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4년(5기)

겨울에 나를 찾아 떠난 오대산 선재길

대한민국 산림청 2014. 2. 14. 11:30

 

겨울에 나를 찾아 떠난

오대산 선재길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김화일 

 

 

 


산에 가면 푸르름이 있어 그저 좋았다.
산에 가면 향기로움이 있어 마냥 좋았다.

잎사귀들은 바람 앞에 배를 뒤집어 나를 반겼고
뜨거운 햇살로부터는 나를 알뜰히 가려주었다.

 

봄산은, 여름산은, 나를 그렇게 안아 주었고,
나는 그렇게 산에 길들여져 갔다.

하지만 겨울산은 조금 다르다.


겨울산은 퇴색해가는 나를 찾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작은 인연에도 자유롭지 못하고, 아집에 족쇄를 채운 채
세월만 낚고 있는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
습관처럼 길들여지고 고황처럼 눌러붙은
내 집착의 부끄러움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시간에 떠밀려 하루를 살고, 세상 사람들에 떠밀려 이방인이 되어가는
도시를 온전히 탈피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산이다. 그곳이 겨울산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내 발길이 닿은 곳은 강원도 오대산 자락의 선재길이다.

 

 

 

 

우리나라 문수도량(文殊道場)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오대산(五臺山,1,563m).
오대산은 한라, 지리에 이어 우리나라 3대 수림(樹林)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그 곳엔 숲의 정기를 한껏 살려내고 사람의 이야기들을 묶어서 길을 만들어
급기야 천년 사찰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게 된 오래된 숲길이 있다.

 

 

 

 

진부령에서부터 상왕봉 비로봉을 휘둘러 내려온 풍부한 수량(水量)과
어머니의 포근한 젖무덤 같은 산세가 빚어낸 오대(五臺)의 현란한 지맥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놓으면서 세월로 깎고 발품으로 다져 만든,
오대천을 보듬고 어루만지면서 빚어놓은 예쁜 옛길.

한 때에는 "오대산 천년의 길" 혹은 그냥 "옛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길. 그곳이 바로 선재길이다.

 

 

 

산은 원래 벅찬 숨소리와 헐떡이는 땀방울을 버무려 당연히 "오르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월정사 주차장에 베이스 캠프를 두고
굳이 진부발 상원사행 버스를 기다린다.

산은 마땅히 올라야 하는 곳이 아닌,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내려가야 하는 곳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월정사에서 상원사 입구로 오르는 버스에 몸을 싣고
울퉁불퉁 도로의 굴곡을 온몸으로 느끼며 숲길을 달리기를 20여분.
상원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선재길의 시작점을 찾아냈다.

선재길은 상원사에서 월정사를 잇는 8.6km의 옛길이다.


지금의 차도(車道)가 생기기 훨씬 이전인 1,400년도 더 된 오랜 옛날부터
두 사찰을 오갔던 불자들이, 승려들이, 나그네들이, 나뭇꾼들이
오로지 애환과 불심 그리고 발품으로 빚어 만든 세월의 길이다.

 

 

 

월정사에서 월정사 주차장까지의 1.3km를 더하면
오늘 내 가녀린 두 다리가 감내해야 할 거리는 장장(?) 9.6km.
다분히 작위적이고 의도적으로 마주하는 내리막길이다.

 

 

 

신춘(新春)의 숲은 아기의 손처럼 애처롭고 가냘파서 아름답다.
성하(盛夏)의 숲은 깨알같이 배를 뒤집는 흔들림이 있어 찬란하다.
만추(晩秋)의 숲은 꽃보다 고운 붉음이 흥청거려 가슴 벅차다.
이 겨울의 숲은 사람보다 쉽게 내려놓는 그들이 있어 오히려 눈물겹다.

 

 

 

이제, 그 눈물겨운 겨울의 숲길을 간다.
이처럼 가혹한 엄동의 시절에 그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벗고
가장 담백하고 처연한 나안(裸顔)의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데
나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온 몸 구석구석 빈틈없이 살을 가리고
두 눈만 겨우 드러낸 채 그들에게 다가간다.

 

혹자는 말한다.
겨울 숲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긴 그렇다.
지난 여름 그토록 낭자했던 푸르름도,
지난 가을 그토록 터질 것 같았던 여묾도,
겨울 숲에는 자취를 감췄다.

