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마을 숲 풍경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을 일부분이면서 마을을 상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숲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전라북도에는 특히 남원지역에 아름다운 마을 숲이 많은데 지리산을 곁에 두고 있어 그런가 봅니다. 남원시 운봉읍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이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 유한킴벌리가 함께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바로 행정마을 서어나무숲과 삼산마을 소나무숲인데요. 그 숲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행정마을은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마을입니다.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어야 합니다. 고갯길을 넘어서면 신기하게 평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이지요. 평균 해발 550m 정도 되는 높은 지대가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답니다. 행정마을은 그런 평지에 만들어진 동네입니다.
행정마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키가 크고 우람한 나무숲이 병풍을 치고 있습니다. 서어나무숲입니다. 2000년 제1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숲이지요. 마을 숲은 홍수나 바람을 막기 위한 보호림 기능과 지형적으로 지기(地氣)가 센 곳은 눌러주고 허(虛)한 곳은 보(補)해주는 비보림(裨補林) 기능이 있습니다. 마을 구조를 보면 동, 서로는 산이 있으나 남, 북으로는 트여 있어 보호림과 비보림 두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서어나무숲은 200여 년 전에 주민들이 만든 인공 숲입니다. 1,600m2 면적에 수령이 200년이 된 서어나무가 90여 주 남아있습니다. 수고(樹高)가 20m나 되고 우람한 외형을 하고 있어 든든한 느낌이 듭니다. 마을 주민들이 기대어 의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어너무는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으로 껍질이 회색입니다. 나무줄기의 표면은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되어있어 단단한 느낌이 듭니다. 숲의 천이(遷移) 과정에서 안정된 상태를 말하는 극상림을 구성하는 나무입니다.
서어나무숲에서 마을을 바라보면서 숲과 마을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숲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생태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더운 여름에도 서어나무숲은 15℃를 유지할 정도로 시원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 하다가 쉬는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딱 좋은 곳이지요. 넓고 시원한 숲은 어린이들 놀이터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능적인 측면뿐만이 아니고 경관을 아름답게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시원스럽게 자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 자체도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마을은 숲이 있어 안정된 느낌이 들고요.
서어나무숲 바로 옆에는 후계목(後繼木)이 자라고 있습니다. 서어나무숲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지요. 아름다운 숲을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전통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서어나무숲을 뒤로하고 다리를 건너면 소나무숲으로 유명한 삼산마을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서로 인접한 마을이면서 마을 숲을 구성하는 나무는 완전히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삼산마을 소나무숲
삼산마을은 고려말 양씨, 김씨, 이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습니다. 마을 동쪽에는 삼태산(三台山)이 있는데 여기에 작은 봉우리가 있어 예부터 삼봉산(三峯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을 이름은 산 이름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산마을의 소나무숲은 행정마을의 서어나무숲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을과 떨어진 곳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바로 인접해 숲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을의 위치가 동쪽에 있는 낮은 산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데 산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을 남쪽과 서쪽을 감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숲의 남, 북에 2개의 당산나무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북쪽에 있는 당산을 아랫당산, 남쪽에 있는 당산을 윗당산이라고 합니다. 아랫당산을 할머니 당산, 윗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을에서는 1960년대까지는 정원 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산에서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습니다.
소나무 수형을 보면 반듯한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줄기가 제멋대로 굽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심한 몸부림으로 보였습니다. 고원지대의 세찬 바람에 의해 굽은 것도 있겠고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 특성상 햇빛을 따라 가지가 자라면서 틀어진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마을에서 빠져나온 길은 지리산 쪽을 가르킵니다. 마을 쪽은 따스한 기운이 도는데 산봉우리는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마을 남쪽 끝에서 길을 따라 동쪽으로 나와서 마을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을 동쪽 낮은 산이 끝나는 지점과 마을 숲이 연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을 남쪽으로는 내(川)가 흐르고 있고요. 마을 숲은 산줄기를 따라 마을로 이어지는 기(氣)를 연장하면서 홍수를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산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냇물을 끌어들여 공동 빨래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이곳에서 봅니다.
마을 집들은 현대식 모습으로 대부분 바뀌었지만, 돌담만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을 전통의 일부라도 보존하고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마을 숲
마을 숲은 대체로 마을 탄생과 함께 맥을 같이 합니다. 마을 숲이 있다는 것은 오래된 숲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숲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름답기도 하고요. 처음으로 접한 행정마을 서어나무숲과 삼산마을 소나무숲은 경이로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을과 숲이 오랜 시간 관계를 맺으며 지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그 시간 동안 잘 보전된 것 또한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마을 숲을 지속해서 발굴해 잘 가꾸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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