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은 산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특히 고추가 유명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일교차가 심해 색깔이 곱고 매운맛이 적당하며 당도가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지금 아주 맛있게 익어 곧 수확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도 김장에 사용할 햇 고춧가루 구입을 해야해서 맛있길 기대해봅니다
또 국내 3대 민간 연못 중 하나인 서석지가 있으며 가을이면 400년 된 은행나무의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고요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과 지훈문학관이 있는 아담한 주실마을이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을 둘러보며 저와 함께 예전 산촌생활모습 구경하고 가실게요~
먼저 야외에 전시된 [전통생활체험장]을 지납니다
[쟁기질]
예전엔 소가 노동의 큰 몫을 하였고 쟁기를 얹어 하는 쟁기질에는
▶인걸이-소가 없거나 경사가 심한 곳, 깊이 갈 필요가 없는 곳 등에는 사람 한두 명이 접 끌었으며, 소가 귀한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다
▶호 리-경사가 심하지 않고 돌과 자갈이 적은 곳, 깊이 갈 필요가 없는 곳에서 소 한마리로 쟁기를 매어 갈았다 중부 이남의 평야지역에서 볼 수 있다
▶겨 리-경사가 심하지 않고 돌과 자갈이 비교적 많은 곳, 깊이 갈 필요가 있는 곳에서 두 마리로 쟁기를 갈았으며 토양이 거친 중부 이북의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다
[서낭당 체험]
서낭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신을 모시는 곳으로 매년 정월 보름 전후하여 일 년에 한 차례 이곳에서 당고사를 올리며 집안의 길흉사가 발생하여 특별히 기원할 일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찾아와 고사를 올립니다
[투방집 체험]
통나무를 사각형으로 쌓아서 짧은 시간에 만든 집으로 '통나무집' 또는 '귀틀집'이라고도 하며 지붕은 짚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억새, 굴피 등으로 덮여 있다
산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으로 3칸 홑집의 본채와 디딜방앗간, 화장실이 갖춰져 있습니다
[굴피집 체험]
본채의 앞과 뒤를 판자와 흙으로 벽을 쌓고 지붕을 '굴피'라고 부르는 굴참나무껍질로 덮었다 산골에서는 희소한 6칸 겹집의 대형 주택으로 산골의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건너방을 비롯하여 3칸의 방, 마루, 정지(부엌)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너와집 체험]
흙벽과 판자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너와'라고 부르는 판자로 덮었다고 '느에집' 또는 '능애집'이라고 하며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던 6칸 겹집으로 대체적인 공간구성은 비슷하나 여성공간인 안방과 공용 공간인 마루를 상대적으로 넓게 배치하고 있다
2006년 9월 박물관을 개관하고 이후 자연생태체험장, 전통생활체험장, 전통문화공원을 차례로 준공하여 2009년 6월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곳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 하나하나에 조상들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해주는 타임캡슐이 되는 것이라고요
[보릿고개 넘기]
척박한 산전을 일구며 살던 산촌사람들에게 봄이면 식량이 떨어져 봄보리를 수확하기까지 배고픔에 시달리는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기에 배고픈 가운데서도 하루 종일 일을 해주고 밥 한 끼밖에 얻어먹지 못해도 먹거리를 얻기 위해 마다하지 않고 칡뿌리를 캐다가 사람이 다쳐 죽기도 할 만큼 봄 춘궁기는 힘들고 고달픈 시기였어요ㅠㅠ
[봄 산나물 다듬기]
산촌에서 흔한 구조로는 사랑방, 안방, 부엌의 3칸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솥과 작은 솥에 국과 밥을 하며 난방을 겸하는 구조였다 봄이 되면 산에서 자라는 곰취, 우산대, 고사리 등의 다양한 산나물을 손질하고 살짝 데쳐 발이나 멍석에 널어 말려 1년 동안 먹거리로, 제사, 혹은 잔치 등에 사용하는 중요한 부식이었다지요
[보리타작]
보리가 익으면 하루종일 보리를 베고, 나르며, 터는 고된 노동이 이어져야 하지만 먹거리가 생긴다는 즐거움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음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보릿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일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새벽부터 늦게가지 보리를 털어주고서 겉보리 한 말을 받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대요ㅠㅠ
