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꽃을 치장한 여인, 아름다움과 부귀 상징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5:53

우리 여인들은 목단(모란)이나 연꽃을 수놓은 활옷을 입어 부귀와 만복을 바랐다. 머리에는 꽃관을 쓰고 꽃비녀를 꽂았으며, 꽃신과 꽃버선을 신어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다.

 

한 번쯤 불러봤을 우리의 가곡으로「봄처녀」가 있다. 어여쁜 아가씨가 새로운 옷을 입고 예쁜 모자를 쓰고 깨끗한 신을 신고 꽃다발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노래다. 이 노래는 홍난파의 『조선가요작곡집』에 들어 있는 1932년경의 곡으로서 선율이 단순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새 옷에다 꽃다발까지 들고 있으니 해맑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이 눈가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예전에도 여인이나 소녀들은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옷맵시를 자랑했고 꽃으로 치장해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다. 꽃나무를 치장하는 일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던 것 같다. 특히 상류층의 여인이나 신부는 겉에 치장하는 꽃나무 장식품이 더욱 화려했다. 그 면면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혼례 옷에 목단, 연꽃 수놓아 부귀와 만복 기원옛날에 입었던 옷 중에 활옷이라는 것이 있다. 활옷은 왕실의 궁녀를 비롯해 상류층의 귀족들이 혼례를 치르고 난 뒤 입었던 여자용 예복이다. 나중에는 서민층의 신부복으로 허용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혼례식이나 폐백 때에 입는다. 활옷의 겉에는 붉은빛 비단에 꽃나무 등의 수를 가득히 새겨 놓았다. 수의 내용은 장수, 부귀, 다복 등을 상징했다. 즉 목단(모란)이나 연꽃 등을 여러 빛깔로 영롱하고 화려하게 수놓았다. 거기에다가 신부의 행복을 축원하는 만복지원(萬福之源), 수여산(壽如山), 수여해(壽如海) 등의 글씨를 수놓아 신랑과 신부의 결합이 만복의 근원이 되고 산과 바다와 같이 오래 해로하기를 기원했다.

 

목단(모란)은 부귀의 상징이면서 '꽃 중의 왕'으로 칭송되는 데서 연꽃과 함께 여러 송이가 수놓아졌다. 연꽃은 주로 활옷의 뒷길에 활짝 핀 꽃과 열매 및 잎을 수놓았다. 중앙의 연꽃은 연한 붉은빛이 아닌 파란빛의 추상적인 색으로 나타냈다. 연꽃은 불가의 상징적인 꽃으로 건강, 장수, 행운을 표상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살면서도 더러움이 없이 항상 깨끗하다고 하여 그 청결함이 세상에 맑게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파란빛의 연꽃은 천수관세음보살(千手觀世音普薩)이 한 손에 파란빛의 연꽃을 들고 있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활옷에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길상적인 문양을 수놓아 인간의 염원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활옷의 문양에서는 자연주의사상과 유교사상에서 유래한 현세주의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장수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우리 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꽃관, 꽃비녀, 꽃신, 꽃버선으로 아름다움 뽐내


또한 우리 여인들은 머리에 꽃관(화관)을 썼다. 꽃관은 예복차림의 여인이 머리에 썼던 예장용의 관이며 '화관족두리'라고도 불렀다. 옛날에는 궁궐에서 의식이나 경사가 있을 때에 기녀, 동기(童妓), 무녀, 여령(女伶)이 썼으며, 양반집에서는 혼례 때나 경사 때에 대례복(大禮服) 또는 소례복에 병용하였다. 모양은 약간씩 달랐다. 꽃관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사용이 일반화됐다. 영·정조는 부녀자들의 의식용 머리로 가체(加)가 성행하면서 그 사치로 인한 피폐가 극심해지자 머리모양을 쪽머리로 고치도록 하고 가체 대신 족두리와 함께 꽃관을 쓰도록 권장했다. 서민층의 여인이 혼례를 치를 때에 꽃관의 사용이 허용된 시기도 이 때부터다. 예관으로 사용할 때는 칠보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으며, 조선 말기에는 정장할 때에 족두리, 활옷과 함께 꽃관을 썼다.

