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꽃과 나무

버들가지가 여인을 상징하는 까닭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07

버드나무는 여성다움을 표현하거나 섬세한 아름다움에 비유되곤 한다. 여인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요(柳腰)라 하고, 고사성어 노류장화(路柳墻花)는 창녀를 뜻한다. 화려한 직업여성의 사회를 의미하는 화류계(花柳界)도 버들 유(柳)가 중심인 말이다. 이래저래 버드나무는 여인과 관련이 많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하는 이상(?)한 피서법. 그것이 식은땀을 흘릴 만큼 무서운 귀신출몰이었던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귀신출몰의 오싹한 장면으로 채워진 TV의 납량특집 오락프로가 자취를 감췄다. 시작부터 귀신얘기를 꺼내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 주제의 버드나무가 귀신나무로 알려져 있어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는 대체로 집 뜰에 심지 않는다. 왜일까. 귀신이 나오는 나무로 믿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도깨비들이 비오는 날 밤이면 버드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장난을 치는 것으로 믿어 왔다. 실제로 버드나무 아래서 도깨비불을 보았다는 사람이 더러 있는 걸 보면 완전 허구로만 여길 일은 아니다. 또한 축 늘어진 버들가지의 모습은 상(喪)을 당해 머리를 풀어 헤친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므로, 이러한 형상의 버드나무를 집 안에 심으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간 빗나가지만 자식을 못 가진 집안에서도 버드나무를 울안에 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재미있게 전한다. 옛날 어떤 난봉꾼이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중에 냇가를 지나다가 목욕하는 처녀를 보았다. 난봉꾼은 허겁지겁 달려가 그녀를 껴안고 밤새도록 몸부림했다. 아침에 정신을 차린 난봉꾼은 자신이 밤새도록 껴안고 몸부림쳤던 그녀가 여인이 아닌 귀신 같은 버드나무였음을 알았고, 그 후 양기(陽氣)를 잃어 남자구실을 못했단다.

 

그러나 버드나무는 귀신나무로 평가절하된 것만이 아니다. 버드나무 가는 가지는 실바람에도 흐느적거린다. 때문에 나무이름도 나뭇가지가 부드럽고 부들부들하다는 뜻이 변해 버들이 된 것이 아닐까. 이는 버드나무가 부드럽고 연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버드나무는 재질이 부드럽고 연해 마치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온유하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에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온유함을 표현함이다.

 

버들 유(柳)자는 미모의 여인을 의미해


이처럼 버드나무는 전통적으로 여성다움을 표현하거나 섬세한 아름다움에 비유되곤 했다. 예전에 아름다운 여인을 비유해 매화는 선녀(仙女)요, 벚꽃은 숙녀(淑女)요, 해당화는 기녀(妓女)라 했다. 그리고 버드나무는 재녀(才女)라 했는데, 버드나무는 이밖에도 여자를 비유한 경우가 많다. 가느다란 것의 표현으로 세류(細柳)라 하지 않았던가. 서양에서 황금사자를 지키던 요정 헤스페리데스의 네 자매 중 한 사람인 아이글레가 버드나무로 변신했고, '버들 같은(Willowy)'이라고 하면 우아하고 날씬한 여자를 뜻하고 있어 동서양이 그 가느다란 가지에서 느끼는 이미지는 비슷하다고 하겠다.

 

여인의 버들잎 같은 눈썹, 곧 미인의 가지런한 눈썹을 유미(柳眉)라 했다. 재능이 많은 여인을 뜻하는 유지(柳枝), 예쁜 모습을 의미하는 유태(柳態), 늘어뜨린 머리의 유발(柳髮) 등도 버들 유(柳)에서 비롯된 말이다. 모두 여성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관계된 말이다. 늘어진 버들가지의 모습을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에 비유해 유요(柳腰)라 했는데, 유요는 버들가지와 같이 가는 허리를 뜻한다.

 

태조 왕건의 첫째 왕비였던 신혜왕후(神惠王后)는 버드나무처럼 호리호리한 허리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성도 버들 유씨(柳氏)이고 버드나무 옆에서 태조와 인연을 맺은 후에 임금을 갈아치운 대단한 여장부였다. 「열전」에는 왕건이 신혜왕후 유(柳)씨와 처음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태조 등극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 유씨와 버드나무의 이야기가 있다.

 

왕건이 궁예의 부하 시절에 군대를 거느리고 정주를 지나가다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유씨가 길옆의 시냇가에 서 있었다. 그날 왕건이 그녀의 집에서 유숙한 후 서로 소식이 끊어졌다. 그 후 그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됐다. 왕건이 소식을 듣고 불러다가 부인으로 삼았다. 궁예 말년에 장군들이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자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왕건이 완강히 거절하고 있었다. 이때 유씨가 왕건에게 말하기를 "대의를 내세우고 폭군을 갈아치우는 것은 예로부터 있었던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혀 줬다. 장군들은 그를 호위하고 나가 그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단다. 이와 같이 유씨는 손수 갑옷을 입혀 왕건이 대업을 이룩하는 데 있어 큰 용기를 불어 넣어준 부인으로 유명하다.

