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와 타의로 시작한 근대화 과정과 갑작스런 도시화속에 양산된 많은 산업시설이 도시기능의 변화에 의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 시설물 중 하나가 선유도 공원으로 환골탈태한 정수장이다. | |
신선이 놀다갔다고 해서 지어진 선유도(仙遊島), 선유도는 물이 잔잔하여 강 위에 배를 띄우고 경치를 즐기기에 좋아서 많은 풍류객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풍치를 즐겼고, 중국의 사신들까지 이곳에서 그 풍경에 감탄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점차 사라져간 선유봉은 그곳에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짐작할 수조차 없게 훼손되었다. 그 이후로 선유도를 둘러싼 한강은 수질 오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고민했다. 어찌하면 선유도를 살릴 수 있을지. 독일의 엠셔파크나 유라릴, 아틀란티크 정원처럼 기존시설을 재생한 잘 알려진 사례들처럼, 더 가까이로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화한 월드컵공원처럼 지역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지를...
그래서 2002년 탄생했다. 옛 정수장의 시설물들을 재활용하고 여러 수생식물들과 초목을 조성하여 휴식과 녹색교육의 장소로, 그리고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더 이상 파괴가 아닌 조화와 상생으로 대한민국 녹지공간 조경에 커다란 획 중의 일부가 되버린 선유도로 가보자.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1번 출구로 나와 선유도 쪽으로 그냥 걷다보니 표지판이 나왔다. 역시 공공디자인은 이래서 중요한가보다.
선유교를 들어가는 입구. 프랑스 2000년 위원회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만든 다리를 건너는 것도 유연한 디자인만큼 나와 선유도의 마음을 자연스레 연결해준다.
전망데크를 지나서 선유도 공원 입구로 들어가 보자. 안내판과 지도가 있고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구에서 왼쪽 길로 들어갔다. 가다보니 스트로브 잣나무를 지나서 나루라는 카페가 보였다. 나는 이미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은 상태라 들리지는 않았으나 춥고 쌀쌀한 날씨엔 은신처 같은 느낌이 날 듯하다.
서서히 한걸음 들였다. 어린 대나무들 사이로 난 다리를 건너려니 마음속에서 탄성이 나왔다. 어두칙칙한 색들 속의 대나무의 초록은 선유도의 호기심을 불러낸다. 시간의 정원은 보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다. 수로를 재활용한 상부를 지날 때는 나무를 건너다니는 느낌으로 키 큰 나무를 가까이서 관찰이 가능하다. 나무들을 배려해 바닥의 일부의 공간을 내어주기도 했다. 계단을 따라 정원의 내부로 내려가면 그늘지고 습한 곳, 양지바른 곳 등 구조물의 형태를 이용하여 다양한 생육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볼 수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백리향, 은방울, 왜개연꽃, 노루오줌, 노랑꽃창포, 고사리 등... 많은 초본류의 정겨운 식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곳은 개장 준비 중이다. 하지만 갈변하지 않은 식물을 볼 수 있다. 수호초다. 그리고 그 옆엔 서어나무들이 교대를 서며 선유도를 지키듯 서 있었다. 그러던 중 바위에 올라앉은 것들을 발견했다. 너무 반갑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나도 이 풀들의 기운을 받아야겠다!
수생식물원으로 방향을 틀던 중 방금 본 것과는 대조적인 것들의 느낌이 있다. 붉고 어둡고 침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 물론 겨울이라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이런 기괴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특히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기존의 시설물들에 담쟁이 같은 식물들이 알아서 상생하는 그 모습조차도.
수생식물원은 정말 다 얼었다. 디자인 서울 갤러리도 공사 중이다.
그래서 바로 녹색기둥의 정원으로 갔다. 지금은 갈색기둥의 정원이지만. 하하하-
그곳에는 남자 어른 두 분이 바둑을 두고 계셨다. 평소에 자주 오시냐고 여쭤보니 그냥 심심할 때 오는 곳이라 하신다. 음식을 싸와서 먹거나 음료를 가져와서 먹을 실내공간이 없어 이렇게 본인들은 밖에서 노신다고 하신다. 사진 한 장 부탁드리니 쿨하게 자세를 잡아주셨다 (큭큭). 선유도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있는 곳인 것 같다.
