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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老松)에 남겨진 일제 수탈의 상처를 아시나요?

대한민국 산림청 2017. 3. 2. 09:30

 노송(老松)에 남겨진

일제 수탈의 상처를 아시나요?


-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산림문화자산」등록 추진 -

 

 

 

<경남 함양 안의면 심원정 주변 송진 채취 피해목>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일본이 일제강점기 전쟁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의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하면서 남긴 상처를 조사,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를 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송탄유는 소나무에 “V”자형 상처를 내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만들어졌는데, 소나무에 남겨진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상처인 송진 채취와 그에 따른 소나무의 피해는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로부터 약재와 등불의 원료가 된 송진(松津)은 한국 고유의 산림전통지식이었으나, 일본이 일제강점기 말기(1941∼1945)에 한반도 전역에서 송진을 강제로 채취하여 송탄유를 확보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림청과 함께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서식지를「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을 추진,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역사적 가치를 기록문화로 남길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은 SNS를 활용하여 일반 국민으로부터 송진 채취 피해목 사진을 제공받아 피해목의 분포와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전국 송진 채취 피해목 지도를 만들 계획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전통지식연구팀이 8지역, 총 121그루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표본조사한 결과, 소나무들의 건강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피해목 표본조사 지역 : 경북 문경, 충북 제천, 충남 보령, 충남 태안 및 서산, 경남 함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 인천 강화 석모도 등

 

 

<송진채취 피해목 분포지>

 


 

국립산림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피해목들의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송진 채취를 위한 V자 상흔이 최대 1.2미터 높이까지 남아 있어, 소나무와 주변 산림 경관상 좋지 않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70년 전 송진 채취를 위한 가해 높이가 크게 변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남원, 제천 지역이 가해 높이가 가장 높았으며, 송진 채취 피해목이 많이 남아있는 곳은 안면도, 해인사 홍유동 계곡, 제천 박달재 등이라고 덧붙였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앞으로 송진 채취 피해목과 같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산림자원들을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하여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송탄유의 질의와 응답


Q1. 송탄유(松炭油)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항공유) 보급을 위해 우리나라 전역의 소나무를 통해 생산해 낸 기름을 말합니다.

 

Q2. 송탄유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송탄유는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소나무에 상처를 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기름을 만드는 방법과 송진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 또는 소나무 뿌리를 가마에서 열을 가해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Q3. 송탄유는 얼마나 만들어졌나요?
   국가통계포털에서 광복이전통계를 살펴보면, 송탄유는 1931년 경북 425원, 1937년 경북 12원, 1939년 전남 518원에 해당하는 양을 생산했습니다. 1935년 당시 쌀 1석 가치(144kg, 평균 가격 13.27원)인 것을 고려하면, 1931년 쌀 32석(쌀 4.61Ton)의 가치, 1937년 쌀 1석(144kg)의 가치, 1939년 쌀 39석(5.62Ton)의 가치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 1931년 1원=약 4,956원(2016년 기준, 2010년 생산자물가지수=100, 1931년 물가지수=0.00002, 출처: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고려하면 1931년 경북에서만 425원, 지금 가치로는 2백 10만원 어치의 송탄유를 채취한 셈입니다.

 

Q4. 송탄유를 실제로 항공유로 사용하였나요?
   송탄유를 실제 항공유에 썼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송탄유를 항공기용 연료로 만들기 위한 공정이 필요했으며 송탄유를 섞은 항공유로 시험비행을 했을 때도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高田, 1989. 陸軍特別操縱見習士官よもやま物語. 光人社. 125-128쪽). 일본이 전쟁에 패배한 후 남은 송탄유를 어선의 연료로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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