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오래된 길의 정취가 배여 있는, 도봉산 도봉옛길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2. 18. 16:00






 2011년 개통한 북한산 둘레길은 1구간 소나무 숲길부터 21구간 우이령 길까지 다양하고 많은 코스가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서울과 경기도를 걸쳐 뻗어있는 북한산뿐만 아니라 도봉산 자락의 샛길을 연결하여 조성했다. 이 가운데 도봉산 둘레길은 왕실묘역길, 방학동길, 도봉옛길 등 총 8개 구간이다. 이 둘레길 가운데 18코스인 도봉옛길은 철마다 계절감을 느끼며 걷기 좋은 길이다. 


이름도 정다운 서울 속 시골 마을 무수골, 선조들이 친필을 남기며 칭송한 도봉동 계곡, 도봉산의 멋진 화강암 암봉들도 감상하고, 개성 있는 사찰들을 지나며 다락원까지 약 3.5km의 부담 없는 길이다. 지나온 길이지만 희한하게도 새롭게 보이는 길을 되 걸으며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도 좋다. 도봉옛길은 도로가 없던 옛 시절 주민들이 오가는 중요한 왕래길이었다고 한다. 명칭에 걸맞게 오래된 길의 정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도봉산을 배경으로 시골 풍경을 간직한 무수골 마을 

도봉옛길로 가는 마을길  



 도심 속 정다운 시골마을 '무수골'에 담긴 두 가지 사연


수도권 전철 1호선 도봉역(2번 출구)에서 내려 도봉 1동 주민센터로 가면 무수골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무수천 길이 보인다. 화강암 돌산인 도봉산을 닮아 암반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무수천 산책로를 따라 20여 분을 걸으면 도봉 초등학교를 지나 무수골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배추, 무, 채소 등을 기르는 텃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시골 동네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졌다. 뒤로 도봉산의 암봉과 능선이 멋지게 펼쳐져 있는 텃밭엔 체험학습을 하는지 아이들이 흙과 채소들을 열심히 주무르고 만지며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어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흐뭇한 장면을 보다보니 도시의 어린 아이들에게 흔해진 질병 아토피는 흙을 멀리하면서 생겼다는 어느 책 내용이 떠올랐다. 나도 그랬지만 어릴 적 동네 개천가나 뚝방에 나가 놀면서 흙을 만지고 흙 위에서 뒹굴면서 자연스레 면역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 흙이 더럽다며 심지어 놀이터의 모래도 치워버리는 아파트의 아이들은 너무 깨끗한 나머지 오히려 면역력이 약해졌고, 아토피 같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말았다는 주장이 그럴 듯했다.  

    

무수골 동네는 어떻게 도시화되지 않았을까 궁금했던 차에 집 앞 평상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 국립공원 안에 속해 있었던 덕분에 기적적으로 개발 바람을 피해 이렇게 텃밭이 많은 자연마을이 되었단다. 도심 속 보기 드문 마을 무수골은 도봉산 자락의 조용한 옛 마을로 서울 도봉구 도봉2동 104번지 일대의 마을이다. 무수(無愁)골 혹은 '무수울'이라고도 한다. 


도봉산의 수려한 산자락 아래 풋풋하고 수수한 마을 풍경이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도심 속 농촌 마을이라 할만 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고 아늑한 기분이 드는 동네다 싶었더니,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를 비롯해 여러 기의 왕족묘와 일반 묘가 가까운 언덕배기 위에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세종 임금이 재위 당시 찾았다가 물 좋고 풍광이 좋아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한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는 옆집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며 현대사의 비극이 담긴 무수골의 다른 뜻도 알려 주었다. 6·25 전쟁 당시 아군과 적군이 싸우다 죽은 시체가 동네 주변 개천과 계곡, 윗무수골이 있는 산자락에 '무수히' 많이 널려 있었다 해서 동네 이름이 무수골이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도봉옛길 들머리

걷기 좋은 낙엽 융단길

산행객들의 쉼터가 된 산속 무덤 




 옛 정취를 간직한 숲길


무수골 마을을 지나면 길은 '도봉옛길'이라 쓰여 있는 나무 관문과 함께 도봉산 둘레길이 시작된다. 둘레길은 산길이 거칠지 않고 완만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산행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에 떨어져 내린 낙엽들에서 들려오는 사각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고,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낙엽 융단의 푹신함이 걷는 즐거움을 돋운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산속의 새소리, 낙엽소리를 뒤덮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가에 앉아 쉬거나 걷는 사람들 몇몇의 등산 가방에 달린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라디오 소리가 그것. 조용히 평화롭게 솦 속을 걷고 싶어 왔는데 왕왕 거리는 스피커 음악 소리는 날카롭게만 들려왔다. 소리가 안 들리게 빠르게 걸어 멀찌감치 추월하거나, 길가에 앉아 스피커 소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양지바른 언덕배기 위에 자리해 주변 풍광이 좋은 무덤들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 무덤을 지켜온 낡은 석물과 석등이 든든하고 운치 있어 보였다. 햇볕이 들고 경치가 좋아선지 무덤 옆에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고 있었다. 예부터 산에 무덤을 만드는 산소 문화가 일반적이어서인지 한국인들은 무덤에 대해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무덤덤하거나 친근하게 느끼는 듯했다.  