 

그리고 여인들은 활옷에다 꽃관을 쓰고 꽃나무가 새겨진 비녀를 꽂기도 했다. 비녀는 여인의 쪽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식품이다. 한자로는 잠(簪)이라고 한다. 비녀는 쪽을 고정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장식의 구실도 겸했으며, 영조 때에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비녀의 사용이 많아졌고 모양도 다채로워졌다. 비녀는 머리형태의 장식에 따라서 모양이 달랐는데, 꽃나무를 새긴 것으로는 매죽잠(梅竹簪), 죽잠(竹簪), 매조잠(梅鳥簪), 죽절잠(竹節簪), 연봉잠, 목련잠, 목단잠, 석류잠, 가란잠(加蘭簪), 국화잠, 화엽잠(花葉簪), 초롱잠(草籠簪), 호도잠, 두잠(豆簪), 완두잠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존비귀천(尊卑貴賤)의 차별이 심해 금은과 주옥으로 만든 비녀는 상류층에서 사용했으며, 서민층의 여인들은 주로 나무나 뼈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이밖에도 쪽머리 뒤에 꽂는 비녀 이외의 장식물로서 '뒤꽂이'가 있는데, 뒤꽂이에 새긴 모양도 국화, 매화, 화접(花蝶), 연봉, 천도(天桃) 등의 다양한 꽃나무가 소재로 사용됐다.

 

게다가 우리 조상들은 발을 보호하고 모양을 맵시있게 하기 위해 천으로 만든 버선을 신었다. 발의 보온이나 보호 기능에 충실하던 버선이 오늘날과 같은 맵시 위주의 모양으로 바뀐 것은 조선 중기 때부터란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때부터 버선의 크기가 실제 발 크기와 같아지고 꽃을 그려 넣은 꽃버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꽃버선을 신는다. 그런 여인은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전의 신부나 나이 어린 규수는 꽃버선과 함께 꽃신을 신었다. 꽃신은 꽃당혜라고도 했다. 또한 여인용 신에다 꽃 등을 수놓은 것을 수혜(繡鞋)라 했다. 꽃신은 꽃나무를 직접 그려 넣거나 꽃무늬를 신에 바르기도 했다. 요즘은 한복을 입는 여인들이 많지 않아 꽃신을 신은 여인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없지만 혼례 때에 신부가 꽃버선과 꽃신을 신고 하얀 선을 살짝 드러내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오늘날 부케와 코사지는 신부 아름다움 완성시켜


오늘날 결혼식 때의 신부 장식품은 꽃다발이 주류를 이룬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부케(bouquet)와 코사지(corsage)다. 부케는 꽃이나 잎을 다발로 묶은 꽃다발이며 일반적으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는 일종의 장식품이다. 코사지는 여인의 허리를 중심으로 상반신의 의복에 직간접적으로 장식하는 꽃다발이며 작은 꽃묶음의 형태다. 코사지는 오늘날 활용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머리를 비롯해 목, 어깨, 가슴, 허리, 등, 팔, 손목, 발목, 등의 신체 부위 외에도 귀걸이, 목걸이, 모자, 팔찌, 핸드백, 구두 등의 장신구와 증정용 선물에도 사용하고 있다. 코사지가 여성을 위한 꽃다발이라면 부토니아(boutonniere)는 신랑의 단추 구멍에 꽂는 작은 꽃다발이다.

 

유래를 보면 기원전 4세기에 서양의 신부는 머리에 풀꽃으로 장식된 꽃관을 썼는데, 이는 풀꽃의 향기가 모든 악령으로부터 신부를 보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신부는 순종의 의미로 손에 풀을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16세기에는 신부가 다산의 의미를 갖는 마른 벼이삭을 들고 입장했다. 이렇듯 신부의 부케 원형은 아름다움의 추구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 1756년부터는 흰빛의 꽃장식이 널리 유행하면서 화이트웨딩(white wedding)이 시작됐고, 오늘날에는 부케가 상징의 의미보다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완성시켜주는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결혼을 앞둔 신랑이 들에서 꺾어 만든 꽃다발을 애정의 표시로 신부에게 건넸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웨딩부케가 됐으며, 신부가 신랑으로부터 받은 꽃다발 중에서 한 송이를 빼서 신랑의 옷깃에 꽂아 준 것이 바로 지금의 부토니아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가 꽃다발에서 꽃을 한 송이씩 뽑아 참석자들의 가슴에 꽂아 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꽃을 나눔으로써 행운이 나누어져 꽃을 받은 사람도 행복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의 웨딩부케는 철사로 꽃을 엮어 만들기 때문에 한 송이씩 뽑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어렵게 됐지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사람이 행운을 잡아 다음 차례의 신부가 된다는 풍습은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 여름에 어디선가 '꽃을 입은 여인, 화려한 스커트와 원피스 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잠시 그 내용을 생각해 보면 섹시한 미니스커트가 주춤하는 대신 화려한 스커트와 원피스가 뜨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스커트와 원피스는 히피(hippie)와 에스닉(ethnic, 민속풍) 스타일로 자유분방하고 오렌지빛의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어쨌건 예전의 여인들도 '꽃을 입은 여인'의 최근 스타일 못지않게 고고한 자태의 꽃나무 장식품으로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던 것 같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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