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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②

대한민국 산림청 2017. 8. 29. 13:30



성공 귀산촌人 - 윤요왕 씨


 학교가 폐교하면 마을도 붕괴된다!


열심히 한 탓일까? 마을에 들어온 지 몇 해되지 않은 2008년 이장이 되었다. 3년 임기였다. 마을엔 농림부의 농촌종합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대규모의 정부예산이 투자되어 큰 건물도 들어서고 방과후 공부방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도 좋아져서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일 무렵이었다. 그런데 하나뿐인 송화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줄고 있었다. 폐교 위기였다. 10명 이하로 떨어지면 통폐합 대상이 된다. 학교가 붕괴되면 마을도 붕괴된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내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없어진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내가 좋아서 귀산촌을 했는데 정작 내 자식은 다닐 학교가 없어서 도시로 나가야하는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학교가 사라지면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가 없다. 대책을 찾아야 했다. 당시 국내에서 막 산촌유학이라는 개념이 태동할 무렵이라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함께 공부방을 운영하던 선생님들도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먹고 재우면서 교육시킨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과연 그렇게 보낼 사람이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컸다. 사례연구를 위해 다녀본 단양, 예천, 완주, 양구 등지에서 시행하는 산촌유학도 시행에 이른 동기가 제각기 달랐고 따라서 운영하는 형태와 성격도 달랐다.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모델을 만들자, 지역 특성에 맞는 길을 찾아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첫발을 방학 때 도시아이들을 초청하여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프로 내딛었다. 물론 부모들도 함께 초청하여 부모들의 걱정과 요구들을 듣고 이를 마을에서 어떻게 수용해나갈 수 있는지 연구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몇 번의 방학을 이용한 캠프를 하면서 산촌유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2010년 봄 4명의 아이들을 받으면서 산촌유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24명의 도시 학생들이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cafe.naver.com/bbgotan 이하 별빛센터)에 유학 와서 산촌의 일상을 함께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현재 송화초등학교의 학생은 50명이 넘는다. 그중 원래부터 마을에 살던 아이들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새로 들어온 아이들이다. 그중 24명이 별빛센터를 통해 유학온 도시 아이들이다. 그리고 10여 명은 놀랍게도 산촌유학을 왔다가 부모까지 귀산촌한 경우다. 마을의 인구가 유입된 것이다. 또 10여 명은 춘천시에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송화초등학교에 보내기위해 춘천시내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그들 학생 모두가 학교를 마치면 별빛센터로 와서 방과후 공부방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별빛센터는 고탄리 마을회관에서 처음 출발했는데 2013년 3월 현재의 건물로 이사를 왔다. 현재의 건물은 농림부의 농촌종합개발사업으로 세워진 공공건물로 마땅히 용도를 정하지 못한채 비어있었다. 춘천시 사북면 5개리에 걸친 공동 종합개발사업의 산물이라 5개리(고성, 고탄, 송암, 인람, 가일)가 참여하는 권역운영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 과정을 춘천시가 먼저 제의하고 도와주었다. 별빛센터의 필요성과 공익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였다. 별빛센터는 임의단체로 운영되다가 2014년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하였다.





 작은 학교는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축


현재 전국적으로 농·산촌유학을 하는 곳은 50여 곳에 이르지만 유학온 학생들이 모두 농가에서 홈스테이 형태로 숙박하는 사례는 별빛센터가 유일하다. 센터에는 기숙사가 없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별빛센터에 왔다가 저녁을 먹고 7시면 각자의 숙소가 되는 농가로 흩어진다.


“일본의 산촌유학센터를 가보니 전부 기숙형이었어요. 마을과는 동떨어진 섬처럼 느껴졌고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괴리감이 생기겠더라고요. 갈등의 소지가 있어 보였어요. 일본에서 그런 반성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농가와 함께 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에서 주말이나 혹은 절반은 농가에서 보내는 방식으로 시험들을 하더군요. 그래서 우린 그런 시행착오 없이 바로 마을결합형, 마을공동체형으로 가자, 하고 결정했죠.”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가가 대부분 노인들인데 도시 부모들이 뭘 믿고 맡기겠는가, 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나설려는 농가가 있을 것인가? 그런 과정들을 캠프를 통해 검증해 나갔다. 캠프에서 농가체험을 열흘, 보름씩 하면서 아이들의 적응 과정, 농가 노인들의 훈련 과정을 병행한 것이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도 잘 적응했고, 아이들을 맡은 노인들도 그에 부응했다.


“산촌유학은 학교-농가-센터가 잘 조화를 이뤄야만 지속가능합니다.”


윤요왕씨는 힘주어 말한다. 올바른 길이라면 반드시 그 길로 향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별빛센터에 유학오는 아이들은 대개 초등학교 4~5학년이 중심이고, 대개는 2~3년 정도 유학 생활을 한다.


윤씨는 2년전부터 꾸러미사업을 접었다. 별빛센터 대표를 맡고 또 (사)농촌유학전국협의회 사무총장까지 맡게 되면서 도무지 농사일을 병행할 수 없게 된 까닭이다. 법인대표는 월급이 없지만 지역아동센터 상근으로 약간의 수입도 생겼다. 귀촌해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독립적인 삶을 꾸려보겠다고 들어와 교육자로 변신한 그는 지금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볼 때 농업은 살아남을 것이지만 농·산촌은 무너질 것입니다. 공동체로서의 농·산촌은 이 상태로 계속가면 소수의 사람만 농·임업을 하고 있을텐데 그것을 농·산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시에 농·임산물을 공급하는 공장에 불과할 겁니다. 결국 농·산촌의 붕괴라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 마을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길 중 하나인 교육이라는 끈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재밌고, 짜릿함도 있고 호기심을 해결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변하는 마을을 보는 것도 좋고요. 제가 훗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지금 바라는 것은, 마을아이들, 유학생, 귀촌학생 들이 서로 잘 어울린 작은 학교로 유지되길 바랍니다. 막연하게나마 현재의 상태, 숫자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손안의_산림청,GO!