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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소재의 우리 신화 속 원형의 여성상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5:49

단군신화의 웅녀는 곰과 쑥과 마늘의 상징으로서 인내와 생산성을 구현하는 신적 권능을 지닌 존재였으며, 무속신화의 자청비와 가믄장아기 여인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적극적인 의지의 원형성을 보여줬다.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는 대모신(大母神, Great mother of the gods)이다. 흔히 고대 동양과 그리스 로마의 여신을 일컫는다. 대모신은 본질적으로 동서양이 모두 똑같은 특징으로서 보편적인 모성을 든다. 특히 자연의 동물에 대한 모성이 강조되는데, 우리 신화(神話)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모신 성격의 여인은 웅녀(熊女)다. 웅녀는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배우자로서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어머니다. 본 호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꽃나무 소재의 우리 신화 속 원형의 여성상을 살펴본다.

 

단군신화는 웅녀가 곰에서 사람으로 변신한 후에 단군을 낳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하늘나라 환인(桓因)의 아들인 환웅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태백산에 내려온 후 신단수(神檀樹, 고대사회에서 신성한 신단의 숲) 아래의 신시(神市)를 다스렸다. 환웅은 360여 가지 일의 인간세계를 주관하고 교화했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이 되기를 원하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그것을 먹고 삼칠일(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곰은 그것을 먹고 21일 만에 여자가 됐다. 사람이 된 웅녀는 혼인할 이가 없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잠깐 몸을 변하여 웅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이가 단군이다. 이러한 단군신화는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국가성립의 단계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데, 웅녀와 환웅의 결합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단군신화에서 웅녀와 관련되는 토템의 곰과 호랑이 존재, 쑥과 마늘의 주술적 효력, 삼칠일의 금기 등은 민속적으로 의미 있는 요소들이다. 쑥과 마늘을 통해 동물성이 제거되고 사람이 됐다는 것은 쑥과 마늘의 독성제거 효력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삼칠일은 출산과 관련된 민속적 금기의 인내 기간이다.

 

단군신화 웅녀는 생산성, 인내성 상징
이 신화에서 웅녀는 사람으로 변신하기 이전에 동물신이었다. 곰의 소재는 시베리아의 원시민족이 곰을 신격시하는 곰제(熊祭)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며, 긴 겨울잠을 거쳐 되살아나는 재생력의 상징으로 토템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웅녀는 지모신(地母神)의 표상으로서 재생력과 생산력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다. 지모신은 고대와 현대의 원시 종교에서 어머니이며 만물의 영원한 번식의 원천인 여신인데, 만물은 그녀에게서 나오고, 그녀에게로 돌아가며, 그녀의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쉬지 않고 만물을 산출해 내는 것이 지모신이다.

 

강진옥은 「마고할미 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을 파악하면서 인간이 숭배한 최초의 신격은 세계 어디에서나 대체로 여성으로 표상됐으며, 우리의 토착신격인 선도 성모나 마고할미는 초기의 여성신격으로서 창조여신이나 포용을 관장하는 생산신의 의미를 지녔다고 했는데, 웅녀는 생산성(재생력, 출산력)과 풍요성을 구현하는 지모신의 신적 권능을 지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웅녀가 동굴에서 쑥과 마늘로 삼칠일을 버틴 후 사람으로 변신해 단군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남신이 잠깐 개입하지만 어떠한 종속성이나 성적 갈등도 나타나지 않는다. 즉 웅녀는 남신과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에서는 모계적 질서가 숨은 의미로 작용하면서 웅녀가 생산과 창조를 관장하는 대모신이나 지모신의 표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또한 이 신화에서 곰은 이상적이고 내적인 힘과 함께 인내를 상징한다. 어려움을 참고 내적인 투쟁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한민족의 사고를 말해 준다. 김승희는「웅녀신화 다시 읽기」에서 곰의 끈기, 인내, 순박성 등의 내향적인 특징들이 ‘한국 여성의 미’로 확대 재생산돼 우리 사회의 문화적 규범으로 정착됐다고 했다. 또한 웅녀의 이미지는 유교문화권의 가부장적 이념 속에서 여성들이 지녀야 할 '아름다움의 미덕'으로 인공화 됐다고 주장했다. 이렇다고 보면 웅녀는 끈기와 인내의 전통적 여인상으로서 그 상징성이 널리 작용해 현대 여성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쑥과 마늘의 상징성도 매우 크다. 단군신화의 마늘은 당시에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달래, 산부추 등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다고 보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인식의 마늘을 그대로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쑥은 단옷날 사람의 형상이나 호랑이의 형상으로 만들어 주위에 걸어 나쁜 기운을 쫓는 데 썼고, 이사를 하면 그 집의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해 쑥을 태우기도 했다. 또한 쑥은 동물적인 존재에 영성(靈性)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마늘은 쑥과 함께 벽사(邪)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믿어 왔다. 마늘의 독특하고 강한 냄새가 악귀나 액(厄)을 쫓는 힘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밤길을 떠나기 전에 마늘을 먹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밤길의 마늘 트림은 각종 사귀(邪鬼)나 병마를 물리치고 호랑이도 도망가게 한다고 믿었다. 쑥과 마늘을 먹고 삼칠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은 것은 수성(獸性, 인간이 가진 동물적인 성질)의 제거를 위한 통과의례를 상징하며,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한 시련의 시간을 의미한다.

