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6년(7기)

왕인박사 전설을 간직한 영암 월출산 주지봉과 문필봉

대한민국 산림청 2016. 2. 2. 14:18

 

 

 

 왕인박사 전설을 간직한

영암 월출산 주지봉 문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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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심인섭

 

  [왕인박사 전설을 간직한 영암 월출산 주지봉과 문필봉]

일본 고대문화의 시조 왕인박사와 풍수도참사상의 시조 도선국사가 태어난 영암 월출산 자락의 구림마을.
2,200여년의 유구한 마을 역사가 보여주듯 한 눈에 봐도 명당임을 알아볼 수 있는데요,

영험하기 그지없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월출산 주지봉과 문필봉 다녀왔습니다.


 

 

 

 이동경로 :  영암군 군서면 죽정마을 → 월대암 → 죽순봉 → 주지봉 →문필봉 → 왕이박사 유적지 →도갑 구림습지 → 죽정마을로 회귀

 이동거리 : 9.35km

 소요시간 : 4시간 50분 (사진찍는 시간 포함)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간단한 간식거리만 챙겨 간 산행으로 사진 찍는 시간이 많았기에 산행만 즐긴다면 4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으며, 곳곳에 왕인박사 유적지와 전설이 있어 배움과 산행을 동시에 즐기는 알찬 나들이가 되겠습니다.


 

 

'하늘타리'라는 식당이 월출산 주지봉 산행의 출발점입니다.
도갑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데요, 길가 적당한 곳에 주차해 놓고 다리를 넘어 왕인박사유적지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동백나무 우거진 비탈길이 계속 이어지는데요, 동백 숲 사이로 난 오솔길도 있어 선택만 잘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쉼터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 왕인박사유적지까지는 1.7km로 주지봉까지 힘들다고 여겨지면 책굴까지만 보고 뒤돌아와 왕인문화 체험길을 따라 왕인박사 유적지로 갈 수도 있습니다.

왕인문화 체험길은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문산재와 양사재, 왕인석상, 책굴까지 이어지는데요, 기자는 계속해서 주지봉과 문필봉을 올랐다가 왕인박사유적지에서 이곳으로 원점 회귀하였습니다.

 

 

유서 깊은 '지침바위'는데요, 닥나무를 이 바위에다 놓고 찧어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해서 '지침바위'라고 합니다. 높이 8m, 둘레 25m나 되는 큰 바위로 약간 오목하면서 반반하게 패어있고 오르내린 발작국도 남아있습니다. 지침바위는 왕인박사와 관련이 있는데요,

왕인박사를 추모하는 후학자들의 왕인박사 추억시에 지침바위가 등장합니다.

 

‘文山齊憶 王仁古師詩  문산제 <지침바위> 왕인 옛스승 추억시’

 

種樹人何去  닥나무 심어놓고 사람은 어디메 갔는고
年年獨秀靑  해마다 닥나무만 저홀로 푸르렀네
忽驚天下溺  천하가 문득 어지러워 놀라니
博施濟衆淸  널리 모든 겨레 건지셨네
王師天年跡  왕인스승 천녀의 옛터에
猶有紙砧岩  지침바위만 그대로 남아있네

 

'양사재와 문산재'입니다. 멀리서 보면 암자처럼 보이는데요,

우선 왕인박사가 누구인지 디지털영암문화대전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인은 백제 제14대 근구수왕때에 영암군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월출산의 정기를 받은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재주가 많아 주위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양사재는 월출산 주지봉 아래 해발 350m 높이에 있는데 왕인은 양사재에 8세 때 들어와 유학과 경전을 공부했으며, 또래에 비해 학문에 대한 성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 박사에 등용되었는데요,

'왕인'은 3세 때 (백제 제17대 아신왕) 왜의 응신 천황의 초청을 받아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상대포[배첩골]에서 배를 타고 왜로 건너갔으며, 이때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왜로 건너갔습니다.
왜에 도착한 왕인은 태자의 스승이 되어 왜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우고 일본 가요를 창시하였고 기술과 공예를 전수했는데요,

그때 비로소 일본의 정치와 경제, 문화, 예술이 꽃피어 결국 아스카 문화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 고대문화의 시조라고 불립니다.

 

 

(좌)양사재가 유생들이 수학하는 서원식 제당이었다면 (우)문산재는 문이 산처럼 쌓였다는 뜻의 서당으로 전국각처에서 문인재사와 수학자들이 운집하여 군자석학을 수없이 배출하였다는데, 현재의 건물은 1986년 왕인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문산재 바로 뒤편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왕석상과 책굴' 이 나옵니다.

왕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공부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천연 석굴에서 들어가 학업에 전념했는데요,

왕인이 책을 읽던 굴이라 해서 후세 사람들이 책굴이라 불렀습니다.
책굴 옆의 왕인석상은 문수상, 문수암이란 별칭으로 마을에 구전되어 왔는데요, 법의를 입고 양손을 소매에 넣어 배 앞에 가지런하게 놓은 입상으로 직사각형 돌에 조각되었습니다. 표현으로 봐서 고려 중기의 상으로 추정된다는데요, 왕인석상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붙여졌다고 합니다.

 

 

책굴은 폭2.5m, 길이7m, 높이5m 정도의 직사각형 굴로 이곳에서 학업에 정진한 왕인은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었습니다.

