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미추왕릉과 대나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경주의 대표적인 명소 ‘대릉원(大陵苑)’과 나무 이야기 :: 경주 가볼만한 곳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 14. 16:00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라고 하면 단연 경주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경주는 천년에 가까운 동안 신라의 도읍이었기에 도시 그 자체가 야외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경주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시내에 대형 고분들이 자리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진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이 있는 곳을 ‘대릉원(大陵苑)’으로 부르고 있는데요. 오늘은 대릉원에 전해지는 대나무와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대릉원

  


먼저 여러분들은 대나무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담양의 ‘죽녹원’이나 음식이나 공예 등을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를 꼿꼿함과 지조, 절개 등으로 해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좋게 인식했던 것 같은데요. 이에 따라 사군자(四君子,매화, 난, 국화, 대나무)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나무의 용도 역시 다양하게 사용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나무와 관련한 이야기가 경주 대릉원에 전해지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대릉원에 자리한 미추왕릉, <삼국유사>에는 ‘미추왕 죽엽군’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청도군 이서면사무소에 세워진 ‘이서고국(伊西古國)’ 비석, 경주를 침공한 이서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미추왕릉에 남겨진 대나무 잎, <삼국유사>에 기록된 ‘미추왕 죽엽군’

  

이야기는 신라 유례왕(재위 284~298) 때로 거슬러 갑니다. 지금이야 신라라고 하면 경상도 전체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경주(=금성)에서 출발해 주변 지역을 복속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례왕 때인 297년, 지금의 청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서국(伊西國)’에서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침공하게 됩니다. 기록만 보면 당시 신라는 큰 위기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이때 신라군 앞으로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를 도와주게 됩니다. 정체불명인 군사들의 도움을 받아 이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도와준 군사들이 사라져 행방을 찾게 됩니다.




미추왕릉 인근에 있는 대나무 숲, 기록 속 미추왕 죽엽군을 떠올리게 한다.

대나무 숲에서 바라본 미추왕릉의 모습 




그런데 놀랍게도 미추왕릉 앞에 대나무 잎이 쌓여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당시 유례왕을 비롯한 신라인들은 죽은 미추왕이 신라를 구원했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에 따라 미추왕릉은 ‘죽현릉(竹現陵)’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남아 있는데요. 현재 대릉원의 명칭 역시 미추왕릉의 장지가 ‘대릉(大陵)’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나름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추왕릉 주변으로 대나무 숲이 있어, ‘미추왕 죽엽군’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대릉원,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주목해보자!


보통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 중 대릉원이 있는데요. 대부분 천마총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미추왕릉을 지나 고분들 사이를 걷다 보면 주목해볼 두 기의 고분이 있는데요. 먼저 외형상 낙타 등처럼 생긴 ‘황남대총(皇南大塚)’을 만날 수 있는데요. 보통 이런 고분을 ‘표형분(瓢形墳)’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황남대총은 남분과 북분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피장자가 묻혔습니다. 



황남대총의 전경, 낙타 등처럼 생겼는데 ‘표형분’으로도 불린다.



황남대총의 경우 발굴조사를 통해 북분에서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데 비해 남분의 경우 금동관을 비롯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은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남분보다는 북분의 피장자가 더 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북분의 경우 금제허리장식에서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확인되어, 여인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해석이 맞다면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큰 힘이 있었다는 셈이니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천마총의 전경, 최근 내부의 정비가 마무리 되어, 실제 고분 속을 들어가 볼 수 있다.

천마총의 발굴 당시를 재현한 모습

천마도장니의 복제품, 천마도는 벽화가 아닌 자작나무로 만든 유기물에 그려진 그림이다.



황남대총을 지나면 이내 ‘천마총(天馬塚)’을 마주할 수 있는데요. 천마총은 발굴조사를 통해 ‘천마도장니’가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보통 “천마도가 어디에 그려져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벽화라고 인식하기 쉽지만 의외로 자작나무로 만든 유기물에 그려졌습니다. 즉 천마도장니는 말을 탈 때 등자 안쪽에 있어 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 때의 그림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점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자작나무의 경우 우리나라의 품종이 아닌 북방 쪽에서 내려온 곳으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천마도’를 통해 당시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어 의미가 있습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복제품)

대릉원의 소나무 숲

숲길을 걷다보면 건물을 세웠을 초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경주에서나 볼법한 장면이다. 



한편 천마총에서도 화려한 신라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요. 천마총 내부의 재정비 공사가 끝나, 내부의 형태와 발견 당시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릉원은 대형 고분 사이를 걷는 느낌과 울창하게 뻗은 소나무 숲을 지나는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요. 숲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초석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경주를 다녀가실 때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대릉원을 찾아 한번 걸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대릉원을 걷다가 미추왕릉을 만나면 대나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그려진 자작나무를 한번 주목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전문필진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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