[건강한 여름나기]
무더운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새벽과 초저녁에 일을 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휴식을 취하며, 가난한 살림에 홑바지저고리와 홑치마저고리 차림의 단벌로 여름을 지내야 했으나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갖가지 도구를 만들어 건강한 여름을 준비했다네요
[풍요로운 가을]
보리죽과 감자로 배고픔을 넘겨야 했던 봄과 여름이 지나면 산엔 머루와 다래를 비롯해 각종 버섯, 도라지, 더덕 등이 넉넉해 밥상이 푸짐하고 들에는 각종 곡식과 감, 대추 등 과수가 풍성한 결실을 맺어 산촌에서도 이때는 곳간을 채우는 시기였어요
[소중한 꿀 따기]
산촌사람들에게 벌꿀은 귀한 영양제이자 의약품이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수입원으로 바위 틈이나 나무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석청을 제일로 쳤고, 야생벌을 벌통에 사육하여 딴 토종꿀 또한 양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하며 분봉을 한 뒤 장마철과 말벌의 습격만 잘 넘기면 좋은 벌꿀을 채취할 수 있었답니다
[긴 겨울보내기]
가을날 풍요로운 수확을 끝내고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 농사일이 없는 농한기로 낮이면 여자들은 집안 일로, 남자들은 땔감을 마련하는 일로 바쁘게 보내다 긴 겨울밤이 찾아오면 아이들은 화롯불 옆에서 군것질로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은 살림에 보태기 위해 길쌈이나 짚신을 삼았다고 해요
[맛있는 장 담기]
산촌사람들의 밥상에서 간장, 된장은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미료로, 무나 고추 등을 절여 만든 장아찌는 밥도둑일 만큼 훌륭한 밑반찬이었고, 장맛은 좋은 재료와 배합 비율, 발효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되며 입동 전후에 콩을 선별해 메주를 만들고 그믐 무렵 장을 담기까지 온 정성을 들였어요
[화전민]
화전(火田)은 산에 불을 놓아서 지력이 유지되는 단기간만 경작하는 방법으로 원초적인 농법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말부터 점차 확대되어 일제강점기 수탈정책이 심할 때 급증하였고 지금은 사라졌다 화전민은 크게 숙전(해마다 농사를 지어 잘 길들인 밭) 을 경작하면서 화전을 일구는 겸화전민과 순수하게 화전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순화전민으로 나뉘고 주로 조, 감자, 콩 옥수수 등을 재배했어요
[산촌의 민속놀이]
산촌사람들의 놀이는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어울려 마당과 골목에서부터 주변의 산과 계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갖가지 형태로 펼쳐져 마을 안에서는 자치기, 장치기, 비석치기, 짜개받기, 윷놀이를 마을 밖에서는 낫 꽂기, 상여놀이, 화전놀이 등을 하며 즐겼다
[수렵]
산촌의 식생활에서 수렵은 동물성 단백질을 확보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짐승의 살이 오르는 늦가을부터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이른 봄까지 주로 토끼, 노루, 산돼지 등을 잡았으며 수렵방법은 혼자서 다니며 짐승이 다니는 길목에 올무나 덫을 놓는 것부터 3~4명이 어울려 몇 마리 개를 데리고 다니며 추적해 잡는 방법까지 다양하였다
[천렵]
천렵은 자연을 무대로 하는 놀이이자 단백질 공급원으로 농한기에 많이 하였으며 방법으로는 맨손으로 잡기, 반두로 후리기, 낚시로 낚기, 사발무지, 작살 쏘기, 바위(벼락)치기, 물가두기 등이고 봄에서 가을까지 주로 물고기를, 겨울에는 계곡과 냇가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잡았다
[집 짓기]
산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돌, 흙을 사용해 집을 짓는데 주재료에 따라 통나무를 쌓아 지은 투방집, 돌과 흙으로 담을 쌓듯이 지은 돌담집, 흙을 찍어서 지은 흙벽집으로 나뉜다.
방 2칸, 정지 1칸의 3칸 집을 가장 많이 지었으며 정지에 판장으로 덧달아 외양간을 설치하였다.
둘러보며 예전 척박한 산촌생활에서 보릿고개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주는 먹거리에 만족해하고 철 따라 알맞는 도구를 만들어 지혜롭게 헤쳐나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점점 발전해 지금의 풍요를 누린다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이런 박물관 전시를 통해 간접체험하며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진정한 타임캡슐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