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부터 겨울이 오면 지리산 바래봉(1165m)으로 꼭 가고 싶었다.
지리산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바래봉 겨울의 모습은 또 어떨까. 언제나 가려나 하던 참에 계사년 첫 휴일 첫 산행지로 바래봉으로 가게 되었다. 내려 갈 때는 버스를 타고 홀로~ 서울 오는 길은 지방일로 내려가 있는 남편이 운봉으로 와 주어서 함께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일주일 전에 내린 눈이 녹아 눈꽃이 없는 것도 알고 있지만대신 맑은 겨울 하늘 아래 지리산 주능선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 속에 이른 새벽 집을 나서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 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 : 강남센트럴터미널 ~ 남원(3시간 소요) ~ 운봉(시내버스 30분 소요) ~ 용산리 허브밸리 (도보 30분 소요)
돌아올 때: 승용차 용산리 허브밸리 ~ 서울(약 4시간 소요)
등반로 : 운봉 ~ 용산 허브밸리 ~ 바래봉삼거리 ~ 바래봉 ~ 운지사 ~ 허브밸리(왕복 10km, 소요시간 5시간)
강남 센트럴 터미널에서 7시 5분 우등고속을 타고 3시간 여 만에 도착한 남원! 지리산 덕분에 아무 연고도 없는 호남을 자주 찾게 되는 요즘이다.
남원터미널에서 내려 운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30여분 만에 운봉읍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백두대간의 지점 여원재도 지나고 운봉은 평원이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곳임을 느끼게 된다.
내리자마자 배가 고파왔다. 우선 먹고 올라야했다.
미리 검색 하고 온 운봉읍 사거리에 위치한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용산리 바래봉 등반로 입구까지 걷기로 했다. 계획은 택시로 이동하려 했는데식당주인께서 걸어서도 30여 분이면갈 수 있으니 걸어가라고 권해주신다. 날씨마저 포근했고 등반시간도 적당해 오늘은 많이 여유 있는 하루가 되었다.
조용한 시골길, 영상의 기온 속에아무도 걷지 않은 듯 인적 드문 길을 따라 용산리로 향한다.
남쪽 아래 삼남지방에서 눈꽃축제가 있다는 건 대단히 고무적이다.
평소 조용히 겨울을 보내던 운봉읍이 요즘은 눈꽃축제로 인해 생기가 넘쳐나 보인다. 바래봉 등반로 입구 옆에는 눈꽃축제장이 있고 눈썰매 타는 소리로 왁자지껄해 있었다.
눈꽃축제는 2013년 2월11일 까지
축제장은 그저 곁눈으로 돌아보곤 곧장목적지 바래봉으로 향했다.
일주일전 지리산일대는 폭설로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고 눈꽃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 금새 녹아 없어진다. 일주일동안 눈 소식이 없었고 이어지는 맑은 날씨로 눈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왔기에 아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겨울산을 오르면서 어떻게 매번 눈꽃만을 볼 수 있겠나... 스스로 위안하며 조용한 등반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웃님 포스팅으로 눈꽃이 장관이었던 길인데~
등반로는허브밸리~바래봉~운지사~허브밸리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면 산행시간만 4시간이면 충분하고, 바래봉까지 5km의 평탄한 길에 비교적 가벼운 산행길이 되었다.
어느 정도 올라오니 눈 속에 잠긴 운봉읍이 눈에 들어온다.
바래봉이 있는 남원시 운봉읍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가 아닌 해발 500m의 고원분지이다.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눈이 내리면 좀처럼 녹지 않는 하얀 겨울 속의 운봉을 내내 볼 수 있고, 1월 적설량이 50~100cm라고 하니 강원도 못지않은 적설량을 보이는 곳이 또 운봉이다.
오늘은 참 맑은 날씨다! 그래서인지 눈이 녹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 되고 있었다.
눈꽃이, 상고대가 피어났으면 어쩜 이런 날씨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눈 꽃 대신 너무나 고운 하늘로 기분이 좋아지며 더구나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로좋은 선물을 받은 오늘이다.