선유정이 있길래 흙탕물을 첨벙거리며 갔다. 선인들의 풍류를 내가 느끼고 있노나니!
스크린 뷰가 따로 없구나. 이곳이 바로 리버 뷰고 이곳이 영화관이겠다.
수질정화원방향으로는 환경 물놀이터가 있다. 물론 물대신 여기도 얼음과 눈 뿐이다. 그래도 가는길에 정갈하게 심어진 돌들이 정렬된 모습에 사진에 담아봤다. 나는 패턴처럼 이렇게 연속적인 것들에 눈이 간다. 선유도는 자꾸 이런 콘크리트 느낌이 나는 정수장시절의 분위기를 계속해서 나타나게 한다. 그렇지만 이내 나무들과 식물들의 끝없는 조화로 새로운 순환을 만든다.
수질정화원은 물론 온실도 외부가 얼어있나 보다.
양화대교입구에서 들어왔다면 처음으로 봤을 선유도 안내센터. 선유도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과 계획의도, 수상실적도 확인가능! 세계조경가협회상, 미국조경가협회상, 건축가협회상등 한국 조경계의 큰 센세이션이 맞구나 맞아.
이곳엔 식수와 화장실도 준비되어 있고, 자녀들과 함께 오게 만드는 모유 수유실도 준비되어 있다.
다른 곳으로 이동 중 나타난 새.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그 옆에 화장실과 같은 건물의 환경교실이 있다. 이건 무슨 경우일까? 환경교실이 너무 궁금해서 가봤더니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때마침 나오시던 자원봉사자분께 여쭤봤다. 물과 흙 이야기, 미생물이나 나뭇잎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나뭇잎을 이용한 만들기 놀이, 철새관찰 등 선유도의 자연을 어린이들에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들고 있다. 정말 좋은 건 모두 자원봉사가들에 의한 것들이다. 다들 무료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쉬는 날까지 나와서 이렇게 시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나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느꼈다.
환경교실 바로 앞에는 환경놀이터가 있다. 농축조와 조정조를 재활용한 휴식과 놀이의 문화공간으로 환경놀이터, 환경교실, 원형극장, 화장실로 재활용 된 곳이다. 그래서 아까 본 환경교실과 화장실이 같은 모양을 했나보다. 참 세심하기도 하고 멋지기까지 하다.
역으로 가려는데 앉아있는 토끼. 이 녀석 지조 좀 있구나. 사람이 와도 꿈쩍을 않는다.
추억을 남기고 가는 자들의 흔적. 선유도공원은 무슨 까닭으로 이리 인기가 많을까? 부지가 갖고있던 역사적 맥락을 설계를 통하여 잘 살려냄으로써 공원설계의 한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던 공원 탓인가? 무언가 잘 습합 되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도대체 어디가 과거이고 어디가 현재인지 모를 이 잘 다듬어진 공원은 회화적으로 배치된 수목들과 한강의 전경이 시민뿐 아니라 연인들의 사랑에 더 윤활제 역할을 했나보다. 웨딩촬영을 하려 온 커플이 그래서 더 보기 좋았다.
그렇게 울창하거나 우거진 숲은 아니다. 인간에게 낯선 나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울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가 있는 섬을 생각해 보라. 섬은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일상성에서 단절된 공간으로 색다른 느낌을 주고, 그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두고 온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그 떨어져 있음은 또한 모든 것을 잊고 자기 자신을 향해 침잠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자아를 비눗방울처럼 소멸시켜도 된다. 도심의 번잡함을 잊고 그곳에서 멀리 외떨어진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콘크리트에서 발견하는 신록의 조화는 이중적 느낌의 해석을 내게 맡기는 듯하다.
시간이 있다면 지금 나서라. 정수장에서 재활용된 공원으로서의 의미는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모티브를 얻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