   




소원성취를 해준다는 어느 사찰의 거대 목탁

마애불 앞에서 기도중인 불자 




 선조들이 칭송한 아름다운 계곡가, 도봉동


도봉옛길엔 도봉사, 능원사, 광륜사 라는 절이 있어 옛길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짖거나 까불기는커녕 스님처럼 점잖은 백구와 황구가 맞아주는, 고려 4대 임금 광종 때 창건되었다는 고찰 도봉사. 8대 임금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된 뒤 국사(國事)를 돌봤던 오래된 가람이라고 한다. 


경내에 들어가자 마애불(바위에 새겨진 부처) 앞에 홀로 앉아 묵묵하게 기도를 하는 불자의 모습이 보였다.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이의 뒷모습은 경건하면서 왠지 뭉클하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결핍과 상실감이 그만큼 깊어진 이중적인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찰 불전에 들어서자 보기 드문 커다란 대형 목탁이 눈길을 끌었다. 이름 하여 '소원성취 목탁'이라고 쓰여 있어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 종교의 특징인 기복신앙의 상징 같아 보였다. 심신건강 자손번창 시험합격 사업번창 등등의 소원을 이뤄 준다는 거대 목탁 앞에 서니,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려 힘들게 도를 쌓고 불교를 일으켰던 부처님이 보셨으면 뭐라 했을까 궁금했다.     


예전 중국에 여행을 갔을 때 '오체투지'(五體投地,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으며 배를 땅에 깔고 다리를 쭉 편 후 머리를 땅에 닿도록 하는 절)를 하며 홀로 길을 가는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원하기에 그리 힘들게 길을 가는지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다. 그의 딸을 통해 들은 대답은, 부처님을 향한 공경과 불도(佛道)의 추구, 그리고 마음의 안식과 평화였다. 





숲길을 풍성하게 해주는 도봉동 계곡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글자 '도봉동문(道峰洞門)' 




둘레길은 도봉계곡가의 도봉동(道峰洞)으로 이어진다. 동(洞)이란 예전엔 동네 이름이 아닌 '골짜기나 계곡'을 의미했다. 도봉동은 도봉산 탐방로의 주요 지역인 동시에 계곡이 수려한데다 도봉서원(道峯書院)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 


조선시대 도봉서원은 학문을 정진하는 장소뿐 아니라 풍류를 즐기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도봉계곡 일대는 소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경관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 가을색이 완연한 나무들 아래로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쉬어가고 있는 곳이다. 


이를 먼저 알아본 사람이 정암 조광조다. 조광조는 그곳의 경치를 몹시도 좋아해 자주 찾았고, 조정에 나가서도 공무를 마치고 나면 수레를 몰아 찾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이곳을 좋아한 이가 바로 우암 송시열이다. 그래서 도봉서원은 조광조와 송시열을 함께 모시고 있다. 그렇게 선현의 배향과 교육에 힘쓰다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고, 위패는 땅에 묻었다가 후일 1972년 도봉서원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이곳에는 주자학(朱子學)의 대가이며 서인 성리학의 종주였던 우암 송시열 (1607~1689)이 도봉서원을 참배하고 서원 앞 계곡가에 남긴 유려하고 선명한 글씨가 유명하다. 도봉계곡 옆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도봉동문(道峰洞門)'이란 글자가 그것으로 도봉의 동구문이 열리는 곳, 즉 도봉산의 입구라는 의미다. 도봉 옛길엔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진 명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숲길에서 만난 산속 동물 

수려한 도봉산 능선

도봉산을 바라보며 시창을 하는 할아버지  




 도봉옛길과 잘 어울렸던 할아버지의 시조창


평탄하고 완만했던 도봉산 둘레길은 다락원으로 가는 끝 지점에서 비로소 산길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제법 호흡이 가빠지는 은석암 능선길이 이어졌다. 힘들게 오른 오르막길은 늘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솎아베기(간벌), 가지치기 등 사람의 손길로 더욱 근사해진 소나무들이 지키고 서 있는 능선 길 위로 올라서면 도봉산 주능선 일대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진 것 같은 도봉산의 암봉들, 선인봉·만장봉·자운봉 등이 멋들어진 자태로 줄 지어 서서 여행자를 맞이했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위치와 방향에 따라 봉우리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자꾸만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고라니나 멧돼지가 뛰어나올 것 같은 우거진 숲 사이로 좁지만 정답기만 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은석암 능선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시조를 읊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산행 중 등산객들의 휴대용 스피커에서 들리던 시끄럽기만 한 음악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운치있는 곡조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봉산의 풍광이 잘 보이는 능선길에 나무 벤치가 놓여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한 할아버지가 멀리 암봉들을 보며 시창을 하고 있었다. 취미로 시조와 시창을 배우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노랫소리는 구수하면서도 진중하게 느껴지는 게 마치 대금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둘레길을 지나오며 봤던 어느 팻말의 시와 참 잘 어울렸다. 





구름도 가끔

자운봉 꼭대기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때가 있다

바라볼수록

현기증 나는 저 봉우리

올라갈 길도 내려설 길도 없다

이 바위 저 바위

길을 찾다 그만

만길 벼랑에 갇혀

목숨 걸어야 길이 보이는

장엄한 도봉(道峰)

백금의 불꽃이 튀는

화엄의 바위산 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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