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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화자산, 삼국시대 석축산성 "구라산성"

대한민국 산림청 2010. 8. 5. 10:18

산림문화자산, 삼국시대 석축산성 "구라산성"

 

 

 

청원군 미원면과 북일면 사이의 경계에 있는 해발 497m의 구라산(謳羅山)에 축조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조선시대의 지리지에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산성의 둘레는 2,790척이며 성 안에 두 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폐성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둘레는 950m 정도이며, 북쪽과 서쪽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걸쳐 있어 그 사이는 안부(鞍部)를 이룬다. 두 봉우리에서 동향 또는 동남향하는 능선을 따라 성벽이 회절하여 계곡 상부를 에워싸고 있으므로 전체적인 평면은 불규칙하지만 서북벽이 동남벽보다 짧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구라산고려산(高麗山)·구려산(句麗山)·궁예산(弓裔山)·구녀산(九女山) 등의 별칭이 있는데 지금은 주로 구녀산으로 불려진다. 산성의 둘레는 약 856m이며 형태는 부등변방형인데 성내에서 가장 높은 북단에서 양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남쪽 계곡을 향해 점차 낮아져 삼태기 모양을 이루었다. 기반은 2중 쌓기로 한 후에 석루(石壘)를 쌓아 올렸는데 석루는 대부분 붕괴되어 유구가 토로(土壘)처럼 남아있다. 이티재(二日)에 올라가는 능선의 서북단 남쪽부분에 석성벽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 7m, 폭 8m, 두께 6.3m의 내외협축성(內外夾築城)이었음을 보여준다.


산성의 시설로는 남쪽 수구 옆에 있는 남문지와 북쪽과 서쪽의 작은 문지가 있으며, 북쪽의 정상부에 망대가 있었던 듯하나 완전히 붕괴되었고, 성벽이 능선으로 이어지는 북·남·서 모퉁이에 곡성(曲城)이 설치되었다. 성내의 남쪽에는 옛절터에 세운 구려사(句麗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1979년 종암리로 옮겼다. 주위에서는 신라계의 토기, 기와조각이 많이 수습되고 간혹 백제계의 토기편도 발견되며 고려초의 토기·기와조각이 발견된다.

 

구라산성의 지세 및 지형적인 배려와 성문, 망대, 수구의 배치 그리고 출토유물을 통해 보거나 또는 한 아들과 아홉딸에 얽힌 축성신화(築城神話)로 미루어 볼때 신라측에서 축성하여 낭비성(娘臂城)의 백제 또는 고구려와 대결하기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소속이 자주 바뀌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후삼국시대에도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 군사가 주둔하여 낭비성의 견훤(甄萱)과 전투를 치루었고 고려시대까지도 성곽의 기능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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