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꽃보다 "경주, 남산"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김남우
두 번째 경주다. 짧은 2박 3일의 여행이지만, 떠나기 전날까지 무엇을 할지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바쁜 일상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을 하든 그저 좋을 경주에 대한 무한 신뢰감이기도 했다. 6년 전 처음 경주에 왔을 때 유명하다는 곳은 죄다 둘러보았던 터라, 그저 이번 여행은 타박타박 걷고 쉬며 경주를 천천히 느껴보고 싶었다. 떠나기 1주일 전쯤 경주 관광청에서 신청한 관광 지도를, 떠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살펴보는 느긋한 여자 둘.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이 한 줄의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가 경주까지 가서 산행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그렇게 등산화조차 챙겨가지 않은 채로 우리의 마음은 이미 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남산 서쪽 자락에 있는 <삼릉>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더 조용하고 한적해서 신비롭기까지 하던 산의 입구. 우리와 함께 버스에서 내린 사진 속 젊은 부부는 외국인이었는데, 한국인인 나도 처음 와본 이곳에 지도 한 장만을 의지한 채로 주변을 살피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맞은편 <남산안내소>에서 지도를 건네받고 코스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곳 남산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삼릉에서 용장리까지 대략 6.3km 총 6시간이 소요되는, 삼릉의 웅장한 소나무 숲을 지나 계곡과 능선을 따라 금오봉 정상을 거쳐 용장 계곡으로 내려오는 <서남산 삼릉골 코스>를 선택했다. 이 길 위에서 20개가 넘는 삼국시대에서 고려 초기의 신라 불상을 만나볼 수 있다. 남산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694점의 문화유산이 남아있고, 이 중 국보 1점을 비롯하여 48점이 우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시작과 끝은 모두 남산에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산 전체가 자연 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전례라고 한다. 게다가 남산은 국립공원 중 가장 작은 산이다.
반나절이 걸리는 산행에 도시락은 필수. 생활의 달인에도 소개된 경주 <교리 김밥>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우리 민족에게 남산, 그리고 소나무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묘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우뚝 솟은 소나무의 생명력이 액운을 물리치리라는 믿음이었다. 삼릉 소나무 숲은 외래종에서 느낄 수 없는 토종 소나무의 구불구불한 자태가 커다란 왕릉을 호위하고 있는데, 옛날 신라인들이 궁궐과 집을 짓고 땔감을 위해 곧은 소나무를 모두 사용한 터라, 굽은 소나무만 남았다는 설도 전해진다. 또한, 이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 숲이 더더욱 유명해진 이유가 있는데, 바로 배병우 작가의 삼릉 소나무 사진 때문이다. 그가 찍은 사진이 2005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가수 엘튼 존에게 팔린 후, 안개 낀 이른 새벽 이곳 삼릉에는 그 장관을 담으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소나무 숲에 서 있으니, 그 기상을 고스란히 전달받는 기분이 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이 이따금 나타나, 산림청과 경주시에서는 이 소중한 우리의 자연유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소나무 숲의 감흥을 뒤로 하고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탐방로를 지나자마자 첫 번째 불상과 마주쳤다.
특별한 화살표도 없다.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 초행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말로 난데없이 나타났다. 석탑을 발견한,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금 떠올려도 생생히 벅차오른다. 사실 경주 남산에 오르기로 선택하고,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다. 이 용장 석탑 하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웅장함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벅차올랐다. 석탑의 높이는 4.5m에 불과하지만, 해발 380m의 산을 기단으로 하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석탑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고, 석탑이 딛고 서 있는 그 아래 용장 사지에서 7년을 머물며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지었다.
용장 계곡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지난번 경주 여행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역사의 진짜 경주를 체험한 그런 산행이었다. 천 년 고도 신라의 유물과 유적 앞에서, 우리의 자연 유산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가꿔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또 새로운 천 년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 길 위에서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었다. 돌에 그 마음을 새기며, 길을 걸었을 누군가의 염원이 내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서, 내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남산은 우리에게 천 년의 시간 여행을 선물했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틀간의 짧은 여행 중 꼬박 하루를 내어 쓴 땀의 시간은 그토록 값졌다.
정일근,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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