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이 아름다운 수인산과 난공불락의 수인산성 산림청 블로그 기자단 전문필진 박재성
강진군 지로리에 내려서 마을을 지나 홈골제 라는 저수지에 올라서니 멀리 웅장한 산정상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소문난 남근석이 보이고 우리는 저수지 제방 우측으로 가서 우측능선에 바로 올라선다. 278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이다.
따뜻한 날씨덕에 개스가 올라 멀리 조망이 시원치 않아, 조망에 대한 기대를 접은 날 임에도, 장흥의 명산인 천관산이 멀리 보이고, 화방산 뒤로는 완도의 상황봉까지 보이고 있으니 동행한 일행들이 뜻밖의 조망에 즐거워 한다. 화방산을 좀 더 당겨보니 화방산 뒤로 상황봉이 뚜렷하고, 우측으로는 해남의 유명한 주작산과 두륜산까지도 선명하게 조망이 된다.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의 날씨를 보니 비로소 하루 전날 통영에 다녀온 산 친구가 겨울옷을 입고서 더워 죽는줄 알았다고 했던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이제 얇은 옷을 꺼내 입어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그 우측으로는 흑석산, 수암산과 국립공원 월출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산행을 하면서 최고의 즐거움은 뭐니뭐니 해도 조망이 제일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이날처럼 날씨가 좋지 못해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던 때에는 그 즐거움이 더욱 큰 듯하다. 조망터에 앉아서 수인산 정상의 웅장한 바위산성을 바라본다. 수인산성은 천험한 자연 바위벼랑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견고한 요새와도 같다. 백제시대의 성 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의 성 이라고 한다. 수인산 정상부에서 수인산성의 한쪽을 담담하는 천연성벽인 병풍바위와 가운데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라는 남근바위를 당겨본다. 남근바위는 출발지인 홈골 저수지에서는 모습이 비슷해 보였지만 정상부로 갈수록 모습이 달라보인다. 수인산 정상부로 가면서 바라본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 사자산과 장흥시내 뒤쪽으로 우뚝선 장흥의 진산인 억불산 그리고 멀리 고흥반도 끄트머리의 천등산과 소록도를 지나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서 만나게 되는 풍광이 대단히 아름다웠던 거금도 적대봉까지 보인다. 날씨가 좀 더 맑았으면 대단한 그림이 펼쳐질 풍광이다. 자연성벽을 이루는 거대하고 웅장한 병풍바위의 위용이 대단하다. 산 정상부는 평탄하며 샘이 있고, 사진에 보이는 암벽등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난공불락의 성을 쌓아 왜란시에 주변 인근 고을의 백성들의 대피처가 되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수인산성은 <돌로 쌓았다. 둘레가 3,756척이고 높이가 9척이다. 고려말에 도강, 탐진. 보성. 장흥, 영암의 백성들이 모두 이 곳에서 왜구의 침입을 피하였다> 라고 설명 되어있다. 산성에 올라 일행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안부로 내려서기 전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을 바라보니, 다들 진안 구봉산 8봉에서 9봉을 바라보는 듯한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이다.
다 오른줄 알고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맘을 놓고 있었는데, 정상에 가려면 홈골로 내려서는 갈림길 안부까지 많이 내려섰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날 산행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정상으로 가는 길에 올라선다. 수인산성 남문에서 또 다른 벽을 이루고 서있는 정상인 노적봉으로 가는 도중에 왼쪽으로 독수리 바위가 보인다. 마침 계절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없는 시기다 보니 영락없이 털을 바짝 세우고 날선 표정으로 이방인을 경계하는 독수리 머리 모양이다. 홈골로 내려서는 안부에서, 우리는 조망을 하며 편한 길로 가기위해 하산 길을 도둑골 코스를 택하고 모두 정상으로 올라선다. 산성 정상부에 우뚝 선 노적봉은 마치 거대한 왕릉 같은 모습이다. 노적봉 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임진왜란시 이 봉우리를 볏짚으로 둘러싸 노적으로 위장해서 왜군들을 도망가게 했었다 해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온다. 수인산(修仁山) 이라는 이름은 수인사(修仁寺) 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인사는 원래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는데, 6.25때 빨치산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소각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는 수인산성을 쌓을때 제주도를 비롯한 53개 고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성을 만들서 '쉰세골' 이라 부르다가 '쉰골', '쉰산' 으로 고쳐 부르며 현재의 수인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인산도 그렇고 수인사도 그렇고 지금은 修仁 이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조선시대 자료에는 修仁과 修因이 혼용이 되고 있다. 修仁은 유교적이 의미이며 修因은 불교적인 용어로, 선악을 낳는 因을 닦는다는 의미이니, 고려이전에 불교적 색채가 강했던 시기에 修因山 이던것이 조선, 특히 후대로 가면서 유교적 의미의 修仁山이 된게 아닌가 싶다.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앞쪽 능선은 구룡리에서 옥녀봉과 수리봉을 넘어 정상으로 오는 조금 긴 코스다. 진달래와 철쭉등 봄 꽃이 활짝피면 저 능선길을 따라 수인산으로 들어서는 길은 꽃길이 될 것이다.
산행 출발지인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에는 조선시대 전남과 제주도를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인 전라병영성이 있었는데, 병영의 관원들은 보다 완만한 남문을 이용 하였고 백성들은 가파른 홈골을 올라 북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하산후 다시 홈골제로 돌아와 바라본 수인산성과 남근석. 우리나라 최대라고 할 만큼 거대한 바위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곳 저수지 방향에서 보았을 때만 남근석으로 보이는 점이 귀여운 옥의티 라고 할 수 있다. |
산림청의 소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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