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번화한 곳 가운데 하나, 양재역에서 2분 거리에 다양한 나무와 풀, 곤충을 만날 수 있는 숲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가는 사람들과 건물들이 빼곡하고 주차타워가 높이 솟아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없으시지만, 분명 있습니다. 아침이면 곳곳에 있는 운동시설에서 인근의 시민들이 오르내리며 산책을 하고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이 차 한 잔 들고 휴식을 위해 찾는 도심속의 공원, 바로 말죽거리 근린공원이지요.
말죽거리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좀 생소하시죠. 말죽거리는 말 위에서 죽을 먹었다는 과거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곳으로, 과거에는 보통 15리 이상의 거리에 역을 만들어 말을 갈아 탈 수 있게 하였고, 원(院)을 만들어 관리나 여행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숙식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양재역 또한 한양에서 지방으로 출장 가는 코스의 첫 코스이자 귀경길의 마지막 코스여서 현재의 양재역은 전철을 갈아 타는 곳으로 이용되지만 예전의 양재역은 말을 갈아타는 곳이던 거지요. 또한 말죽거리라는 이름은 이괄의 난에서 유래한다고 해요.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인조는 황급히 피난을 떠나게 되었는데, 당시 이 곳을 지날 때쯤에 어느 유생이 팥죽을 대접하자 말위에서 급하게 먹으니 이를 '말죽거리'라고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말죽거리 공원은 3호선 11번 출구에서 양재고등학교 후문을 통과하여 배드민턴장 옆길로 올라올 수도 있고 신분당선 10번 출구에서 주차타워 옆길로 50m 정도 올라오셔도 되지요. 서초구청과 보건소, 서울가정법원, 기독교선교햇불재단이 감싸안은 이 공원은 조금만 오르면 인근이 내려다보이고 정상 부근은 평편하여 걷기 좋은 산책로로 따라 가다보면 바우뫼공원과 양재천으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이지요.
천천히 숲에 들면 도심의 찻소리는 어느새 사그러들고 촉촉한 기운이 감도는 은행나무와 참나무 길을 만나게 되지요. 얼마전 여름 태풍으로 넘어진 나무는 베어져 한 쪽에서 새로운 생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옆으로 쓰러진 나무는 인근 유치원 어린이들의 구름다리가 되기도 하고, 나뭇가지들은 아이들의 추억을 담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지요.
오가는 길에 만나는 나뭇잎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개미를 따라 살금살금 개미집을 찾아가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먹이를 놓아주기도 하지요. 집 가까이 이런 곳을 만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을에는 더 풍성한 숲에서는, 버섯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어 그루터기에 앉아 그 모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밤송이와 도토리를 주워 하나는 조막손에 꼭 간직하고 나머지는 이 숲에 살고 있는 청설모에게 돌려주기도 하지요.
그러다 운동기구가 있는 넓은 공간을 만나면 어느새 숨바꼭질, 기차놀이, 달리기를 하며 숲에서의 놀이에 빠져듭니다.
시민들과 회사원들이 도심속의 온갖 소음과 매연, 일상의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잠깐이라도 숲에 들어 나무와 눈 맞추고 긴 호흡으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말죽거리공원.
가까이 있기에 더욱 소중한 공간임을 느끼며 어린이들이 자주 쉽게 들어 우리가 어릴 적 골목길, 동네 어귀, 마을 뒷산에서 가졌던 자연과의 소중한 추억을 쌓아가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