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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머리단장에 이용한 풀꽃나무

대한민국 산림청 2009. 10. 16. 16:11

옛 여인의 머리단장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것만이 아니었다. 머리를 감은 후 머릿기름을 발라 단정한 머리모양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했다. 머릿기름은 동백·아주까리·생강나무·때죽나무·쪽동백나무·비자나무·수유기름 등이 이용됐으며, 이 중 동백기름과 아주까리기름을 가장 많이 썼다.

 

유두분면(油頭粉面)이란 고사가 있다. 기름을 바른 머리와 분을 바른 얼굴의 뜻으로, 여인이 화장을 하거나 화장을 한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또한 화류계의 매춘부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한다. 어쨌건 이런 여인은 단아하면서도 요염한 모습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조선시대의 기생을 모델로 그린 신윤복과 윤두서의 '미인도'에 잘 나타나 있다. 풍속도에 나타난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의 여인은 미인의 조건들을 고루 갖추었다. 특히 머릿결이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머리카락은 샴푸를 이용한 것처럼 향기가 짙었음은 물론 광택이 있고 부드러웠다. 옛날에는 이를 위해 풀꽃나무를 이용했다.

 

창포물로 머리 감기는 미용과 벽사 기능 있어


음력 5월 5일의 단옷날 풍습을 보자. 이날의 대표적인 풍습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것이다. 창포물은 일반적으로 잎줄기를 잘라다가 솥에 넣고 삶아서 만들었다. 단옷날에는 아름다운 피부를 간직하기 위해 상추이슬로 얼굴을 씻는 풍습도 전하는데, 정성이 있는 집안에서는 창포물을 그릇에 담아 상추밭에 놓아두어 상추이슬과 혼합한 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까닭은 민속적인 측면에서 머리카락과 몸에 스며든 창포의 향기가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미용적인 측면에서는 청결하고 향기가 있는 머리카락과 몸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일은 반드시 미용효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벽사(壁邪)의 기능과 치료효과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머리카락의 미용에 주로 이용된 것이 창포물이라면 오미자로 우린 물은 상한 머리카락을 치유하는 데 썼다. 게다가 민간에서는 비자나무잎을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탈모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 물로 머리를 감기도 했다. 이렇듯 옛 여인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머릿결을 간직하기 위해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고, 머리카락이 상하면 오미자물로 머리를 감았으며, 비자나무물로 탈모를 방지했다.

 

머릿기름으로 동백, 아주까리 많이 써


옛 여인의 머리단장은 단옷날 머리를 감는 것만이 아니었다. 머리를 감은 후 머릿기름을 발라 빗어 넘겨 단정한 머리모양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 여인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머릿기름은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사용했다. 머릿기름은 동백기름, 아주까리기름, 애기동백(산다화)기름, 생강나무기름, 때죽나무기름, 쪽동백나무기름, 비자나무기름, 수유기름, 밀기름 등이 이용됐다. 이 가운데서도 머릿기름으로 가장 많이 썼던 것이 동백기름과 아주까리기름이다. 이는 바른 뒤 냄새가 약하며 머릿결을 부드럽고 윤기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아리랑에서는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 누구를 꾀자고 머리에 기름...'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민요의 가사에 나타난 것처럼 동백기름과 아주까리기름은 여인의 머리단장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붉은 꽃의 동백나무 씨에서 짜낸 동백기름은 상류층 여인들이 주로 사용했다. 최근까지도 이용됐던 머릿기름이다. 동백나무는 남쪽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생산량이 한정돼 있고 만드는 과정도 까다로워 값이 비쌌다.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은 구하기 어려운 물품이었다. 동백기름은 접착성이 강하고 윤택하며 잘 마르지 않으므로 머리를 길게 땋거나 쪽을 지을 때에 필요했다. 이렇게 하면 머릿결이 흐트러지지 않아 단정한 머리모양을 가꾸는 데 용이했다.