*오경박사(五經博士)
백제에는 여러 전문분야에 박사들이 있었는데 <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 등  경서에 능통한 사람을 오경박사라 하여 귀히 여겼다. (자료출처:네이버백과사전)

 

 

책굴을 위에서 본 모습인데요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보입니다.
책굴은 상부가 뚫려있어 비바람에 노출되었으나 외부의 암벽에 기둥을 세웠던 흔적으로 봐서 누각형태로 책굴이 보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후세 사람들이 책굴을 보호하기위한 노력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책굴이 있는 거대한 암봉을 '월대암' 이라 부릅니다.
이 월대암은 토르지형으로 월출산 천황봉과 함께 백악기 말인 약 9000만 년 전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토르가 널려있는 월대암
설악산 흔들바위도 토르의 한 형태지만 정말 사람이 밀면 흔들거리는데요, 월대암의 거대한 토르는 전혀 흔들거리지 않습니다.

*토르(Tor)
토르는 풍화 작용에 따라 기반암과 떨어져 그 위에 있는 암괴를 말한다. 토르는 풍화에 약한 암석이나 절리가 많은 암석에 잘 나타나는데, 화강암은 암석 중에서 수직, 수평 절리가 가장 잘 발달하는 암석으로 수직과 수평 방향의 절리들로 인해 블록모양으로 갈라진 화강암이 오랜 시간동안 풍화를 받으면 블록의 모서리 부분이 더 많이 풍화되어 가운데는 동글동글한 돌이 남고, 주변은 풍화 물질로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모서리 부분이 풍화된 토양이 씻기고 나면 동글동글한 핵석만 석탑처럼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토르라고 한다.

(자료출처:네이버백과사전)

 

 

상부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겨우 세단밖에 되지 않는 사다리에 의존해야 합니다. 위험해 보이지만 실상 위험하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 월대암에서 바라본 구림마을과 건너편의 은적산입니다.

 

 

▲ 월대암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황봉

 

주지봉으로 오르기 전 첫 번째 봉우리 '죽순봉'입니다.
이곳까지는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필 능선길로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죽순봉에서 천년고찰 도갑사를 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인데요, 신라 말기에 영암 구림마을 출신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월출산 아니랄까봐 주지봉도 기암괴석이 장관인데요, 좌측으로 안전한 등로가 있지만, 바로 보이는 암벽으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날개를 편듯한 암봉이 멋지지 않습니까?

 

 

이 암봉에는 하늘로 가는 통천문이 있는데요,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올 크기의 통천문을 지나야 비로소 주지봉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지봉도 죽순봉과 같이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는데요, 국토지리원 표지석이 있어 이곳이 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지봉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오늘 마지막 목적지 '문필봉' 보입니다.
정말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습인데요, 오르기에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문필봉인데요, 오늘 산행은 문필봉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와 오른쪽 주지골을 통해 왕인박사유적지로 하산합니다.

 

 

 

 

문필봉은 매우 가파릅니다. 10m이상 밧줄 하나를 붙잡고 올라서야 하는데요,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밧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한손으로는 암벽을 붙잡고 밧줄은 보조안전장치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올라서면 다시 한 번 비좁은 바위를 붙잡고 올라서야 정상 아래에 설 수 있습니다.

 

 

각종 토르형상의 바위가 널려있는데요, 여기서 정상까지는 밧줄이 없어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
대신 칼바위에서 정상 정복 스릴을 만끽하고 돌아섭니다.

문필봉 정상 아래에는 나마(gnamma)의 흔적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나마는 속리산 문장대, 월출산 구정봉 등이 있습니다.

*나마 (gnamma)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반암의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로 화강암의 기반암 표면에 가장 잘 형성된다.

 

 

문필봉 안부에서 '노각나무 군락지'봅니다.
꽤 넓게 분포되었는데요, 어림잡아 100여 그루는 되어 보입니다.
사슴뿔(녹각)처럼 황금빛 수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백로다리(노각)처럼 매끈하게 생겼다고 해서 유래되었는데요, 전 세계에 7종의 노각나무가 있는데 한국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제 왕인박사유적지로 하산합니다.

하산길은 푹신한 낙엽더미가 깔린 오솔길로 인적이 드물어 길도 희미한데요, 곳곳에 너럭바위가 있어 잠시 머물다 가기 좋았습니다.

 


왕인박사 유적지로 가는 길에 있는 전주이씨 문중의 제실 담숙재(湛肅齋)입니다.

1858년 건립되었다는데 현재의 건물은 1987년 보수했다고 합니다.

 

 

왕인박사유적지 뒤편을 지나갑니다. 이 곳에는 왕인박사 사당이 있어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요, 왕인박사의 실제 무덤은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시에 있습니다.

 

 

왕인박사 성기동 집터입니다.
기단과 주초, 담장 등 흔적이 있으며, 집터 오른쪽으로 시내가 흐르고 시내 중간에 우물로 쓰인 성천이 있으며 물을 받아두었던 구유바위가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합니다.

 

 

'성천'입니다.
왕인이 마셨다는 샘물로 성천이라 부르는데요, 왕인박사가 이곳에서 자라면서 큰 학문을 이뤘으므로 뒷날 사람들이 이곳을 성인의 터 자리라는 뜻으로 ‘성기골(聖基洞)골’이라 하고 시내 곁 우물을 성천이라 불렀습니다.  성천 바로 밑 구유바위에 물을 받아두고 마셨다는데요, 음력 삼월 삼짇날 성천의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삼짇날을 기해 왕인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다시 죽정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왕인문화 체험길로 올라서야 하는데요, 학의정과 월암정 등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습니다.

 

 

 

왕인박사유적지에서 오늘 산행지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이 차례로 봅니다.
월출산 국립공원의 변방산으로 지명도가 떨어져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산이지만, 곳곳에 왕인박사의 전설이 깃든 유적이 많고 아찔하고 스릴 넘치는 암벽구간이 많아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일본고대문화의 시조 왕인박사유적지까지 둘러볼 수 있어 산행과 역사탐방을 동시에 경함할 수 있는 멋진 산으로 죽순봉부터 주지봉까지 3월이면 진달래꽃 터널을 볼 수 있어 더 매력적인 산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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