힘들게 위를 볼 때만 그렇다.

가장 손쉽게 아래를 바라보면
내 발밑에 고스란히 누워있는 푸르름도
땅 밑으로 내밀해져가는 다음 봄의 생명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을.

그리고
오히려 더 선연해진 개울물 소리.
내 속에서 영그는 세월의 소리는 그렇게 겨울 숲에만 있다.

 

 

 

선재길은 이름 그대로 선재동자의 길이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구도(求道)의 길을 찾아
쉬임없이 남쪽으로 가는 인도 복성(福城) 장자(長子)의 아들이다.

상원사가 문수동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면
그 옆길은 앎과 진실을 찾아가는 선재동자의 이미지를 추구했나보다.

그렇다면 이 길의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될 터.
선재동자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고 이윽고 당도한 곳이 바로 그 곳이기에.

 

 

 

 

나무들의 보물 창고라는 오대산의 이름에 걸맞게
온통 나무들이 손을 내밀고 품을 벌려 나그네의 길을 만든다.
이미 그들은 수려했던 제각각의 잎들을 아낌없이 아래로 내려놓고
혹한의 시절 앞에서 묵묵히 몸으로 체념을 말하고 있다.

 

느릅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음나무, 다릅나무,
쪽동백나무, 피나무, 귀롱나무, 신갈나무, 까치박달나무,
노린재나무, 산벚나무, 졸참나무들이 빈틈없이 하늘을 받치고
행여 땅이라도 얼세라 산죽들이 양탄자처럼 지면을 덮고 있다.

 

 

 

 

 

한 때 태백산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규명되기 전까지는
한강(漢江)의 첫시원(始源)으로 당당히 대접 받았던
오대산 우통수(于筒水)가 힘을 보태 만든 오대천의 상류도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기약하며 침묵의 겨울 덮개를 덮고 지금은 목하 동면 중이다.

 

겨울 산에서는 나무들조차 개울물조차 제대로 스승이 된다.
한없이 밑으로, 마냥 아래로.
그저 내려놓으라고, 그러면 많이 쉽고 많이 편해진다는 가르침을 주는.

 

 

 

국가의 흥망과 함께 현해탄을 건너온 애환의 나무들도 선재길엔 지천이다.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지탱하며 기세등등한 일본 잎갈나무,
옛날 유행가 가사 속에서 이름을 알린 낙엽송(落葉松)이 그들의 별명이다.
이름처럼 모든 살을 낙엽으로 내려놓고 뼈대만 남겼다.

 

 

 

선재길에는 의외로 귀한 거제수(巨濟樹) 나무도 많다.
노란 자작나무라는 의미의 황화수(黃樺樹)라는 별칭도 있고,
질병(재앙)을 없애주는 수액을 지녔다하여 거재수(去災水)나무라고도 했던.
고로쇠 수액은 3월에 채취하는데 반해,
거제수 나무의 수액은 4~5월에 채취하는데
그 약효가 고로쇠 수액보다도 훨씬 좋다고.
그리고 저 날렵한 나무껍질에 사랑을 써서 약속하면
사랑도 쉽게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사랑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산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여기 오대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박달나무,
일제 강점기 시절 오대산 박달나무가 특히 견고하다 하여
일본 군대의 소총 개머리판 용도로 무차별 벌목하여 수탈해 참혹한 피해를 입은 탓
이다.

 

그렇게 많았던 박달나무와 금강송을 베어낸 자리에 대체 목재로 식재했던 나무가
지금 이 산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일본 잎갈나무이다.
일본 잎갈나무는 목재가 연약하지만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그 무렵, 이곳에서 무차별 수탈한 박달나무, 금강송, 소나무의 원목 들을
인근에서 현지 가공해 삼척항으로 수송했는데,
당시 일제가 마을 아래까지 임시로 가설했던 협궤 철로의 흔적들이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개울 주변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단언컨대, 지난 세기의 40여 년간 일본 수탈의 역사는
그 시절에 끝난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육해공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선재동자의 구법(求法)처럼 용서는 할 수 있어도 잊어서는 안될 현장들이다.

 

 

 

 

당시엔 벌목공들이, 그 시절 이후론 화전민들이 거주했던 마을 터.
아마도 이 같은 겨울에는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이 오대산의 수많은 삼림(森林)이 또한 재로 변했을 터.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행했던 구법(求法)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는데,
이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하고 고운 길이다.
여름에 걸어도 땀을 훔쳐낼 일이 전혀 없을 듯한 온통 초록 우산으로 가득한 길.