동백기름은 동백 열매가 벌어지는 늦가을에 씨의 껍질을 벗긴 후 기름을 짠다. 이렇게 짜낸 기름은 오래 두어도 변질되거나 굳지 않고 머리에 발라도 냄새가 은은한데다 촉촉한 머릿결을 유지시켜 주었다. 손바닥에 동백기름을 묻혀 머리에 바른 후 빗으면 차분하고 단정한 머리모양이 됐다.

 

그런데 강원도 아리랑의 가사에 나오는 동백은 따뜻한 남쪽지역에 자라는 붉은 꽃의 늘푸른 동백나무로 보기에는 지역적으로 어색한 면이 있다. 정선 아리랑의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지네'에 나오는 올동백도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와는 거리가 있다. 덧붙여서 1936년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꽃도 그렇다. 강원도에서는 붉은 꽃의 늘푸른 동백나무가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동백은 남쪽지역의 동백나무가 아니라 강원도지역에서 향토적으로 달리 부르는 동백나무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노란 꽃의 갈잎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는 씨의 기름이 많아 머릿기름으로 썼던 데서 유래해 속칭 개동백나무로 불렀던 적이 있다. 따라서 이 민요의 동백기름은 생강나무기름일 터이다. 여기에서 민요의 아주까리도 한 번쯤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만하다. 왜냐하면 쪽동백나무는 예전에 산아주까리라고 불렀던 적이 있기 때문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주제의 본질을 흩트릴 것 같아 더 이상의 설명을 피할까 한다.

 

붉은 꽃의 동백기름이 상류층의 것이라면 노란 꽃의 동백기름(생강나무기름)은 서민이 주로 이용했다. 때죽나무기름, 쪽동백나무기름도 서민이 이용했다. 또한 서민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아주까리 열매를 짜서 머릿기름으로 썼다. 이 기름은 끈끈하고 때가 묻는 것이 단점이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1900년대 초까지 유행했던 밀기름은 벌에서 나오는 밀랍과 참기름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머릿기름으로도 썼으나 만들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예전에 구충제로 각광을 받았던 비자나무기름도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수유기름은 얼핏 오수유 또는 산수유 열매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수유는 한반도에 자라지 않는 나무이며 산수유는 기름의 이용보다는 약용으로 많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유기름은 한반도에 널리 자라는 쉬나무 열매로 만든 기름으로 여겨진다. 이 기름은 사악한 악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를 위해 머리에 발랐다. 이밖에도 들깨씨, 목화씨, 살구씨, 순무씨, 유채씨, 차조기씨 기름과 호두의 푸른 껍질 등은 검고 윤택한 모발을 유지하는데 사용됐다.

 

머리감기와 머릿기름 바르기 자주 못해


옛 여인네들은 머리단장을 위한 머리감기와 머릿기름 바르기를 자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장발(長髮)인데다 수발(修髮)이 까다로워 머리감는 일이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빗물을 받아 사용해야만 했던 당시로서는 물의 소모량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감기는 대체로 주요 절기의 행사일에 맞춰 한 달에 한 번씩 행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단옷날에는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부녀자들은 그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꽂음으로써 액을 물리친다는 속신이 있고, 음력 6월 15일의 유두날에는 집의 동쪽에 있는 계곡이나 시냇가에서 머리를 감는 풍속이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도 여인들의 머리가 항상 정갈하게 보였던 것은 아침마다 머리를 빗기에 앞서 머리카락에 기름을 바른 후 빗으로 비듬과 먼지를 훑어 내렸기 때문이다.

 

한편 옛날 미인의 조건 중 눈동자, 눈썹, 머리카락이 검은 것을 삼흑(三黑)이라 했고, 손가락, 입술, 머리카락이 가는 것을 삼세(三細)라 했다. 즉 검고 가늘며 섬세한 머리카락을 가져야 미인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광택을 띠는 검은 머리카락은 관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는 풍성하고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이 여인의 젊음과 건강을 표상함과 아울러 다산의 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옛 여인도 머릿기름을 발라 머리에 윤기를 더하고 얹은머리로 풍성함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를 꾸미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 재료는 자연의 풀꽃나무에서 얻은 것이었다. 최근에는 우리 전통의 원료를 현대 화장품에 응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전미인의 회귀는 아니지만 아름다움의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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