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진달래꽃과 그 상징의 여인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02

흔히 진달래꽃은 여성의 문장(紋章)으로 여긴다. 또한 그 모양과 빛깔은 수줍은 새색시의 얼굴이나 환하게 피어나는 봄처녀를 상징한다. 때문에 신라시대「헌화가」와 무속신화와「진달래꽃」시에서 진달래의 꽃을 여인에게 바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진달래꽃이 피는 시기는 벌써 지났다. 무릇 순식간에 피었다가 진 꽃이 아닌데도 어느새 제철이 지나가 버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꽃이 지고 나면 그 시절 그 꽃이 그리워진다.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 호에서는 진달래와 관련한 여인에 대해 글을 이을까 한다. 지금까지 본 주제의 글을 몇 편 쓰면서 매번 부차적으로 등장했던 꽃나무가 진달래였다. 때문에 꽃피는 시기가 지났어도 한 번쯤은 언급해야 할 것 같아 다음 시기로 미루지 않고 서둘렀다.

 

진달래꽃은 새색시나 봄처녀 상징


우리의 대표적인 봄꽃, 진달래. 척박한 땅에서도 무성히 자라는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수반함과 아울러 봄의 전령을 상징하는 꽃이 진달래다. 꽃의 아름다움도 다른 꽃나무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때문에 동양에서는 진달래의 꽃을 여성의 문장(紋章)으로 여긴다. 미모의 여자를 흔히 진달래의 꽃으로 비유하는 한 이유이다.

 

또한 진달래꽃의 모양과 적자색은 그것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수줍은 새색시의 얼굴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새롭고 환하게 피어나는 봄처녀를 표상하기도 한다. 신윤복의 그림인「연소답청(年少踏靑)」에는 절벽의 산에 진달래가 피어 있고 청춘남녀가 그 밑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말을 탄 여인이 진달래를 꺾어 머리에 꽂은 모습이 정겹다. 이 그림은 마치 지난 호에 언급한 바 있는 신라시대 수로부인의 「헌화가」에 나오는 바위절벽의 진달래를 연상케 한다. 진달래를 꺾어 머리에 꽂는 전래는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진달래와도 비슷하다.

 

우리의 무속신화 세경 본풀이에서는 진달래가 여인의 시름을 달래주는 꽃으로 등장한다. 이 신화에서 여인(여신) 자청비와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은 서로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가 문도령이 박씨 하나를 주며 "박이 크게 자랄 때에 돌아오마."하고 하늘나라로 떠난다. 그 후 문도령의 소식을 기다리던 자청비는 남의 집 아이들이 소 등에 땔나무를 싣고 오는 것을 본다. 그때 소의 머리에 꽂힌 붉은빛의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본 것이다. 자청비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시름을 잊을 것 같아 종에게 “다른 집의 종들은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꺾어 오는데, 너는 뭘 하느냐. 소의 머리에 꽂힌 꽃이 너무도 보기에 좋지 않느냐.”라고 다그치며 말했단다. 즉 여기에서 진달래는 여인에게 위안을 주는 꽃으로 상징된다고 할 수 있다.

 

진달래는 설화의 소녀이름에서 유래


여인과 관련되는 진달래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야기가 약간 벗어나는 것 같지만 삼월 삼짇날에 봄맞이 행사의 하나로 진달래꽃과 찹쌀가루로 진달래꽃전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여자들의 차지였다. 이것을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없는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볼 때에 진달래꽃전은 남자보다 아름다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여자가 즐겨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진달래꽃이 월경을 순조롭게 하는 효험이 있는 것도 여자와 얼마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진달래는 고려가요「동동」에 '돌욋곳'으로 나오는데, '돌외'는 진달래의 달래에 해당되고 진달래의 고어란다. 그 뜻은 필자는 알지 못한다. 필자의 관심분야가 아니므로 특별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국문학자의 범주이기에 그들의 몫으로 남긴다. 다만 여기에서는 진달래의 이름에 대해 전래되는 설화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는 정도로 그친다. 물론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에서 유래하는 진달래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낸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이 친근하면서도 재미있어 소개한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로서 옛날 '진'이라는 성을 가진 나무꾼은 물웅덩이에 빠진 선녀를 구하고 나서 그녀와 결혼해 예쁜 딸을 낳았다. 나무꾼은 딸의 이름을 '달래'라고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달래는 마을 원님의 유혹을 뿌리친 죄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죽고 말았다. 나무꾼도 딸의 죽음을 한탄하며 며칠 동안을 울다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진씨 성을 가진 나무꾼과 달래라는 이름의 딸을 묻어둔 무덤가에 보랏빛의 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달래의 이름과 나무꾼의 성을 따서 진달래라 불렀단다. 진달래가 이 설화에서처럼 소녀가 죽어 화신한 꽃이라서 그런지 그 꽃 빛깔이 아름다운 적자색이어서 여인을 비유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별의 여인을 위해 뿌려준 진달래꽃


마지막으로「진달래꽃」시에 나타난 진달래와 여인이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전통 시가에 나오는 여성은 대부분 서정적 자아를 나타낸단다. 또한 우리 시의 여성편향은 존재의 나약성과 함께 잠재된 저항력의 지속적 표출의 결과라고도 말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순화적인 감정 승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단다. 여성을 화자(話者)로 내세운 우리의 시 중에 김소월(金素月)의 대표작인「진달래꽃」이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시는 1922년『개벽』지에 처음으로 실린 이후 지금까지 줄곧 사랑받고 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여성. 이 시에서 여성은 이별의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체념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자세는 가시는 임의 앞길에 꽃을 뿌려 축원하고, 임이 그 꽃을 밟고 가길 바라는 헌신적인 사랑을 품고 있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이미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극한적 상황을 '진달래꽃'을 통해 초월하려는 역설적 의지가 담겨 있다. 내용으로 보아 '진달래꽃'은 붉고 아름다운 서정적 자아의 사랑의 완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서정적 자아가 지니고 있는 원망과 슬픔을 상징하는 동시에 떠나는 임에게 끝까지 자신을 헌신하려는 순종과 정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아가 여러 국문학자의 말을 빌리면 옛 시에서 ‘진달래꽃’은 한민족 정서의 대유적(代喩的) 상징물로써 존재하는데, 특히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는 작품에서 시인의 분신으로서 표현되기도 했단다. 아울러 '진달래꽃'은 설화적 모티프를 가지고 있으며,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성을 비극적 상황으로 설정해 놓았다. 이런 비극적 장면 속에서의 여성적 목소리는 자신의 고난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의지와 자세로 변하는 과정을 겪게 됨과 아울러 폭력과 인종의 굴레를 달관하는 이상적 의지를 실현하게 된단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이 꽃나무는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이별하는 연인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꽃을 마구 뿌리는 일은 불가(佛家)의 '산화공덕(散華功德)', 즉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와 같다.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아무튼 사랑하는 여인은 진달래꽃보다도 아름다웠고 진달래의 생명력보다도 강했다. 우리 한민족의 여인이 그렇다고 하면 잘못된 인식이라 충고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지금은 진달래의 꽃이 모두 떨어져 볼 수가 없다. 국민동요「고향의 봄」에서 이원수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고향의 진달래꽃과 그 꽃과 같은 사랑하는 임은 지워지지 않고 늘 우리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을 터이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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