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5년(6기)

강진 백련사 동백 숲. 그 붉디붉은 동백꽃 지는 소리에 봄은 갑니다.

대한민국 산림청 2015. 5. 7. 14:35

 

 

 

 

강진 백련사 동백숲

그 붉디붉은 동백꽃

지는 소리에 봄은 갑니다.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심인섭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은 다산 정약용과 영랑 김윤식의 숨결이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천년 세월 그 아름다운 빛을 간직한 고려청자와 더불어 만덕산 백련사 동백 숲 아름다운 강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동백꽃이 꽃봉오리 통째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마치 화려했던 봄이 지는 아쉬움의 탄성같이 들린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시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차라리 통째로 떨어져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겠다는 동백꽃들을 보셨나요?
이별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천연기념물 제151호 강진 백련사 동백 숲'을 거닐어 보겠습니다.

 

 

백련사(白蓮寺)의 본래 이름은 만덕사(萬德寺)입니다.
백련사를 품고 있는 산은 만덕산(萬德山)으로 백련사가 창건하기 훨씬 전 부터 이미 만덕산으로 불리었기에 사찰도 만덕사라 불린 것 같습니다. 만덕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 1)에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있던 것을 원묘국사 요세가 중창을 하였고, 사찰이름을 만덕사로 부르다가 근래 들어 백련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려 후기인 1211년(희종 7년) 대대적 중창을 이끈 원묘국사 요세가 주도하여 일어난 불교 개혁 운동인 백련결사가 만덕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요세는 고승 지눌(知訥)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있는 만덕사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며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한 중창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창은 1211년(희종 7)에 시작하여 21년 만인 1232년(고종 19)에 완공되었으며,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는데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결사(修禪社結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입니다. 
 

 

지눌의 수선사가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淨慧雙修)를 수행의 요체로 삼았던 반면, 요세의 백련사에서는 참회하여 죄를 멸하는 참회멸죄(懺悔滅罪)와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바라는 정토구생(淨土求生)에 전염했고 염불선을 수행 방편으로 삼아 그 후 120년간 8명의 국사를 배출하게 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중흥기를 맞았던 것입니다.
 

 

백련사에는 일주문과 불이문이 없었습니다.
그 문들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숲이었는데요,
최근에 일주문이 생겼습니다.

 

 

주차장부터 절 입구까지 키 큰 동백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300m에 이르는 긴 동백 숲 터널을 지나면서 바로 백련사가 나옵니다.

즉, 본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은 없지만 동백 터널의 끝에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되기에 충분히 불이문(不二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련사 동백 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 입니다.
면적만 해도 12,893㎡로 약 3,900여 평입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난·온대지방 식생(植生)의 대표적인 수종인데요.
이곳에 있는 동백나무는 약 1,500그루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높이가 7m에 달하고, 밑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져 관목상으로 된 것도 많다고 합니다.
 

 

비자나무, 후박나무, 왕대나무, 차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백련사 동백 숲은 늦은 겨울부터 피어나기 시작하기에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에는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럼 동백나무에 핀 꽃 전체가 꽃봉오리 통째로 떨어져 피 빛으로 처연한 동백 숲을 거닐어 보겠습니다.

말이 필요 없을 정돕니다.
떨어진 꽃들이 깔려있는 숲을 차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가시는 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가 생각납니다.
김소월은 가시는 님의 발길 아래 아름다운 진달래꽃잎을 뿌려주었지만, 어찌 이 예쁜 꽃잎을 밟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가슴 먹먹히 바라만 볼 따름입니다.

 

 

'동백꽃 편지'

                     

                           윤영초

동백꽃 낙화로부터 온
붉은 편지를 받아들고
가슴 아린 울음이 깔려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네

슬프지 않은 사람도
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던 길
진홍빛에 가슴이 무르던
마음 깊이 흐르는
불멸의 봄이었네
 

 

이제 부도전을 만나러 갑니다.
부도전은 천연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 안에 고려, 조선시대의 부도가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흩어져 있으며, 원묘국사 증진탑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인 강진백련사 원구형부도(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대웅보전을 중수한 월인당 총신 스님의 부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2기의 부도가 있습니다.
 

 

 

또한, 응진전 앞에 춘파당 부도, 절 입구 축대 위에 부도, 명부전 앞에 부도의 잔해가 남아 있는데요, 동백숲 속의 부도 4기와 더불어 백련사에는 모두 7기의 부도가 있습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고,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곳으로 개인 묘탑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탑이 대개 절 중앙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부도는 그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집의 입구나 변두리 등 한적한 곳에 위치하는데요, 부도는 탑비와 함께 건립되어 부도의 주인과 건립연대, 당시의 미술양식, 사회적 사상까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동안 다니면서 본 수많은 사찰의 부도 중 백련사 동백 숲의 부도가 제일 아름다웠습니다.

 

 

삼각대, ND필터 도 없고 오로지 24-105 줌렌즈 하나로 담은 계곡이지만,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놓인 동백꽃잎에 저절로 숨이 멈춰집니다.

 

 

죽었어도 죽은 것 같지 않은 동백꽃잎. 오히려 더 생생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날 것 같습니다.

 

 

 

피 빛으로 처연한 동백 꽃 지는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백련사 동백 숲.

남도의 봄은 아름다운 낙화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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