 

또한 왕건의 또 다른 왕비였던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의 버들잎 일화도 유명하다. 왕건이 전략적 요충지인 나주에 주둔할 때에 우물가에서 어느 처자에게 물 한 그릇을 요구했다. 이때 이 처자가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물을 천천히 드시라는 배려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여인이 장화왕후이고, 고려 제2대 황제인 혜종의 어머니이다.

 

노는 계집 창녀도 버드나무에 비유돼


여인을 버드나무에 비유한 말은 이밖에도 많다. 고사성어의 하나로서 노류장화(路柳墻花)는 '길가에 늘어진 버들과 담 밑에 핀 꽃'이라는 뜻이지만 이 버들가지와 꽃송이들은 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 누구나 꺾을 수 있다는 의미로서 창부(娼婦), 창기, 창녀 등을 비유한 말이다. 즉 화류계(花柳界)의 여인들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다. 더 나아가 패류잔화(敗柳殘花)라고 하면 잎이 떨어진 버드나무와 시든 꽃으로서 아름다움을 잃은 미인이나 권세를 잃은 관리를 비유하고 있다.

 

꽃과 버들을 의미하는 화류(花柳)와 화류계(花柳界)도 여인을 비유한 버들 유(柳)가 중심인 말이다. 화류계(花柳界)는 원래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유흥가의 여성을 꽃과 버드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화려한 직업의 여인, 즉 노는 계집의 사회를 의미하며 화류장(花柳場)과 같이 쓴다. 화류항(花柳巷)은 노는 계집들이 모여서 사는 거리이다.「진주 난봉가」에는 기생 첩과 노는 것을 본 부인이 한탄하며 목 매달아 죽자 남편이 후회하는 내용의 가사에 화류계라는 말이 나온다. '화류계 정은 삼년이요/ 본댁 정은 백년인데/ 내 이럴 줄 왜 몰랐든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라는 노랫말이 있다.

 

화류계라는 말은 일본에서도 쓰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원래 화류계(카류카이)의 화(꽃)는 유녀이고 유(버들)는 '예자(藝者, 게이샤-한국의 기생과 비슷한 직업의 여인사회를 말함)'를 지칭했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와 같이 화려한 직업여성 사회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 화류계의 말이 나왔기에 이와 관련한 영화 한 토막을 전한다.

 

일본의 전통 기생 '게이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로맨스 드라마가 미국에서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개봉됐다.「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다. 이 영화는 19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가난한 어부의 딸에서 전설적인 게이샤가 된 '사유리'라는 실존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1997년 발간된 아서 골든(Arthur Golden)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게이샤역을 중화권 여배우가 맡아 '중-일'간 껄끄러운 설전을 불러일으켰던 블록버스터다.

 

게이샤는 '예자(藝者)'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춤, 음악, 미술, 서예, 화술 등 예술 다방면에 능한 예능인에 가까운 개념이다. 원칙적으로 게이샤들은 돈을 받고 성적인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는 게이샤와 몸을 파는 유녀들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게이샤들은 일본 전통을 이어간 '예술가'로 재조명하지만 춤추는 기생과 다를 바 없다. 영화에서도 "게이샤는 예술인이지 몸을 팔지는 않는다."는 굳건한 대사와는 달리 남자와 처음 동침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처녀성을 경매에 올리는 대목을 꽤 비중 있게 다뤘다. 게이샤는 사무라이와 함께 '일본의 극단성과 선정성'을 단적으로 상징하지만 정제된 기예와 은밀한 성적 자극으로 빚어진 존재다.

 

아무튼 여기에서는 주제의 여인에 초점을 맞춰 버드나무를 소개했지만 버드나무는 뭐라고 해도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어릴 적 추억의 나무다. 연인들은 그 버들피리에 맞춰 사랑 표현의 노래를 했다. 버들잎을 말아서 멋들어진 가락을 불어젖히기도 했다. 게다가 여인이 먼 길 떠나는 낭군에게 버들가지를 꺾어주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기도 했다. 민간전승의 속설에는 버들가지로 아이를 때리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 동물의 경우에는 내장을 상하게 한다고 전한다. 또한 속설에 버들가지를 탐낸다는 말은 백정의 본색이 드러남을 뜻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서 얘기를 마칠까 한다. 주위에서 격식을 갖춘 커다란 식당의 간판에 ‘버드나무집’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왜 하필이면 한식 전문식당이름이 버드나무집일까 못마땅할 때가 더러 있다. 왜냐하면 옛날의 버드나무집은 오늘날의 단란주점과 같은 선술집 또는 아가씨가 있는 주막을 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식 전문식당에 술집이름을 버젓이 붙이고 있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래저래 버드나무는 여인과 관련이 많은 나무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산림청의 소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셨다면 VIEW를! 가 져가고 싶은 정보라면스크랩을! 나도 한 마디를 원하시면 댓글을!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서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