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9년부터이다. 아직도 공정여행이 낯설고, 여행 하면 ‘쇼핑’, ‘관광’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라면 공정여행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구경하고 소비하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역거주민을 존중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며, 여행지의 환경보호까지 생각하는 아주 특별한 여행에 가슴 설레게 될 것이다.
이맘때면 산티아고 길이 생각난다. 몇 해 전 무턱대고 배낭을 지고 걸었던 길이었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프더니 곧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파고들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살면서 켜켜이 쌓인 응어리진 마음보다 무겁거나 아프진 않았다. 그렇게 산티아고 길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어느새 잡념이 사라지고 길 위에 홀로 남은 자신만 의식되면서 길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이후로 산티아고 길 매력에 빠져 몇 번을 더 걸었다. 길 위의 숲은 무더운 태양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새소리와 함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줬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나누는 인사다. 행복한 여행이 되라는 뜻이다. 그렇다, 여행은 축복이고 행복이다. 이러한 산티아고 길을 따라 우리나라에도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이 생겼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역주민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며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잇고 찾아내는 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길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자연과 숲에서 위로 받고, 그곳의 자연과 숲을 보호하며 지역거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특별한 공정여행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행할 수 있는 기회의 공정함
국내에서 처음 공정여행의 개념이 시작된 지 약 10년이 됐다. 한국관광공사에 의하면 공정여행을 하겠다는 국민들은 33.4%에 달한다고 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공정여행의 개념이 소개됐다. 여기에 따르면 관광을 통해 현지 주민이 얻을 수 있는 수입은 적고, 오히려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관광지와 관광지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이 공정여행이며 착한여행, 책임여행 등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정여행의 ‘공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첫째, 여행할 수 있는 기회의 공정함을 말한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 밖 세상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다. 중국 작가 잔홍즈가 《여행과 독서》라는 책에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하지 않았는가.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대학생 시절에 7개월간 인도여행을 했고, 창업 이후 이때 받은 영감을 통해 애플 제품에 ‘단순함의 미학’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여행의 기회를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혼자서 여행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이 있다. 이들에게 여행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이 공정여행의 의미이기도 하다. UN 국제관광기구(UNWTO)에서는 일찌감치 누구에게나 관광의 기회(Travel for All)를 줘야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접근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의 기회와 환경 마련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여행자와 여행지가 모두 행복하도록
둘째, 여행자와 여행지 간의 공정함을 뜻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쉽게 여행정보를 얻고, 쉽게 교통과 숙박을 예약하고 취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여행자가 그만큼 여행지로 쉽게 떠날 수 있는 세상이다. 게다가 인생은 한 번뿐이니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시대도 시작됐다. 그러나 나의 행복을 위해 여행지역의 자연을 훼손하거나 거주민들의 일상에 소음과 쓰레기를 남겨도 좋다는 것이 욜로의 진정한 의미는 아니다. 나의 행복만큼이나 자연을 보전하고 지역경제에 자그마한 기여와 배려를 하는 것이 곧 여행자와 여행지의 공정함을 뜻한다. 또한 마을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참여하고 어울리는 여행, 여행자들이 마을의 산림자원과 역사문화 자원에 대해 배우고 존중하는 여행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담긴 의미는 바로 거래의 공정함이다. 숙박, 먹을거리, 체험 프로그램, 교통, 기념품, 해설사 등 지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적절하고 타당한 보상을 해야 지역을 살리고 미래세대에게 관광자원을 물려줄 수 있다. 전통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래의 공정함이 지속가능한 여행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공정여행을 실천하는 국내외 사례
도쿄 다이칸야마 마을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마을 공정여행을 담당하는 10여 개의 주민사업단이 있다. 지역의 명물인 츠타야 서점에서부터 크고 작은 건물들에 얽힌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지역주민들이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른바 ‘관광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태국의 메캄퐁 사례도 있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차를 타고 2시간 떨어진 이 깊은 산골마을에는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20여 년 전에는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캐먹을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이곳까지 찾아온다. 메캄퐁의 폴라민 이장이 시작한 마을여행 프로그램 덕분이다.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허브 숲길을 걸으며 커피 콩 체험을 하는 숲 체험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는 지난해 메캄퐁 마을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던 인제군 마을여행 사업단도 있다. 인제군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용늪길과 백담사 마을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의 관광수익은 마을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자연생태계를 지키는데 쓰인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는 전 지역의 주민들이 직접 직접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이니 공정여행을 체험하고 싶다면 찾아보길 추천한다.
이밖에 공정여행 상품을 서비스하는 여행사들도 찾아볼 수 있다. 꼭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공정여행 원칙을 숙지하고 이를 여행에 접목시켜보는 건 어떨까. 방문한 지역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할 것,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이를 위해 오래 머무르고 경로를 최소화할 것.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 사회, 경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것 등이 있다. 이 작은 실천이 여행지와 여행자 모두 행복해지는 특별한 마법을 만들 것이다.
Tip
2017년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에서 제안한 여행하는 시민(Traveling Citizen) 수칙
1 여행지역의 역사와 문화, 지역민의 삶과 권리를 존중하며 여행자들의 시민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
2 소음과 쓰레기, 일회용품 사용, 탄소배출을 줄이며 주민들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3 누구에게나 여행기회가 보장되며 접근 가능한 여행, 미래 세대를 위해 관광자원 보존을 위해 참여한다.
4 내가 쓰는 돈이 지역의 숙소와 상점, 전통시장과 공예품,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에 기여한다.
5 여행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숙소, 여행사, 가이드, 식당 등)의 권리와 존엄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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