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백련산·북한산 생태연결로 따라 서울 ‘산골마을’ 산책

대한민국 산림청 2019. 2. 26. 16:00


40년 넘게 끊겼던 산길과 마을을 이어주는 생태연결로




 생태연결로는 도로가 생기면서 단절된 산이나 하천에 사는 야생동물들이 오가기 편하도록 만든 길이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과 응암동 도심 속의 생태연결로는 산짐승과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길이다.


은평구의 물줄기 불광천과 한강처럼, 백련산과 북한산은 자연스레 이어져 있었다. 백련산(215m)은 서울시와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초록숲길(Green Trails)'로 지정할 정도로 길고 걷기 좋은 능선이 있는 은평구의 대표적인 산이다. 


생태연결로를 지나는 산길에서 마주친 산골마을 이정표 



1972년 도로(통일로)가 조성되면서 산길이 끊겼다가, 무려 43년 만인 2015년 백련산과 북한산을 잇는 생태연결로가 생겨났다. 길이 55m, 폭 13.6m, 다리 높이가 15m에 이르는 생태연결로는 사람이 다니는 좁은 통로를 제외하고 10.8m 폭의 공간을 야생동물에게 할애했다.


동물 통로는 주변보다 1.7m 더 높게 성토를 하고, 나무를 심어 야생동물을 배려했다. 녹번역 및 통일로에서도 이용이 가능토록 진입계단을 만들었다. 동네 주민들은 생태연결로 덕분에 백련산 또는 3호선 전철 녹번역에서 북한산과 천년 고찰 진관사까지 갈 수 있는 '은평둘레길(4코스)'을 걸을 수 있게 됐다.





도로(통일로)가 지나면서 분리된 산골마을 안내도

 햇살에 빨래와 먹거리를 말리는 산골마을 어느 집



 북한산 자락의 도심 속 섬 같은 동네, 산골마을


생태연결로를 지나 산길을 걷다보면 '산골마을'이라 적혀있는 흥미로운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생태연결로 양편에 있는 2곳의 작은 마을(서울 녹번동 71번지, 응암동 30번지)로 주변을 에워싸듯 들어선 아파트 옆에 웅크리듯 낮게 자리하고 있다.


단독·다가구 주택으로 이뤄진데다 텃밭, 골목길, 관음사라는 작은 암자까지 있어 마치 도심 속 섬처럼 다가온다. 산골마을은 원래 하나의 마을이었으나 1972년 도로(통일로)가 마을을 관통하면서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민족통일의 의지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도로를 만들기 위해 이전부터 있어온 마을을 분리하다니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산골마을에서 산책로로 이어진 장군바위

2012년 ‘서울시 주거환경관리사업’으로 말끔해진 산골마을




마을 입구에 서있는 안내지도가 발길을 붙잡았다. 마을이 작다 보니 집집마다 설명글이 붙어있다. '3대가 모여 사는 집', '마을 김장때 마당을 내주는 집', '쓰레기를 치우고 주민들이 가꾼 마을 수목원'... '햇살이 따듯해 속아 산 집'은 글 대로였다. 동네 고양이들이 이 집 지붕에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이 안온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매서운 한파와 미세먼지가 이어지는 요즘 겨울 날씨에 한줌의 햇볕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심정은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갸르릉' 소리를 내며 지붕 위를 돌아다니는 어린 고양이는 귀엽기만 하고, 지붕 위에 털썩 주저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고양이는 흡사 동네 어르신 같다. 햇볕에 빠진 고양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행복감을 주는 최고의 경우는 합격·승진·짝짓기보다 좋은 날씨가 아닐까 싶다.




