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목원 전시교육연구과 석사후연구원 이문규
임업연구관 이정희
겨울이 깊어가면서 바람이 날로 매서워지는 11월에 소개할 고택은 전남 장흥의 오헌고택이다. 노정원사가 직접 식물을 수집하고 가꾼 이 정원은 남도의 따스한 기후와 오랜 세월동안 노정원사의 애정과 정성 덕에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나무들이 가득한 정원이다.
오헌고택의 전경 ©이동협
남도의 정취가 가득한 고택
장흥 위씨 반계공파의 종가인 오헌고택은 장흥 위씨 집성촌인 방촌을 구성하는 일곱 마을 중 호산마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오헌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택으로, 그 명칭은 중건자인 오헌梧軒 위계룡魏啓龍(1870-1948)의 호에서 따왔다. 고택의 안채와 사당은 1918년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1923년에 지어졌으며, 그 외의 건물들은 그 후에 지어졌다.남도 대농 반가의 공간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보존 및 관리상태가 양호하여 그 민속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헌고택은 대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자리잡았다. 가옥의 공간은 크게 바깥마당, 사랑마당, 안마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독특하게도 안마당과 사랑마당이 각각 별도의 출입구를 지녀 사랑채의 우측으로는 안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연지의 좌측으로는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바깥마당에는 연지가 하나 조성되어 있고, 담 안에는 사랑마당을 중심으로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다.
치자나무 생울타리와 뒷산의 동백 ©이동협
집 앞에 흐드러진 연잎
오헌고택을 방문하게 되면 고택의 바깥마당에서 상록성의 짙푸른 잎을 자랑하며 서있는 붉가시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파여있는 ㄴ자의 형의 연지가 방문자를 반긴다. 연지 안에는 원형의 섬 두 개가 있고, 못 바닥에는 연꽃과 수련이 심겨있다. 두 섬 중 하나에는 소나무와 오죽이, 다른 섬에는 영산홍이 심겨있으며, 그 외에도 주변 산림에서 산포된 종자가 발아하여 억새, 찔레꽃, 청미래덩굴, 마삭줄, 자금우 등 다양한 자생식물들이 같이 자라 자연스러운 멋을 더한다. 방지는 집 밖에 자리하여 집안의 정원을 밖과 연결하는데, 이에는 마을 사람들과 정원을 공유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연못가와 집의 입구에는 흥미로운 여러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재목이 단단하고 질겨 옛부터 군기軍器 등의 제작에 요긴하게 쓰였던 붉가시나무 외에도 안마당으로 향하는 출입구에는 후박나무와 벽오동이, 그 반대편에 위치한 사랑마당의 입구에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즐겨 심었던 회화나무와 가을철 희게 피는 꽃의 향기가 진한 은목서, 줄기가 울퉁불퉁한 모과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이 외에도 대만뿔남천과 사철나무 'Br2012' 등 흔치 않고 독특한 관상수들도 눈에 띄어 집 주인의 원예에 대한 조예를 드러낸다.
고택 앞 연못의 풍광 ©조현진
유자향이 싱그러운 사당
고택에는 안채로 통하는 대문과 사랑채로 통하는 대문이 따로 있는데, 현재는 안채로 향하는 대문을 집의 주된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 마당에는 식물이 식재되어 있지 않지만, 안채와 헛간채의 사이에 작은 화단이 있는데, 이곳에는 금목서, 금송, 돈나무 등 상록수들이 토피어리의 형태로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고, 다양한 매실나무와 목련의 재배품종과 더불어 황철쭉, Opuntia 속의 선인장, 구골나무 '고시키'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여럿 심겨 있다.
