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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숲>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열어봐! 영화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대한민국 산림청 2018. 11. 6. 14:30





 외롭던 열두 살 소년소녀가 숲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는다. 판타지 영화의 외피를 두른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현실을 딛고 상상을 동력 삼아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숲은 무궁무진하게 자라나는 주인공들을 품어낸다.





열두 살이란 나이는 참 미묘하다. 분명 어린이지만 이제 곧 사춘기를 맞을 나이. 제법 눈치도 자랐고,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조금씩 느낄 때다. 성장소설과 성장영화의 주인공들의 나이가 열두 살인 경우가 많은 건 다 그 나이대가 가지는 미묘함이 있기 때문이다. <어바웃 어 보이>의 애늙은이 같던 ‘마커스’도, <렛미인>에 서 뱀파이어 소녀와 함께 떠나던 ‘오스칼’도 모두 열두 살이었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주인공 ‘제시’도 그렇다. 철물점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누나 둘과 여동생 둘까지 대가족인 제시네 집은 언제나 시끌벅적 정신이 없고, 그러므로 제시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옅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제법 큰 제시보다 아직 갓난아기인 막내와 여동생 ‘메이벨’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을뿐더러 가난한 살림을 위해 온실에서 채소를 기르는 등 할 일이 많다. 자연 제시 또한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도와야 하고, 누나의 분홍색 운동화를 물려 신는 창피함도 감내해야 한다. 제시는 그림을 잘 그리고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그의 관심사를 세심하게 돌봐주기엔 부모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다. 학교에서도 제시는 외롭다. 같은 반 친구 게리와 스캇이 툭하면 제시를 괴롭히고, 고학년 여학생 제니스는 제시는 물론 어린 학생들 위에 군림하며 무섭게 군다. 학교에서 즐거운 것이라곤 활기찬 음악교사 미스 ‘에드먼즈’의 수업뿐이다. 그러던 중 ‘레슬리’라는 소녀가 전학을 온다. 짧은 머리에 투박한 군화 같은 신발을 신은 레슬리는 남자애들의 전유물이던 달리기 시합에 참여해 제시를 비롯한 남자애들을 따돌리고 1등을 차지하는가 하면, 작문 수업에서도 뛰어난 표현력으로 남다른 작품을 보여준다. 게다가 제시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다. 외로운 제시와 전학생 레슬리가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런데 이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 독특하다. 집 근처, 나무에 걸린 그네밧줄을 타고 건너간 숲에서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자. 누구도 괴롭힐 수 없는 곳.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는 거야!” 물론 이 과정을 제시가 처음부터 순탄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열두 살 나이인데다 집에서는 가난한 살림살이를 도와야 하고 틈만 나면 ‘꿈에서 깨어 철 좀 들어라’고 하는 부모 아래 자란 제시다. 그런 제시에게 레슬리는 말한다.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열어봐”라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숲 속의 다 낡아빠진 트리하우스를 꾸며 아지트로 만들고, 이름 없는 무성한 숲을 ‘테라비시아’로 이름 붙이며 자 신들의 왕국으로 삼게 된다. 어둠의 제왕이 죄 없는 국민들을 가두고, 시시때때로 ‘다람요괴’와 ‘거인괴물’ 같은 적군들을 보내 공격하지만, 테라비시아에선 제시와 레슬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믿어주는 친구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곳이 생긴 제시는 차츰 달라진다.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는 제니스를 발칙한 아이디어로 골려 주거나 게리와 스캇의 장난을 적절히 방어할 수도 있게 된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 깊지 못한 나무와 같다’는 속담을 비추어 보자면, 제시는 레슬리라는 친구를 사귀면서, 부모로부터 북돋움 받지 못했던 상상력을 한껏 펼칠 수 있는 숲을 만나면서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하는 셈이다. 물론 여전히 엄마는 집안을 돌보느라 바쁘고, 아빠는 무뚝뚝하게 ‘꿈에서 좀 헤어나라’ ‘그림을 잘 그리니 돈이나 그려봐라, 나도 아들 덕 좀 보게’ 같은 말을 하며 제시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하지만 상처 받은 제시를 넉넉하게 품어주는 레슬리와 테라비시아가 있어 괜찮다. 어릴 적 친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지만, 레슬리는 정말 특별한 친구다. 다소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에 따라 자란 제시가 성경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며 걱정하자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겠어? 세상을 돌보느라 바쁘신데 말이야”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소설가 부모를 닮아 네가 표현력이 좋구나”라고 말하는 제시에게 “그럼 넌 철물을 잘 알아? 너희 아빠가 철물점에서 일하잖아. 내 말은 너는 너지, 너의 부모님이 아니라는 거야”라고 얘기할 줄 알고, “여자치곤 정말 잘해”라는 제시의 칭찬에 “넌 그림 잘 그리더라, 남자치곤” 하고 받아치며 제시의 잘못된 생각을 슬쩍 바로잡아 주는 친구. 그 친구와 함께 꾸며가는 자신들의 왕국 테라비시아 또한 특별할 수밖에 없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제목만 보면 판타지 같지만 현실적인 내용 안에서 상상의 힘을 믿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아동문학 작가 캐서린 패터슨이 1977년에 낸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소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 영미권 국가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인기였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소나기> 같은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2007년 개봉한 영화는 주인공 제시 역에 <헝거게임>의 ‘피타 멜라크’ 역으로 잘 알려진 조쉬 허처슨이 앳된 어린 모습으로 나와 반가울 것이다. 매력적인 레슬리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껌을 쫙쫙 씹는 되바라진 소녀로 등장했던 안나소피아 롭이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 줬고, 제시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채고 레슬리처럼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어”라며 조언을 해주는 음악교사 에드먼즈 역에 <500일의 썸머>로 사랑 받은 주이 디샤넬이 분해 눈길을 끈다. 





11년 전 개봉한 전체 관람가 영화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가 지금도 볼 만하고, 추천할 만한 이유는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의 힘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산타 할아버지를 선물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믿는 21세기 아이들, 삶이 팍팍하여 어린 자녀에게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모진 말을 내뱉는 어른 들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어른들은 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상상력을 포기한 순간부터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퍽퍽했는지 말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와 함께 오늘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상상의 숲, 테라비시아의 세계로 떠나보시라. 빗장 단단히 걸어둔 마음의 문은 활짝 열고.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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