‘햇살이 따듯해 속아 산 집’ 지붕위에 모여 있는 고양이들

산골마을의 정겨움을 더해주는 시래기



마을극장 '산골 시어터'도 있는데 동네 청년 회장이 집안에 작은 상영관을 만들어놔 주민들이 영화를 볼 수 있단다. 다채롭고 재밌는 집 소개글은 문패 옆에도 붙어있다. '개가 짖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문에 손글씨를 붙여놓은 어느 집에서 배려가 있고 정다운 마을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고 정겨운 동네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KBS TV의 여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에도 나왔다는데 그럴만한 마을이다. 마을 회의나 잔치, 모임, 음식까지 할 수 있는 마을회관에 들어갔더니 동네 어르신들이 어떻게 왔느냐며 과일과 커피를 내주시며 정답게 맞아주셨다. 서울에서 이런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니 놀랍고, 멀리 시골마을에 여행 온 기분이 절로 들었다. 마을회관 주변의 작은 텃밭과 빨래처럼 햇볕에 널어놓은 시래기(무청)는 정겨움을 더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옹색했던 산골마을이 정겹고 살기 좋은 곳이 된 이유를 알게 됐다.

2012년 서울시와 은평구에서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재개발 대신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해 마을을 재생하는 '서울시 주거환경관리사업'을 지원했단다. 이후 동네가 말끔해지는 건 물론이고 반상회 한 번 없던 마을에 정기적인 주민모임이 생겨나고 소통하는 마을이 됐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산골이 나오는 전국에서 가장 작은 광산

1930년대 북한산 자락에 생겨난 산골광산 



 서울 유일의 광산에서 나오는 뼈를 붙여준다는 광물질 '산골'


'산골마을'의 산골은 두메산골이나 산골짜기의 산골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산골(山骨)마을은 골절치료에 사용하는 광물질인 산골(자연동, 自然銅)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산골고개'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생골(生骨)이라 불리기도 하는 산골은 <동의보감>에도 나오는데 뼈가 부러지거나 관절이 좋지 않을 때 산골을 먹으면 뼈와 근육에 진액이 빨리 나와 뼈가 잘 붙는다고 한다.

 

놀랍게도 산골을 채취해 판매하는 광산이 마을에 남아있다. ‘산골 판매소’라고 새겨져 있는 돌 간판을 따라 산자락을 걸어 들어가다 막다른 길에서 작은 동굴과 마주쳤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광산의 서늘하고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 '산골 광산'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서울지역의 유일한 광산이며, 전국에서 가장 작은 광산이기도 하다. '노다지'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한반도 전역에 광산 개발 붐이 일었던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생겨났단다. 당시 금광으로 떼부자가 되어 <조선일보>를 인수해 창업주가 된 사람이 방응모다.


선대에 이어 광산을 운영하고 있다는 초로의 아저씨가 동굴 속 평평한 공간엔 흔한 라디오도 켜놓지 않은 채 홀로 광산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일에 초탈한 도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1920~1930년대 한반도에 휘몰아쳤던 골드 러쉬(Gold Rush)에 뛰어든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개척자 같기도 했다.




바윗돌 사이에 반짝이며 숨어있는 자연동(自然銅), 산골

옛날엔 녹반현, 녹번이 고개로 불렸던 산골고개 전망대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는 호기심에 찾아온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광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책상 서랍을 열더니 광산의 이름이자 이곳에서 나는 광물질인 '산골'을 보여줬다. 입구는 작지만 산골을 캐는 광산 갱도의 깊이가 70여 미터나 된다고 한다. 아저씨가 들려준 광산 이야기 가운데 흔히 쓰는 ‘노다지’란 말의 유래가 흥미로웠다. 


'노다지'는 금광에서 생겨난 말이란다. 대한제국 시절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금광 채굴권을 따낸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 광산업자들이 재래식으로 금을 캐고 있던 현지 주민들에게 "금맥이나 금광석 건드리지 마라"며 소리친 "No Touch!"가 금을 가리키는 '노다지'가 되었단다.

 

가까운 전철역인 녹번역엔 이 광산과 관련된 동네 이름의 유래가 안내판에 적혀있다. 


'산골은 녹반(綠礬, 광물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산골이 많이 나는 이 지역에 자연스레 녹반현(綠礬峴), 녹번이 고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는 오늘날 녹번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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