살짝 더위를 느끼며 삼거리까지 올라왔다.
지난 봄 팔랑치에서 이어지는 환상적인 철쭉 길을 걸으며 혼을 빼앗겨버렸던 곳!
돌아오는 봄날에 다시 올게~ 팔랑치
스님의 바리를 엎어 놓은 듯해서 붙여진 봉우리 바래봉이 하얗게 이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바래봉 정상이 머지않았다.
파란 하늘 아래 바래봉 가는 길은 눈이 부실정도로 곱게 빛나고 있었다.
바래봉 산릉은 둥그스름하고 주위에는 나무가 없는 초지이다.
천혜의요지로 숱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전화를 입지 않았으며, 또한 바래봉은 발길이 닿지 않았던 길지(吉址)로 정감록에서 10승지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정감록에선 그 만큼 오래 몸을 보존 할 수 있었던 곳임을 말해준다.
서북능선이 한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만복대와 고리봉도 보이고 지난봄에도 저 길을 걸었었지... 내가 걸어온 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게 얼마나가슴이 벅찬지... 한참을 바라봤다. 고리봉에서 시작되는 붉은 철쭉의 꿈결 같은 길은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을 거다.
오르는 내내 바람 한 점 없었던 포근한 날씨가 바래봉에 오르니세찬 바람은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기세다!!
천왕봉도 보이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볼 건 다 보고 짚어보고 가야했다. 좀처럼 맑은 날을 볼 수 없는 지리산인데... 오늘 눈꽃이 상고대가 피어났으면 어쩌면 파란 하늘 아래 지리산 주능선을 만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흐린 날씨나 아마도 혹독한 추위 속에 올라야 했을테다.
세상사 일이 만족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는 법이다. 산도 그랬다.
서로 사진을 담아줬던 분들은 지리산이 이렇게 멋진 산 인줄 몰랐다며... 내내 감탄을 하였다. 확연히 드러난 지리봉우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신기해하고 있다.
이제 내려가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바래봉을 올려다보고~
눈꽃이 없어도 상고대가 없어도...겨울의 바래봉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기쁨이 되었다.
아무리 가뭄이어도 꽁꽁 얼어버리는 혹한에도 마르지 않고 얼지 않는다는 바래봉 샘터
샘터 주변은 바람도 불지 않고 쉬어가기 좋았다.
바래봉을 내려서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잠잠해 지는 게...포근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홀로 망중한을 잠시 즐겼다. 아마도 이 자리는 비박장소로 많이 이용하는지 군데군데 머물다 간 흔적도 보였다. 아마도 얼마 전 이웃님께서 이쯤에서 지냈을 것 같다.
그냥 내려가기 아쉬워서 삼거리에서 팔랑치 방면으로 잠시 가보기로 했다
봄이면 철쭉으로 명성이 자자한 바래봉 일대는 이젠 철쭉대신 새하얀 눈꽃을 입었다 벗었다를 끊임없이 반복하겠지~
안녕 바래봉!!!!!
다시 돌아와 이젠 하산 길로 접어든다. 오를 때 보다 하늘은 더 맑아져 있었다.
하산 길에 덕유능선도 바라보고~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나무 가지에 눈꽃이 앉아있지 않을 뿐 지리산은 하얀 겨울이다.
갈림길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운지사를 들려봤다.
조그만 본당이 한켠에 있고 절이라기보다는 깊은 시골의 집처럼 꼭 닫혀있는 문이며 발자국 없는 눈길의 운지사 길목도 깊은 고요함 속에 묻혀 있었다.
지리산 자락 겨울도 이렇게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멀리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하산 중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었다. 30여분 전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방일로 부산을 들렸다가 나의 하산시간에 맞춰 와줘서 편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눈꽃축제가 한창인 허브밸리~
따뜻한 인정과 청정의 자연에 매료된 지리산의 겨울.
봉긋하게 솟은 바래봉 자락을 걸었고, 눈꽃대신 포근한 날씨와 파란하늘아래 지리산을 볼수 있었던 오늘. 그저 그것만으로도 큰 감사를 느끼며 서울로 갈 채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