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신라 여인과 문헌 속 꽃나무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5:56

신라 선덕여왕은 당나라에서 보낸 모란 꽃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음을 예지할 만큼 지혜가 탁월한 한반도 최초의 여왕인 동시에 한 여인이었다. 헌화가의 주체인 수로부인이 진달래꽃을 갖고 싶어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여인들은 꽃나무를 무척 좋아하나보다. 이번호에서는 신라의 여인과 관련한 문헌 속의 꽃나무에 관한 내용 3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선덕여왕과 모란이고, 다른 하나는「헌화가」의 꽃나무이며, 나머지 하나는 두 자매의 전설나무다. 먼저 선덕여왕의 모란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여인이 나라를 다스렸던 때는 신라시대뿐이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을 비롯해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년)과 제51대 진성여왕(재위 887~897년)의 통치기간을 말한다. 특히『삼국유사』의 일화로 널리 알려진 선덕여왕은 재위기간이 632년부터 647년까지로 한반도 역사상 최초 여왕이었다. 재위기간도 16년으로 다른 두 여왕에 비해 길었다. 선덕여왕은 제26대 진평왕의 딸이며,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장녀인 덕만공주에게 왕위를 잇게 했다. 선덕여왕은 재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안으로는 선정을 베풀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밖으로는 위엄을 과시해 국위를 선양했다.

 

『삼국유사』 선덕여왕편에는 선덕여왕이 행한 3가지 예지의 내용이 전한다. 그것은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목단)의 꽃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음을 짐작한 일이고, 또 하나는 영묘사의 연못 부근에서 개구리가 울었다는 이야기에서 유추해 적군이 서쪽의 여근곡이라는 골짜기에 숨어든 것을 알아내고 격퇴시켰다는 것이며, 그리고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아 사후 도리천에 묻으라고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향기없는 모란을 예지한 선덕여왕


그 중에 모란꽃 그림의 일화는 본 주제의 첫째 이야기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붉은빛, 보랏빛, 흰빛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씨앗 3되를 진평왕에게 보내왔다. 그러자 진평왕은 그것을 첫째 딸인 덕만공주(선덕여왕)에게 보였다. 덕만공주는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진평왕은 이 말을 듣고 신하를 시켜 그 꽃씨를 궁궐의 뜰에 심어보게 했다. 이상하게도 그 꽃이 피어서 지기까지 향기라곤 맡을 수 없었다.

 

덕만공주가 여왕이 된 이후에 신하들이 모란 꽃 그림의 예언을 두고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때 선덕여왕은 "모란 꽃을 그린 그림에 나비와 벌이 함께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으로써 그 꽃의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그것은 곧 당나라의 임금이 현재 내가 여자로서 짝이 없이 독신으로 지내는 걸 풍자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설명을 듣고 뭇 신하들은 모두 그 예지에 감복했단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란은 작약과 비슷하지만 작약은 풀인 반면에 모란은 나무인 점이 크게 다르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모란은 향기가 없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약하기는 하지만 향기를 내는 꽃나무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모란은 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어렸을 적에 당나라로부터 씨앗 3되를 선물로 받아 심은 것이므로 예전에 한반도에 없던 꽃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모란은 신라시대에 한반도에 도입된 것이다.

 

어쨌든 모란꽃 그림의 일화에서 선덕여왕의 탁월한 성지(聖智)를 읽을 수 있다. 혹시 선덕여왕은 당나라로부터 모란을 선물로 받기는 했으나 그 선물의 의미가 신라를 당나라의 아래에 두려는 속셈으로 생각해서 향기가 없는 꽃으로 평가절하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선덕여왕은 꽃이 매우 큰 모란이 신라보다 힘이 세고 넓은 영토를 가진 당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터이다. 당시에 모란은 당나라의 나라꽃처럼 여겨지던 꽃나무였다. 이런 꽃을 선물받았으니 선덕여왕이 폄훼하여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했을 법도 하다는 뜻이다.