장롱 다리보다도 더 짧은 겨울 해는 나그네가 원망할 틈도 주지않고
일찌기 산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데
땀은 커녕 한기가 스멀스멀 겨드랑이를 파고들고 있다.
내리막길도 힘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

 

 

 

요즘 독특한 다향(茶香)으로 인해 차(茶)의 소재로 인기를 더하고 있는 산죽(山竹).
반그늘을 먹고사는 습생상 오대산 자락에서 땅과 하늘의 역할 분담이 절묘하다.

 

 

 

 

 

선재길이 자랑하는 오대산장,
하지만 겨울의 오대산장은 하염없이 휴업중이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이, 따끈한 한 잔의 커피가 그리웠는데.
나그네는 다시 신발끈을 조인다.

내리막길인데도 불구하고...
에고! 힘들어~!

 

 

 

선재길은 월정사-상원사를 연결하는 차도와 오대천을 끊임없이 지척에 두고 간다.
간혹 오대천을 가로지르거나 차도를 가로지르는 여정도 있다.
멀찌기 밀쳐두고 서로 보이지는 않아도 평행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그 어느 곳이건 항상 가시권에 두 길을 가까이 두고 가기에
여느 길처럼 산속에서 고즈넉하게 소외당하는 그런 경우는 없다.

 

 

 

 

걷다가 지루하거나 지치면 이렇듯 섶다리를 건너거나
돌다리,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로 차도를 만난다.
수시로 오가는 차량을 상대로 하이재킹을 하거나 정기 버스를 타도 되기에
항시 중도에 기권 가능한 길이기도 하다. 물론 그럴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오대천에서 유일한 섶다리.
큰 물이 나면 당연히 떠내려가는 다리이기에 이별다리라는 구슬픈 이름도 붙었다.

 

 

 

일본 잎갈나무 숲길은 끊임없이 아래로 이어진다.
미처 다 떨구지 못한 잎들이 때 늦은 낙엽으로 나부끼기도 하고.

 

 

 

월정사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울력을 모아 경작했던 채마밭,
여기도 풍성할 때 만든 모든 살들을 비워주고 동면 중이다.
사찰에도 인력이 부족했던지 땅을 놀려 두었던 일부 공간에는
화석처럼 말라버린 여뀌들이 목을 세워 숲을 이루고 서있다.

 

 

 

선재...
범어로는 수다나<Sudana>), 선시(善施) 혹은 선여(善與)로 한역(漢譯)된다.
동자가 태어날 때 진귀한 보배가 많이 솟아나서 선재(善財)라 했는데,
앎(진리)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기에 남순동자(南巡童子)라고도 부른다.
도(道)를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난 선재동자는,
온갖 고초를 체험하며 바다에 이르러 12년을 바다를 바라본 결과
멀리, 널리 보는 안목인 보안법문(普眼法門)을 터득하고,
모래 벌판에서는 모래알보다도 더 치열한 셈(수리-數理)에 대한 진리를,
뱃사공을 만나서는 이웃을 이롭게하는 이타심(利他心)을 배운다.

 

 

 

그리고 기생(妓女)를 만나서는
욕망의 불덩이를 삭이고 욕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길고 긴 구도의 길에서 만난 53명으로부터 선지식(善知識)을 습득한다.

 

이윽고,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서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나아가 마야 부인을, 미륵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비로소 그가 갈망했던 선지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선지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선지식(善知識)은 범어로는 칼야나 미트라(Kalyana Mitra)이다.
좋다, 착하다라는 의미의 칼야나와 친구라는 뜻의 미트라의 합친 말이다.

결국 선재 동자가 절실하게 찾아 헤맸던 구도의 길,
그 끝에 있던 이는 바로, "좋은 친구"였던 것.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을 일러,
「선지식이란 "앎"으로 가는 "문(門)"이고 "수레"이며,
"배"이고, "횃불"이며 또한 "길"이다.」라고 했다.

 

 오대산 선재길을 걸으며
내가 산을 찾는 이유 한가지를 더할 수 있었다.
산을 오로지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비로소 알게된 그 이유.
내려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결국은 비로소 그것들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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