안채의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사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는데, 이 길과 사당 주변에는 키 큰 유자나무들이 서있다. 유자는 옛적에는 귀하게 여겨지던 과실로, 조선시대 때 왕에게 진상되면 종묘에 먼저 바친 후 신하들에게 나누어 하사되었던 과일이며, 또 효도와 관련한 고사로 널리 알려진 회귤유친懷橘遺親 후한 말의 인물 육적이 6살 때 아버지 육강과 함께 원술을 봤는데, 원술이 육씨 부자에게 대접한 귤을 어머님께 맛보게 해드리고 싶어 두 개를 몰래 꺼내 자신의 품 속에 넣었던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 박인로朴仁老의 조홍시가早紅柿歌에는 "盤中 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 안이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하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위 고사와도 연관 있는 과실이다. 유자나무를 사당 근처에 심은 뜻에는 그 푸른 잎과 향기로운 과실 외에도 조상에게 효를 다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사당의 왼쪽으로는 치자나무 생울타리가 있어 그 너머의 장독대를 가리고, 장독대의 뒤편으로는 각종 작물이 심긴 작은 채마밭이 있다. 채마밭과 뒷산의 무성한 대숲 사이에는 반짝이는 잎을 지닌 동백나무와 아왜나무들이 일렬로 서있다. 정원 주인의 말에 따르면 집 뒤편에 심긴 동백나무들은 방화수로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본래 동백나무와 아왜나무를 비롯한 감탕나무, 먼나무, 굴거리나무 등의 상록활엽수들은 두터운 혁질의 잎에 수분을 많이 함유하여 불이 쉽게 붙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른 봄 장독대와 채마밭의 고랑 사이로 붉은 동백꽃이 수놓은 듯 붉게 떨어지면 꽤 운치 있는 광경을 이룰 듯하다.
사당 앞의 유자나무 ©이동협
노정원사의 애정이 가득 담긴 정원
다시 안채를 지나 사랑마당으로 들어서면 매우 다양한 종류의 화훼와 수목들이 심긴 화단에 들어서게 된다. 화단에 심긴 식물 중에는 잎을 향신료로 쓰는 월계수나, 호랑가시나무의 재배품종 중 잎에 가시가 거의 없는 품종인 '부르포르디‘, 줄기가 수직으로 솟구쳐 자라는 개비자나무 '파스티기아타‘ 등 독특한 식물들이 많다. 또 야자과에 속하는 당종려나 사람 허리춤 높이까지 자라난 Opuntia 속의 선인장, 싱그러운 잎이 아름다운 엽란 등이 심겨져 있어 이국의 정취를 풍긴다. 또 여기에 더해 화단 한편에는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 놀라움을 주는 영산홍이 한 그루 있는데, 자라온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다.
사랑마당의 전경 ©이동협
이 외에 오헌고택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식물을 하나 더 들자면 파초가 있다. 파초는 바나나와 같은 속의 식물로, 중국 남서부가 원산지이다. 잎이 크고 시원하여 비가 내릴 때 빗물에 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운치 있어 예부터 반가에서 즐겨 기르던 식물이며, 19세기 초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서는 파초의 재배가 수선화와 더불어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오헌고택에서는 파초를 먹기도 하는데, 헛줄기 중심의 연한 속을 꺼내어 멸치젓에 담가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 것이 오헌고택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파초의 연한 속을 간장과 소금물에 절여 반치지라 부르며 먹는 풍습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이다.
사랑채와 파초 ©이동협
5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는 고택 주인 위성탁씨는 원예에 관심이 많아 혼자 책으로 공부하며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심고 재배해왔다고 한다. 남도의 따뜻한 기후가 보다 다채로운 종류의 화초를 재배하는데 이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정원 주인의 애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식물들이 유지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성탁씨는 얼마 전에도 담장과 화단을 개축하면서 다양한 목련류의 재배품종들을 새로 심었다고 한다. 앞으로 정원이 얼마나 더 아름답게 가꾸어질지 무척 기대된다.
정원의 식물
오헌고택에서 조사된 식물은 총 67 분류군이었으며, 이 중 14종(21%)은 식용, 22종(33%)은 약용, 37종(55%)은 관상용의 용도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오헌고택에서 눈여겨볼만한 식물로는 자라온 세월을 가늠키 힘든 영산홍과, 남도의 정취를 자아내는 붉가시나무와 동백나무, 유자나무, 비파나무, 은목서, 차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파초와 선인장이 있다. 이 외에 사랑마당에는 봄철에 흰색의 고운 꽃이 피고 초여름에 새콤달콤한 맛이 좋은 붉은 열매를 맺는 Prunus pseudocerasus Lindley 가 한 그루 있다. 양벚나무(Prunus avium L.)와 흔히 혼동되는 종인데,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서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른 추위를 맞이한 올 겨울, 더 추워지기 전에 따뜻한 남도로 잠시 떠나 푸르른 정취가 가득한 정원에서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커다란 영산홍에서 드러나는 정원 주인의 세심한 보살핌을 느껴봄은 어떠할까 싶다.
오헌고택의 식재현황
참고문헌
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idx/index.do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3. 장흥위씨 대종회, http://jhw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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