 

향가「헌화가」의 꽃은 진달래가 옳아


본 주제의 두번째 이야기는 신라시대「헌화가(獻花歌)」에 나오는 꽃나무다. 헌화가는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기간 702~737년) 때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인이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4구체의 향가다.『삼국유사』수로부인편에 가사 전문과 배경설화가 실려 전한다.「헌화가」는 노래의 성격과 해석에 대한 학설이 다양하며 특히 수로부인과 노인의 정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여러 갈래의 해석을 제쳐두고 본 주제에만 고정시켜 글을 이을까 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을 말함이다.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이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바닷가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주위는 깎아지른 벼랑이 병풍처럼 바다를 에워싸고 있었고 마침 높이가 1,000장(丈)이나 되는 벼랑 위에 아름다운 자줏빛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은 벼랑 위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고 크게 감탄하며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있느냐?"고 종자(從者)에게 물었다. 그러나 함께 가는 젊은 사람들은 사람이 닿지 않는 곳의 꽃을 꺾는 일을 위험천만한 요구로 생각해서인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어떤 노인이 부인이 꽃을 바란다는 말을 듣고 노래를 지어 부르며 꽃나무를 꺾어 바쳤다. 그 노인이 부른 노래가 향찰(鄕札)로 표기되어 전하는 것이「헌화가」이며 현대 해석문은 다음과 같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 노래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이다. 부인은 깊은 산과 물가를 지날 때마다 매번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갈 정도로 절세미녀였다고 고증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한 노인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는 전제에서 생명을 걸고 높은 벼랑을 기어 올라갔단다. 따지고 보면 이 노래에서 대조를 이루는 수로부인과 노인은 모두 신라인의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 벼랑의 꽃을 원하는 수로부인의 탐미심과 그런 절세미인에게 가까워지려는 노인의 소박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노래의 미의식에서 비중있는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꽃나무다. 이「헌화가」에 나오는 꽃나무가 원문에는 꽃(花)으로만 나와 있어서 실제 어떤 꽃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여러 문헌에서는 철쭉 또는 진달래로 해석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적은 진달래보다 철쭉으로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이 노래의 꽃이 어떤 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 노래의 생태적 환경으로 미루어 진달래꽃이라야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노래처럼 바위나 벼랑에 자랄 수 있는 꽃은 철쭉이 아니고 진달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달래는 여러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므로 바위를 덮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철쭉은 여러 나뭇잎이 나온 후의 나무숲과 함께 어우러져 피므로 바위를 덮은 것처럼 보일 수 없는 것도 한 이유이다. 그리고 꽃의 빛깔도 진달래는 자줏빛에 가깝지만 철쭉은 연한 분홍색에 가깝다.

 

양보의 사랑은 결국 등나무로 변해


경북 경주시 현곡면에는 용림(龍林)이라 해서 임금이 사냥을 즐기던 곳이 있다. 이곳에 있는 등나무는 용등(龍藤)이라 부른다. 세번째 이야기는 이 나무에 얽힌 두 자매의 전설이다. 신라 때에 이 마을의 한 농가에는 19살과 17살이 되는 예쁜 자매가 있었고, 옆집에는 씩씩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이들 자매는 옆집의 청년을 남몰래 사모했다. 이 비밀은 그 어느 누구도 몰랐다.

 

어느 날 옆집 청년이 싸움터로 떠날 때에 자매는 비로소 똑같이 그 청년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후 자매는 서로 양보하기로 결심했다. 자매는 그러던 중에 뜻하지 않은 청년의 전사소식을 듣고 연못가에서 얼싸안고 울다가 연못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옆집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와서 세상을 등진 자매의 애달픈 소식을 듣고 자신도 연못에 빠져 죽었다. 그런 후에 연못가에는 자매의 화신 2그루의 등나무와 청년의 화신 팽나무가 자라나 함께 어울렸단다.

 

이 전설나무의 자매는 살아 있을 때에 사랑하는 청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다. 그 양보의 미덕은 비록 죽어서도 등나무로 화신해 대대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의 등나무는 부부의 갈등과 불화가 있을 때에 이 꽃이나 잎을 삶은 물을 마시면 갈등이 해소되고 애정이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이 꽃을 말려서 신혼부부의 이불 속에 넣어 두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지는 것으로 알았다.

 

지금 산야에는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얼마 안 있어 철쭉과 등나무도 꽃이 핀다. 이때에 진달래와 철쭉의 자라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면「헌화가」의 꽃이 어떤 꽃나무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라의 여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새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모란과 등나무의 꽃도 신라시대 선덕여왕과 자매의 상념으로 되돌려 제 각각의 감상법으로 관찰해 보면 어떨까.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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