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4년(5기)

천혜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대한민국 산림청 2014. 7. 12. 15:33

천혜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산림청 블로그 주부 기자단 강정임
 

  강원도 남면 광천리 청령포는 두메산골로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뒤편은 절벽으로 천혜의 유배지이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유배지가 되면서 청령포는 눈물과 한이 맺힌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현재 청령포에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단종어소와 영조의 친필이 음각된 단묘재본부시유지,  금표비, 천 년의 숲으로 지정된 청령포수림지,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관음송,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과 노산대 등 단종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이 있다.

 

 

단종은 외부와 단절되어 유배생활을 하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역사의 현장으로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영월의 대표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꽤 넓은 청령포 주차장임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도로가에도 주차를 하는 등 복잡하다. 그렇게 어렵게 주차를 하고 처음 만난 건 영월강변저류지홍보관  광장에 서 있는 송주철작가의 '오백년만의 해후(邂逅)'이다. 남녀가 교차된 형상으로 단종과 정순왕후의 결합과 재회를 희망하며 녹슨 재료의 물성은 시간의 흐름과 역사을 표현하고 있다.

 

 

 청령포관람은 매표소에서 도선료를 포함한 요금을 받고 있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200원 (보호자 동반 6세이하 어린이 무료관람) ※매표시간 : 09:00~17:00

 

 

매표하고 우측 계단을 내려가서 줄을 서면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시간이 정해진건 없고 관람객이 있으면 두대가 왕복으로 오간다.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아 뜨거운 햇볕아래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대편을 보니 나올 때도 역시 줄을 서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 관광지마다 관람객이 많아 줄을 서는 경우가 비일비재, 인내심을 갖고 여행을 해야 하는 계절이다. 배는 2분남짓 타면 된다.

 

 

청령포를 바라보니 부드럽게 감싸고 휘돌아가는 서강은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어린 단종은 찾는 이 없이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울었던 것이다.

 

 

 

드디어 청령포에 도착,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닿은 길은 윤이 난다. 해변의 자갈밭을 지나면 바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청령포는 국가지정 명승50호로 송림숲을 지나 단종어소,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 금표비 순으로 돌아보면 되는데 한 시간 정도면 된다.

 

 

가장 먼저 단종어소로 향하여 가다보면 거송들이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모리를 조아리듯 기울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린단종은 소나무가 두렵기도 했지만 위안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종어소가 가까워질수록 담 너머로 유난히 어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명 충절의 소나무로 불리며 '엄흥도소나무'라고 한다. 엄흥도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는 엄명에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이다.

 

 

단종의 유배처인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본채와 궁녀와 관노가 기거하던 행랑채가 복원되어 있다. 본채에는 유배를 짐작하게 하는 당시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어가 처마밑에는 어린 단종이 직접 썼다는 한시가 적혀 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항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로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단종어소

 

▲단종과 엄흥도

 

 

단종어소 앞에는 1763년에 세워진  「端廟在本府時遺址」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있다.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라는 글로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관음송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크고 장대한 금강송으로 단종은 이 소나무 가운데 걸터앉아 쉬었으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린다. 카메라에 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소나무는 수령 600년으로 높이30M이며 둘레 5M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관음송 뒤로 데크를 올라가면 청령포 뒷산 육육봉(六六峯)과 노산대(魯山臺)가 있다. 단종은 깎아지른 절벽인 육육봉을 보고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단종이 해 질 무렵이면 한양을 그리워하며 시름에 잠겼던 노산대 가는 길에는 망향탑이 있다. 비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소박한 돌무더기는 단종의 애절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추수려진다. 단종이 그리워하였던 두살 위의 정순왕후 송씨도 '부인(夫人)'으로 강등되어 평생 영월 땅을 바라보며 한을 달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금표비


금표비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해설은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받을 수 있다) 금표비(禁標碑)는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된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한다는 비석이다.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음각되어 있다. 즉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라는 뜻이다. 그 만큼 큰 제약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 후 단종은 유배 두달만에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잠겨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으나 유배당한지 4개월여만에 세조의 명으로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동강에 버려진 그의 시신은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에도 엄흥도가 수습하여 동을지산 중턱에 묻었다. 그후 단종의 묘는 59년이 지난 1516년 봉분을 갖추고 숙종때 이러러 단종으로 복위하고 무덤은 장릉으로 봉해졌다.

 

 

청령포 입구에는 단종유배개념도가 그려져 있다.
창덕궁을 출발하여 280km (약700리길)을 7일만에 청령포에 도착할 정도로 고달팠던 유배길이었다. 손치재옛길, 어음정, 역골, 주천사거리, 주천3층석탑, 배일치마을, 옥녀봉, 선돌까지 영월 곳곳에는 어린 단종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청룡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그냥 가지 말고 영월강변저류지홍보관에 잠시 둘러보자.
홍보관 옥상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청령포의 모습은 기구한 운명으로 살았던 단종의 삶을 잠시 잊을 만큼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지상2층 규모의 영월강변저류지홍보관은 저루지 관리를 위한 중앙감시실과 대형 LED화면을 통해 저류지의 구성과 기능을 알 수 있으며 영월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관광지와 역사등을 소개하는 홍보관이 있다.

 

 

 여행정보
청령포 (033-372-1240/1577-0545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241

※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 국도→영월→청령포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 대중교통

영월터미널 -137m이동 광천,선돌(버스정류장 앞) 청령포행버스 -2.5km - 청령포주차장 정류장하차

※ 입장료 : 어른 2,000원 청소년 1200원 (보호자 동반 6세이하 어린이 무료관람)
※ 매표시간 : 09:00~17:00
※ 주차요금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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