무속신화 자청비는 주체성, 독립성 묘사


다음은 제주도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자청비가 주인공인「세경본풀이」는 농경과 목축신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제주도의 신화로서 전체적으로 문도령과 결합하는 자청비의 행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오곡종자를 직접 가져오는 신도 자청비이므로 농경신을 여성신으로 관념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꽃을 소재로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일 잘하는 남종(정수남)을 죽였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난 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여러 가지 생명꽃이 피어 있는 서천꽃밭으로 들어가 부엉새를 잡아주는 공을 세운 후 그곳 꽃감관의 남장 사위가 되는데, 그곳에서 생명꽃을 얻어와 정수남을 살린다. 그러나 자청비는 여자가 환생꽃으로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한다고 해서 내쫓김을 당한다. 자청비는 쫓겨나기를 거듭하다가 하늘나라로 가서 문도령을 만나지만 문도령이 죽게 되자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가져다가 문도령을 살려낸다. 또한 하늘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나자 서천꽃밭에서 가져온 죽음꽃을 이용해 난을 진압한다. 자청비는 이 공로로 오곡종자를 얻어 문도령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굶어 죽어가는 정수남을 만난 자청비는 그를 위해 밥을 준 늙은이의 밭에는 풍년을 주고 밥을 주지 않은 아홉형제의 밭에는 흉작을 준다.

 

참고적으로 이 내용의 전개과정에서 진달래는 여인의 시름을 달래주는 꽃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자청비와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은 서로 사랑을 나눌 때에 박씨 하나를 주며 "박이 크게 자랄 때 돌아오마." 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후 문도령은 소식이 없었다. 매일 문 밖을 내다보던 자청비는 남의 집 아이들이 소 등에 땔나무를 싣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소의 머리에 꽂힌 빨간 진달래를 보고 그것을 가지면 모든 시름을 잊을 것 같아 종에게 "너는 다른 집 종처럼 왜 진달래꽃을 따오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었단다.

 

이로 미루어 자청비는 남장을 통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여성성과 새롭게 발견한 남성성을 습득하고 그러한 통합적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청비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넘나들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창조와 파괴의 이중적 속성을 갖는 대모신적 성격의 잔재를 반영했다. 특히 자청비는 과업을 성취하기까지 매우 힘겨운 시련을 겪는데, 이 과정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도전정신이 발휘됐다. 그리고 목적한 바를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지닌 여신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자신의 운명 적극성으로 성취하기도
제주도 무속에 등장하는 서천꽃밭은 인간의 생명을 환생 또는 명멸시키는 주술적 꽃을 가꾸는 밭이다. 제주도 무속에서는 인간의 생사가 이 꽃밭의 환생꽃과 명멸꽃(죽음꽃)의 주술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제주도 무속에서는 자식을 점지해 주는 점(占) 풍속이 있는데, 내용은 서천꽃밭에 가서 생명의 꽃을 따다가 제주(祭主)에게 팔아 생명의 씨를 잉태케 하는 극적 장면을 실연하고 제주가 뽑은 꽃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이다. 실제로 심방(무당의 제주도 방언)은 미리 제상 위에 올려 있는 동백꽃을 도둑질해 제주의 집을 찾아 꽃을 파는 동작을 극적으로 실연한 후 제주더러 꽃 한 가지를 뽑도록 하고 그 꽃가지의 생김새를 보아 자식을 언제 점지해 줄 것인가를 판단하고 전달한다.

 

무속의 「삼공본풀이」는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본풀이로서 막내딸(가믄장아기)을 중심으로 마뿌리가 황금으로 변해 부자가 되는 내용이다. 가믄장아기는 누구의 덕에 먹고 사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자기 덕으로 먹고 산다는 대답으로 부모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다. 집을 떠난 가믄장아기는 굴미굴산의 초막에 사는 세 아들 중 막내 아들과 결혼한다. 남편이 마를 캐던 곳에 갔다가 그곳에서 금을 발견해 부자가 된다. 이후 가믄장아기는 장님이 된 부모를 찾고 눈을 뜨게 한다. 막내딸 가믄장아기는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독립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돌이라고 하여 버린 마뿌리가 모두 금덩이로 변해 부자가 됐다는 것은 복이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이유경은 논문을 통해 가믄장아기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소망하는 바를 성취하는 여신으로 설명했다.

 

이상의 신화적 내용을 통해서 보면 동식물과 여인의 관계는 여성의 생산성이 지니는 자연과의 조화, 즉, 자연과 여인이 동일시되면서 그 속성인 생명력과 풍요성이 인간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가치였던 것이다. 또한 「삼공본풀이」의 가믄장아기에서는 여성으로서 자아에 눈을 뜨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세계를 독립적으로 실현해 나가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원형성은 오늘날의 여인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단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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