. 이에 아름다운 두 여자를 뽑았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기록의 원화는 아름다운 여성을 꽃에 비유한 우리나라 최초의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원화의 여인을 기생의 기원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의 국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27년에 쓴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는"비로소 원화를 받들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기녀의 시초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기생의 역사가 고려시대 이후이므로 원화를 기생의 시초로 보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그래서 원화는 기생의 시초라기보다는 기생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화는 양갓집 규수 중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행실과 교양이 뛰어난 여자를 골라서 뽑는 데 반해서 기생은 사회적 신분이 가장 미천한 '무자리(水尺者, 수렵이나 버드나무로 만든 고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딸 중에서 뽑았기에 원화와 기생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약간 빗나가는 것 같지만 어쨌든 원화는 아름다운 여자를 꽃에 비유한 우리 고유의 옛말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을 비유한 해어화는 기생을 뜻하기도


일반인들은 '해어화'를 잘 모를 것으로 생각된다. 통속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드라마 '황진이'의 주제곡 '해어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나 아직도 일반인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알 듯 모를 듯한 해어화란 무슨 말인가. 국어사전의 풀이로 보면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서 아름다운 여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기생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해어화는『조선해어화사』라는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은 기녀에 관한 자료를 조선의 풍속으로 정리하여 엮은 것인데, 여기에서의 해어화는 기생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연산군일기』나 『광해군일기』에는 해어화라는 이름의 기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해어화는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한 고사이다. 즉 해어화는 중국의 왕인유(王仁裕)가 엮은『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서 유래한 옛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唐)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있는 태액지(太液池) 연못의 흰빛 연꽃은 눈이 부실 정도로 우아하고 크고 아름다웠다. 초여름의 어느 날, 현종(玄宗)과 양귀비 일행은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그 연못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종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현종은 주위의 신하를 돌아보면서 "여기 있는 아름다운 연꽃이 말을 알아듣는 이 꽃(해어화)과 경쟁이 되겠는가(爭如我解語花)."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처음에 말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맞장구를 쳤단다.

 

여기에서 말을 알아듣고 마음을 이해해 주는 꽃은 말할 것도 없이 양귀비라는 여인을 두고 한 말로서, 그 여인이 연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간접적인 비유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어사전에 중요한 표제어로 올라 있어 의미가 있는 고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인을 일컫고 있으나 최근 들어 한 많은 기생을 비유하는 말로 점차 정착되는 듯하다. 이 말도 앞의 원화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꽃에 비유한 고사라 할 수 있다.

 

연리지의 고사도 양귀비와 관련 있어


이쯤해서 이왕 양귀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와 관련한 고사성어 하나를 더 소개하기로 한다. 너무도 잘 알려진 '연리지(連理枝)'에 관한 유래이다. 이 고사도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인 말로써 흔히 쓰고 있다. 연리지는 이을 련(連), 결 리(理), 가지 지(枝)가 합쳐진 말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즉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줄기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를 뜻한다. 그러나 연리지는 오늘날 효성이 지극하거나 다정한 연인 또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을 비유한 말로 쓰이고 있다.

 

본래 연리지의 고사성어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는데,『후한서(後漢書)』채옹전에서 채옹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 년 동안 옷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해 간호해 드렸는가 하면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됐을 때는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다. 그 후 채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마침내 한 그루처럼 됐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해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연리지가 자라났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효심의 상징이었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다정한 남녀 사이의 연인을 상징하게 됐다.

 

다정한 연인의 상징은 당나라의 시인 백락천(白樂天, 백거이, 白居易)에 의해서 명확하게 표현됐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당나라의 영화가 점차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것은 현종과 양귀비의 열렬한 사랑 때문이었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현종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워낙 유명했으므로 백락천은 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이다.「장한가」의 끝부분으로서 생전에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도 다할 때 있으련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飛翼鳥)가 사는데, 비목어는 눈이 한 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 있는 물고기이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 쪽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돼야 비로소 날 수 있는 새로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연리(連理)·비익(比翼)·비목(比目)은 모두 그 말이 가져다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 사이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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