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선바위, 책바위, 해골바위... 기기묘묘한 바윗돌로 가득한 인왕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 18. 16:00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인왕산(338m)은 큰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큰 바윗돌이 곳곳에 박힌 산세가 제법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조선시대 기록에 나오는 대로 호랑이가 살만했던 산이다. 예로부터 인왕산은 경치가 아름다운 장안 제일의 명승지로, 이를 배경으로 그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가 널리 알려져 있다. 1968년 김신조 등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1·21 사태로 출입이 통제되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야 시민들에게 개방된 사연도 품고 있다. 

     

남산, 낙산, 북악산 등과 함께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인 인왕산은 남산처럼 한양의 서쪽에 있다하여 원래 이름은 서산(西山)이었다. 단순하고 밋밋했던 산 이름은 세종 때 지금의 이름 인왕산(仁王山)으로 바뀐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했다. 조선이 숭유억불(崇儒抑佛,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름)의 나라였음을 떠올려보면 산 이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인왕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기암괴석들이 많은 인왕산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차량들이 오가는 차도를 깔아놓아 공기와 풍경을 해치고 산행이 제한적인 남산이나 북악산과 달리 인왕산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중의 아름다운 경치를 오롯이 감상하며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인왕산은 기기묘묘한 모양의 바윗돌들을 만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범바위, 장군바위, 치마바위, 돼지바위에서 스님을 닮은 선바위, 책 모양을 한 책바위, 심지어 해골바위도 있다. 


마치 오랜 시간에 걸쳐 인왕산이 바람의 힘을 빌려 만든 조각품 같다. 특별한 모양의 바윗돌마다 사람들이 초를 켜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거대한 나무, 거석(큰 돌) 등 자연물을 경외하고 숭배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라는 원시적 종교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산이기도 하다.     

    



 일제 강압으로 남산에서 옮겨온 ‘국사당(國師堂)’



인왕산 들머리 절집 담벼락에 그려진 화려한 불화

마음을 안온하게 해줬던 여운 깊은 종소리



산 들머리에 인왕사라는 절의 일주문이 나온다. 작은 절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 벽면에도 온통 불화가 그려져 있어 눈길이 머물렀다. 어느 절에서 들려오는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는 종소리가 불화와 잘 어울렸다. 언덕배기 위에 자리한 국사당(國師堂)이 발길을 붙잡는다. 국사당은 조선 태조 4년(1395) 목멱산(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여 ‘호국의 신’으로 삼고 왕실에서 제사를 모셨던 ‘목멱신사(木覓神祠)’의 다른 이름이다.


원래 남산 팔각정 부근에 있었으나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신궁보다 높은 곳에 국사당을 둘 수 없다’며 1925년 이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당시 국사당을 그대로 옮겨 지은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왕실에서 제사를 지냈던 오래된 사당 

민족의 오래된 무속신앙을 체감할 수 있는 국사당




국사당(國師堂)에는 태조·무학대사·최영 장군 등을 무신(巫神)으로 모시고 있다. 무속인들이 국사당을 따라 하나둘 굿당을 옮겨오면서 서울 최대 토속신앙 중심이 되었고, 지금도 무속신앙의 맥을 잇는 굿이 이어지고 있다. 사당 안에는 단군, 조선 태조 이성계, 칠성신(七星神 : 사랑, 재물, 성공, 행운, 무병장수, 소원성취, 복을 관장하는 신), 최영장군의 신인 신장(神將), 산신령 등 중요민속자료 제17호인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민족의 유전자 속에 깊이 박혀있는 오래된 신앙의 끈질긴 힘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도 우리 민족은 뭔가를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신나게 혹은 신명하게 할 때 가장 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신(神)은 옛 신앙에서 나온 영감이나 에너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다채로운 수석전시장 인왕산



조선 건립 때 무학대사의 기도 도량이었다는 선바위

영하의 추위에도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사람들



산행이 아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인왕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바로 ‘선바위’ 때문이다.  높이 7미터, 가로 10미터 정도가 되는 큰 바위로 기묘한 모습으로 산 중턱에 불쑥 솟아 있다. 인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이자 서울시 민속자료(제4호)이기도 하다. 2개의 거대한 바위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선(참선 禪)자를 붙여 선바위라 불렀다는 데, 신선 선(仙)자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추운 날씨에도 찾아와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큰 돌에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하는데, 우리 민간신앙은 물론 외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안내판을 보니 무려 1억 5천만 년 전 생겨난 돌로, 바람으로 인한 풍화작용으로 인해 바위에 절묘하고 기묘한 무늬와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들었다. 





거인의 모습을 한 신비한 바윗돌


오랜 거석숭배문화가 남아있는 인왕산




이 바위는 조선 초 나라를 새로 세우고 한양으로 도성을 옮길 때 무학대사가 천 일 기도를 한 곳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당시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主山, 건축물의 배경이 되는 산)으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백악(北岳,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이 지어졌다. 

     

모자바위, 장군바위 등 선바위보다 훨씬 크고 우람한 바위들도 많다. 인왕산의 다채로운 기암괴석은 산에 찾아간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어떤 이는 장군바위를 부처바위라고 하고,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불렀다. 바윗돌을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걷다가 마주쳐 깜짝 놀란 해골바위

절묘하고 익살스러운 모양의 바위들




커다란 책 두 권을 겹쳐 놓은 책바위나 건장한 남성의 얼굴을 한 장군바위를 보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돼지바위, 맹꽁이바위, 달팽이바위 등 절묘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바위들을 큭큭 웃으며 바라보다가도 무심코 걷다가 마주친 해골바위 앞에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말 해골을 닮은 바위가 두세 개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신기한 바윗돌에 써놓은 낙서였다. 주로 이름이 대부분이었는데 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경치를 망치고 있었다. 



두꺼운 책을 겹쳐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책바위


크고 평평한 바위에 새겨놓은 미륵불




어느 넓적하고 평평한 바위엔 투박하게 생긴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사람들이 찾는다는 미륵불이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사람들은 산의 큰 바위에 하늘신과 땅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불교가 공인되어 점차 대중화되자 사람들은 그들이 믿었던 신성한 돌에 부처를 새기기 시작했다. 낡고 불의한 세상이 가고 새 세상이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기묘한 바위를 볼 적마다 잠시 멈춰 서서 나만의 돌 이름을 지어보는 시간도 재밌다. 배꼽바위, 귀바위, 뱀바위··· 산길에서 마주친 기묘한 돌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며 힘든 줄 모르고 인왕산 속을 누볐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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