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헌덕왕릉의 소나무 숲, 왕릉과 소나무의 조화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왕릉 주변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왕릉과 소나무 숲의 조화는 왠지 모르게 조화로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생각해보면 중국의 황제릉 같은 경우는 어지간한 산과 맞먹는 크기의 거대한 규모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 자연을 훼손한 느낌이 듭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왕릉은 규모는 작지만, 주변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조선왕릉을 예로 들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왕릉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며, 인위적인 훼손의 상당수를 보완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경주 헌덕왕릉의 소나무 숲, 왕릉과 소나무의 조화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번 소개해드린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에 이어 경주시 동천동에 소재한 헌덕왕릉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헌덕왕릉 역시 왕릉을 중심으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접근성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소풍 혹은 산책 삼아 다녀와 볼 만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헌덕왕릉의 경우는 다른 왕릉들과 달리 훼손이 심한 편에 속했는데요. 이유는 바로 홍수 때문입니다. 헌덕왕릉 바로 옆에는 북천이 흐르고 있는데, 워낙 가까이에 있어서 훼손을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헌덕왕릉의 사진이 담긴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이러한 잦은 홍수가 헌덕왕릉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헌덕왕릉의 십이지신상은 왜 5개밖에 없을까?
헌덕왕릉은 의외로 접근성이 나쁘지가 않은데요.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분황사를 이정표로 삼으면 됩니다. 분황사를 기점으로 북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구황교를 지나 바로 우회전을 해서 직진하다 보면 헌덕왕릉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주차장도 꽤 넓고, 화장실도 있지만 종종 화장실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주차장에서 헌덕왕릉이 눈에 보일 정도인데요. 2분 정도 소나무 숲을 걸어가다 보면 헌덕왕릉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헌덕왕릉의 소나무 숲은 곧게 자란 소나무보다는 제각각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흥덕왕릉의 소나무 숲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헌덕왕릉의 전경
뒤쪽에서 바라본 헌덕왕릉, 마치 소나무 숲이 왕릉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헌덕왕(재위 809~826)에 대해서는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보니 헌덕왕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헌덕왕은 좋지 않은 의미에서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요. 바로 조카인 애장왕(재위 800~809)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숙부, 어디서 많이 보던 구성인데, 혹시 생각나시나요? 맞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또한 헌덕왕의 재위 기간 중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는 등 혼란을 겪었는데요. 여러모로 신라 역사에 있어 암군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난간석과 십이지신상
헌덕왕릉의 십이지신상 중 소, 호랑이
헌덕왕릉의 십이지신상 중 쥐, 돼지
이러한 헌덕왕릉은 외형으로만 보면 정비가 되어 여느 왕릉과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잦은 홍수의 피해로 그 흔적을 남겼는데요. 바로 난간석을 비롯한 봉분의 석재와 십이지신상, 석사자상과 석인상 등이 홍수로 유실된 것입니다. 실제 십이지신상이 있는 다른 신라왕릉의 경우 마멸이 되었을지언정 12개 모두가 있는 반면, 헌덕왕릉의 경우 5개의 십이지신상만 남아 있습니다. 또한 헌덕왕릉에서는 다른 왕릉에서 확인되는 석자사상이나 석인상 등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알천제방수개기, 헌덕왕릉의 석물들
이러한 헌덕왕릉의 훼손을 통해 조선시대까지 북천의 홍수가 빈번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실제 헌덕왕릉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경주시 동천동 산 56-1번지에 위치한 ‘알천제방수개기(閼川堤防修改記)’를 볼 수 있습니다. 알천은 북천의 과거 이름으로, 알천제방수개기는 홍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방을 보수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때문에 홍수 피해를 겪은 헌덕왕릉과 함께 보면 좋습니다.
헌덕왕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알천제방수개기
재미있는 건 알천은 왕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야기는 신라 선덕왕(재위 780~785)이 세상을 떠난 뒤 신하들은 다음 왕으로 무열왕의 후손인 김주원을 옹립하고자 했고, 이 소식을 들은 김주원은 궁궐로 행차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때 마침 불어난 물에 알천을 건너지 못하게 되자, 상대등인 김경신은 이를 하늘의 뜻이라는 여론을 퍼뜨려 결국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가 원성왕(재위 785~798)으로, 알천과 홍수가 남긴 역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주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석인상의 일부분, 헌덕왕릉의 석인상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홍수로 유실된 헌덕왕릉의 석물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바로 분황사와 경주고등학교 교정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사찰과 학교냐고 하겠지만, 홍수로 유실된 헌덕왕릉의 석물 중 석사자상은 분황사 모전석탑에, 석인상의 경우 경주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데요. 특히 석인상의 경우 상반신 일부만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헌덕왕릉을 방문하실 때는 인근의 알천제방수개기와 함께 분황사와 경주고등학교 교정을 함께 방문해보면 좋습니다.
헌덕왕릉과 소나무 숲
문화재 표석에서 바라본 헌덕왕릉
어떻게 보셨나요? 단순히 소나무 숲이 우거진 여느 왕릉과 다름이 없어 보인 헌덕왕릉이지만, 홍수로 인한 북천의 범람과 그 흔적이 곳곳에 파편화되어 남아 있는 모습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혹 경주를 방문하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헌덕왕릉을 한번 방문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 경주 헌덕왕릉
주소 : 경북 경주시 동천동 80
입장료 : 무료
편의시설 : 주차장과 화장실 있음
비고 : 헌덕왕릉과 함께 인근의 알천제방수개기와 분황사 등을 함께 보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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