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행주대첩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고양 덕양산 :: 고양 가볼만한 곳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 22. 16:00





 흔히 우리나라의 지형을 이야기할 때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는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져있다는 의미인데요. 실제로 이러한 산악지형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지금 여러분들 앞에 계신 창문을 열면, 십중팔구 ‘산’을 볼 수 있을 텐데요. 보통 산이라고 하면 등산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양 덕양산으로 가는 길, 입구인 대첩문의 모습으로, 입장료를 지불한 뒤 들어서면 된다.



그런데 과거에는 산의 정상부에 성을 쌓고, 방어를 위한 요충지로 활용했기에 이런 면에서 보면 산은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측면에서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고양시에 위치한 덕양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양 덕양산은 높이가 불과 124.9m에 불과한데요. 어떻게 보면 구릉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권율 장군의 동상, 뒤로는 관군과 의병, 승병, 여성들의 활동을 부조로 새겨놓았다.


충장사로 가는 길, 겨울을 맞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길가를 수놓고 있다.


 권율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충장사



위치는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일산방향으로 가다보면 방화대교와 행주대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덕양산은 남쪽으로 한강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마치 성의 해자처럼 자연적인 한강은 교통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서울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할 요충지라는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이곳은 방어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고양 덕양산이라고 하면 잘 모를 텐데요. 반면 행주산성이라고 하면 아~ 하고 아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첩기념관과 앞에 심어진 반송의 모습


행주대첩비의 전경




고양 덕양산은 조선시대 행주산성이 있던 곳으로, 이곳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행주대첩은 권율 장군이 이끄는 2,300명의 관군과 의병, 승병, 부녀자 등 3,000여명의 백성들과 함께 3만여명(총대장 : 우키타 히데이에)의 왜군에 맞서 싸운 승리였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기에, 행주대첩 이후 전황은 많은 것이 변했는데요. 우선 왜군은 한양을 포기하고, 퇴각하게 되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행주대첩으로 인해 권율은 도원수에 오르게 되고, 마치 하나의 전설처럼 행주대첩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회자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주대첩비(초건비)


행주대첩비의 전경, 가운데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이처럼 행주대첩의 흔적은 덕양산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가장 먼저 대첩문을 지나 들어서면 권율 장군의 동상과 뒤로 관군과 의병, 승병, 여성이 전투에 참여했던 부조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투의 승전 요인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재미있는 건 ‘행주치마’라고 해서 여성들이 치마로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데요. 행주치마라는 말 자체는 전투 이전에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분과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참여했던 장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주대첩비에서 바라본 모습, 멀리 서울 남산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바라본 고양 방향, 북한산이 한 눈에 조망된다.



한편 권율 장군의 동상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권율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충장사’와 행주대첩 당시 쓴 무기와 기록화 등을 볼 수 있는 ‘대첩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덕양산의 정상에 오르면 2개의 행주대첩비를 만날 수 있는데요. 앞에 비각에 모셔진 행주대첩비(초건비)는 1602년 권율 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행주산성 내 세운 것으로,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썼습니다. 또한 뒤에 있는 행주대첩비는 박정희 정부 때 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세웠는데요. 행주대첩비의 글씨와 충장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입니다. 



행주산성의 모습, 현재 토성 구간의 일부를 걸어볼 수 있다.


 토성 구간의 문지가 있었던 곳, 걷는 난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덕양산에 남아 있는 우물터, 전투 당시 식수로 쓰였다고 생각하니 달리 보인다.





특히 행주대첩비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볼만한데요. 자유로를 오가는 차량의 행렬과 한강, 그리고 북한산과 서울 남산타워까지 한 눈에 조망이 됩니다. 한편 내려오는 길에 행주산성의 토성 흔적을 따라 내려왔는데요. 흔히 돌로 쌓은 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애초에 토성으로 쌓은 성곽으로, 행주대첩 당시에는 목책이 주요 방어 수단이었습니다. 이 밖에 우물의 흔적과 시간이 멈춰선 듯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 사이에서 고양 덕양산은 행주대첩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혹 고양을 방문하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행주대첩의 흔적을 간직한 고양 덕양산을 한번 방문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행주산성(고양 덕양산)


주  소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1

전  화 : 031-8075-4642

입장료 : 어른 1,000원(단체 700원), 청소년 500원(단체 350원), 어린이 300원(단체 210원), 6세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무료

비  고 : 주차비 있음(카드 결제만 가능), 문화관광해설사 있음






※ 본 기사는 산림청 전문필진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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