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산·숲·마을·사찰을 지나는 북한산 둘레길

대한민국 산림청 2019. 5. 3. 17:00





 우리나라 땅은 멀리가지 않아도 집 가까이에 산이 많아 좋다. 명산이 아니더라도 나무숲이 울창해 저마다 산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북한산 자락에 조성된 북한산 둘레길은 동네 뒷산처럼 접근이 쉽고 산행길이 편안한데다 멋진 풍광의 북한산 풍경까지 즐길 수 있어 좋다. 산기슭에 자리한 사찰들은 산행객에게 선물 같은 존재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드는 길


이번에 걸어간 ‘구름정원길’처럼 둘레길은 저마다의 특성이 담긴 이름도 있다. 요즘 웬만한 산마다 깔려있는 둘레길의 미덕은 산길이 험하지 않다는 거다. 오르막길도 있지만 경사가 순하고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라 한겨울엔 눈이 쌓여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나무 데크길 흙길 숲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걷는 재미가 있다. 북한산 자락을 가로질러 구불구불 걷는 길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산행객들도 많다. 




산길 훼손을 줄이기 위해 조성된 나무 데크길



둘레길 주위엔 저마다 개성 있는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탁 트인 하늘과 울창한 숲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의 풍경이 함께 발밑에 펼쳐진다. 노래를 하는 듯 경쾌한 목소리의 산새, 까치소리, 까마귀 울음이 무척 생생하게 다가온다. 까마귀와 까치는 도시에서는 유해조류로 낙인찍혀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만 산에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한껏 편안해 보였다.  




저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나는 사찰



벤치가 놓여 있는 전망대도 있어 한숨 쉬어가기 좋다. 회색빛 도시위로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북한산과 능선이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둘레길 중간에 놓여있는 쉼터마다 써놓은 걷기 관련 명언 가운데 프랑스의 작가 장자크 루소가 남겼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봄날 산행을 즐기는 시민들


조선시대 내시 묘역이 남아있는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은 산기슭에 기대어 사는 동네를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항아리들이 정답게 모여 있는 옥상이 있는 단층집들과 골목이 정답다. 적적했을 산동네에 북한산 둘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인지 식당과 가게들에서 활기가 보여 좋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더 영영가가 높아지는 시래기, 단층의 낮은 집 지붕위에서 해바라기 하는 고양이들도 정답다. 


산행을 하다 마주치는 풍경 가운데 가장 쓸쓸한 건 버려진 무덤이 아닐까싶다. 북한산 자락을 따라 나있는 둘레길을 걷다보면 그런 무덤들을 만나게 되는데, 무덤 주인이 조선시대 내시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지역의 북한산 자락엔 말끔하게 관리중인 무덤과 함께 아무도 찾지 않아 묘소가 사라지고 있는 내시 무덤이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높은 벼슬을 한 어느 내시 무덤엔 안내판까지 세웠지만 묘소는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묘소 위에 홀로 서있는 문인석은 무덤의 주인이었던 내시를 보는 듯 생생했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은평한옥마을


한옥마을과 잘 어울리는 노거수나무 



둘레길가에 진관사(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진관길 73) 이정표가 여행자를 맞는다. 조선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단체로 휴가를 와 쉬면서 글을 읽었을 정도로 풍경이 좋은 곳이라니 안 가볼 수가 없다. 동네이름 진관동을 낳은 고찰로, ‘좋은 산은 좋은 절을 품는다’는 말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진관사 가는 길은 푸근한 한옥마을을 지나게 된다. 보호수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된 노거수 나무들과 한옥마을이 잘 어울렸다. 이곳은 북촌, 서촌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한옥 단지라고 한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눈 내린 한옥마을 풍경은 운치 있고 근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북한산의 옛 이름 삼각산 


진관사 가는 물소리 청명한 계곡길



절 입구 ‘三角山 津寬寺’라고 새겨져 있는 현판은 북한산의 본래 이름 삼각산을 알게 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은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졌다’고 나와 있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바뀐 건 일제 강점기 때. 1914년 일제는 '창지개명(創地改名)'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지명을 새로 지었다.   


절 입구 일주문에서 대웅전 안까지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있어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감상하며 기분 좋게 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내 자판기에서 차 한 잔을 뽑아 절 툇마루에 앉았다. 호위하듯 펼쳐진 북한산의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진관사는 비구니(여승)들이 운영하는 절이라 그런지 더욱 정갈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숨겨있던 태극기를 복원해 놓은 칠성각


진관사 칠성각 불전에서 나온 옛 태극기



경내에 있는 불전 가운데 다양한 민간신앙의 신(神)들을 모시고 있는 칠성각은 좀 특별한 곳이다. 불교에 흡수된 민간신앙인 칠성신(七星神 : 사랑, 재물, 성공, 행운, 무병장수, 소원성취, 복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 불전으로 지난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낡은 태극기와 독립운동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사이에 수십 년간 숨겨져 보관되어 있었던 거다. 정부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칠성각으로 들어가면 칠성신 그림 옆에 작게 축소된 옛 태극기가 숨겨진 것처럼 놓여 있다. 칠성신들이 태극기를 보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더 놀라운 건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위에 덧그려졌다는 점이다. 일장기를 거부하는 마음,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이 느껴졌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앗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만세 만세 다시 산 대한국 


-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가운데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내손안의_산림청,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