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블로그 주부 기자단 김민주
가평 8경 중 7경으로 꼽히는 축령백림(柏林). 축령산 동쪽 사면 행현리 150 헥타르에 달하는 잣나무 숲을 일컫는 이름이다. 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축령산은 우리나라에서 잣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군락지다.
축령산(886미터)은 광주산맥이 가평군에 이르러 명지산과 운악산을 솟구치며 내려오다 한강을 앞에 두고 형성된 산으로 일명 비룡산으로 통한다. 조선왕국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에 사냥을 왔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데 몰이꾼의 말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여 산 정상에 올라 제를 지낸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부터 고사를 올린 산이라 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축령산 초입의 백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인 백련사는 멀리 용문산과 명지산, 가까이 대금산과 운악산, 천마산, 축령산, 서리산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그 모습이 흰 연꽃에 파묻힌 형상이라 하여 백련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백련사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기막골과 아침고요수목원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반대편 절고개를 향해 가면 축령산이다. 아침고요수목원 들머리인 임초리에서 상면 행현리 쪽으로 올라올 수도 있다. 축령산 북쪽 사면 잣을 운반하기 위한 임도를 따라 트래킹 하면 된다.
잣향기 푸른교실과 잣나무 숲 치유센터
잣나무 숲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잣향기 푸른 교실이 있다. 명상을 할 수 있는 휴게시설로 건강증진코너, 치유의 숲길, 약초원 등이 있다. 전문가가 진행하는 숲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축령백림은 해방 전후 잣나무 묘목을 심어 조성한 채종림(採種林. 우량한 조림용 종자의 생산 공급을 목적으로 조성 또는 지정된 산림)이라고 한다. 이 나무들이 자라 행현리 마을 사람들의 주요 소득원인 잣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가평 잣이 전국 생산량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산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방 댐은 폭 30m, 높이 4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규모의 댐으로서 산림 내 계곡이나 하천을 막아 집중 호우 시 산사태로 밀려 내려오는 토석과 유목을 막아내고 물의 속도를 줄여 재해를 예방하고 하류의 마을과 농경지, 하천 도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방재시설이다. 이번 장마에 강원도 지방에서 많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지난 가을, 산에서 내려다 본 사방댐의 풍경이다. 축령산은 필자가 사계절을 모두 본 유일한 산이다. 그만큼 축령백림의 풍경은 잊을 수 없다. 가을이면 짙은 잣 냄새가 온 산을 진동한다. 굴러 떨어진 잣 방울 하나만 대충 털어 집에 심어놓아도 실제로 잣나무가 자란다. 지난 가을 주워온 잣 방울이 말라있는 것을 부셔 흙속에 심어놓았더니 어느 샌가 싹이 돋았다.
숲으로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30~50년생 잣나무들이 터널을 이룬다. 잣나무가 빼곡히 숲을 메운 웅장한 풍경이 그림 같다. 일제 시대에 처음 식재되기 시작했고, 박정희 정부시절에 집중적으로 식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숲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저절로 가라앉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은 빽빽하고 길은 정겹게 고불고불하고 그윽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느긋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축령백림은 축령산 중에서도 가장 울울창창한 숲이다. 남양주 쪽의 자연휴양림은 익숙하나 가평 쪽의 축령 백림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성찰의 숲' 또는 '사색의 숲'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나무과의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 냄새 (피톤치드)가 코를 찌른다. 우람한 나무에 반하고, 그 냄새에 반한다. 함께 왔던 이는 이곳을 다녀간 후 명현반응을 경험했다고 한다.
나무 데크가 깔린 오솔길에는 낙엽이 쌓여있어 발끝으로 폭신폭신 부드러움이 전해진다. 이 숲 한가운데서 돗자리를 펴고 오수를 즐기면 피톤치드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 온몸과 뇌, 마음이 모두 청명한 하늘처럼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축령산을 갈 때에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이 바로 삼림욕을 위한 돗자리와 여벌의 옷이다. 한 여름이 아니라면 삼림욕을 할 때 바람막이가 필요할 정도로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축령산의 출렁다리가 데크 근처에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고불고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축령백림은 12킬로미터나 된다. 오르락내리락 나지막한 산길에는 조용한 새소리뿐이다. 가끔 딱따구리들이 나무를 판다. 이 길 끝에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물이 있어야만 성취는 아니다. 그저 그 길을 가는 과정이 의미일 뿐이다. 그러면 모든 인생이 똑같이 균형을 잡을 것이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어느새 원점 회귀코스의 출발점인 백련사로 다시 돌아 나오게 된다.
체로키 인디언의 이야기 중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는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이다.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과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이것을 영혼의 마음이라 부른다.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이 커지면 욕심이 커지고 대신 영혼을 위한 마음이 작아진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죽는다. 다른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은 남아있다. 평생 욕심을 부리며 산 사람은 죽은 후 밤톨만한 영혼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것을 가져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숲에서 얻을 수 있는 무형의 행복감과 충만함을 많이 얻어올 수 있는 이 길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싱싱하게 익어가는 논이 싱그럽게 펼쳐진다. 잣나무 숲에서 맡았던 송진 냄새, 잣 냄새를 기억하며 걷다 보면 다시 도심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조차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